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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리

경복궁 향원정의 다리

험함을 얻어 나 여기 봉황을 불러앉혔나요. 용상 뒤켠 일월오악병풍은 백성들이 불러주는 만수무강의 촛불. 조대비님! 문안인사 기꺼이 여쭈오니, 천지신명께 바치는 저의 비나리 어떠합니까. 향기를 내뿜는 꽃은 길어야 십일을 넘기지 못해 ‘화무십일홍’이라지만 자경전 십장생 굴뚝과 함께 라면 '송수 만년(松壽千年) 학수 천년(鶴壽萬年)‘
 청청 휘어진 매화나무에 꽃이 가득 벌어집니다. 문득 이 꽃잎을 보기 위해 달님도 나무 위에  내려와 그만 넋을 놓고 말았구려. 새들 또한 밤잠을 설치면서 달맞이를 하고 숨바꼭질을 하네요. 비로소 물 흐르듯 풀어낸 궁궐의 미를 경복궁으로부터 느끼곤 합니다.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보물  제1761호)은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된 육각형의 정자입니다.
 향원지의 ‘향원(香遠)’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으로 북송대 학자 주돈이(1017∼1073)가 지은 '애련설(愛蓮說)'에서 따온 말로,  왕이나 왕족들이 휴식하고 소요하던 침전의 후원으로, 여기에는 향원지(香遠池)와 녹산(鹿山) 등 원림 (苑林)공간이 됩니다.
향원지는 모서리를 둥글게 조성한 방형의 연지에 연꽃과 수초가 자라고, 잉어 등 물고기가 살고 있으며,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 밑에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입니다.
향원정은 고종이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 벗어나 친정 체제를 구축하면서 정치적 자립의 일환으로 건청궁을 지으면서, 그 건청궁 앞에 연못을 파서 가운데 섬을 만들고 세운 2층 정자입니다.
1867년(고종 4년)부터 1873년(고종 10년)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향원정으로 가는 섬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취향교'(醉香橋, 향기에 취한다는 의미)라는 다리가 있으며, 남쪽에는 함화당, 집경당이 위치해 있습니다.
 취향교는 본래 목교로, 1873년에 향원정의 북쪽에 건청궁 방향으로 설치됩니다. 취향교는 건청궁에서 향원정으로 들어가도록 북쪽에 있었으나, 6·25전쟁 당시 없어졌으며, 현재는 1953년에 지은 다리가 향원지 남쪽에 있습니다.
 본래의 취향교는 조선시대 원지에 놓인 목교로는 가장 긴 다리(길이 32m,폭 165cm)입니다.
  창덕궁 존덕정을 지나며 만나게 되는 취한정, 소요정, 그리고 연경당의 대문인 ‘장락문 바로 앞에도 돌다리가 있습니다.
 법도에 따라 단청마저 하지 않았으니 낙선재란 그 이름은 모순 덩어리. ‘오래도록 즐거움이 있다’는 장락문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영원할 것처럼 믿게 만드는 바램은 때론 허무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선 숭고한 신앙이 되고, 촛불처럼 다가서는 법입니다. 장락은 신선이 살던 월궁을 뜻하기도 하니 이윽도 선계에 들어서기를 바랍니다.
 선조들의 철학적 사유, 그 상상력의 끄트머리는 어디가 한계인가요. 저마다 대동의 마음을 저 담장에 꼭꼭 눌러 심었을 터. 까치발로 서서 한 번은 밤하늘의 별을 쳐다보고, 또 한 번은 마당의 풀잎에 내려앉은 서릿발을 밟으면서 호사한 치장 아끼지 않았습니다. 조금 떨어진 낙선재의 꽃담을 따라 걷는 맛이 가히 일품인 것은, 장락문의 돌다리가 예사롭지 않음을 안 오늘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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