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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익산 망모당

 

 

 

 

 

 

 

망모당은 표옹 송영구가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장암마을에 살 때, 아버지 돌아가시자 우산에 묘소를 쓰고는 매일 망배를 하기 위하여 정자를 지었다. 망모당의 안산은 봉실산 줄기인 옥녀봉(필봉의 형태)으로 하였으며, 약간 좌측으로 표옹의 아버지가 있는 우산을 바라보면 지은 것이다. 망모당에서 우산을 바라보면 넓은 들판과 왕궁천이 흐르고 있어 거칠 것이 없다. 이곳을 장암마을이라 하는 표옹의 집 우측에 마당바우가 있어 부쳐진 이름이다. 우리는 바위의 형태에 따라 거북이를 닮으면 구암(龜岩: 거북바우), 자라를 닮으면 오암(鰲岩:자라바우),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으면 관암(冠岩:갓바우)이라 하는데, 아마도 이곳에 선비들이 장기와 바둑을 두는 큰 바위가 있어 장암(場岩:마당바우)이라 한 것 같다.
 장암마을의 망모당을 가려면 익산톨게이트에서 보석박물관을 통과하면 바로 용남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약 200m 지나 왕궁면쪽으로 좌회전하여 가면 나온다. 망모당 들어가는 입구에는 표옹 송영구의 일대기를 기록한 "충숙공 표옹 송선생 강생 유지비(忠肅公 瓢翁 宋先生 降生 遺址碑)"가 있는데, 먼데서 봐도 석전 황욱선생 글씨이다.
 작은 대문을 통과하면 중국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쓴 망모당 편액이 손님을 맞이한다. 주지번이 조선 사신으로 와서 성균관의 명륜당, 전주객사 풍패지관, 남원 금지면 영사정 등의 편액을 썼지만, 망모당 편액이 비록 다른 것에 비하여 작지만 아마도 건물에 맞도록 작은 편액을 썼을 것이다. 망모당편액에는 주지번이 을미년에 표옹의 도움을 받아 장원급제한 해를 기념하기 위해 을미장원이란 낙관을 사용한 것이 특이하고, 또 사제지간의 정을 맺은 스승 표옹 송영구선생을 생각하면서 온 정성을 쏟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필획 속에는 다른 편액에서 느끼지 못하는 겸손함과 진지함이 묻어 있다.
 표옹 송영구(1556ㅡ1620)은 조선조에 중국 성절사(聖節使)로 1593년 송강 정철이 명나라로 갈 때, 사절단으로 북경에 가서 객관에 머물 때 주지번과 인연이 되어 주지번에게 많은 책과 과거시험 보는 방법을 가르쳤다 전한다. 이후 주지번은 과거에 급제한 후 스승인 송영구를 만나기 위하여 조선사신을 자청했다 하니 둘의 인연은 국경을 초월한 만남이었다. 주지번은 남경 사람으로 그의 태어난 동네에는 지금도 주지번거리가 있다하니 훌륭한 인물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것이다.
 주지번은 중국에서 백련(白蓮)을 가지고 와서 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아래 방죽인 제촌지에 심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후손들이 연방죽을 만들어 여름철에는 연향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고, 또 표옹의 며느리인 삭령최씨가 심은 소나무가 잘 자라고 있다. 며느리는 시집오면서 부안지역 솔씨를 3말 가지고 와서 심었다니, 선영산을 푸르게 만든 지혜도 또한 길이길이 추모해야 할 것이다. 표옹은 백련을 심고 가꾸는 재미에 빠져 자신의 호를 ‘백련거사(白蓮居士)’라 하였다니, 얼마나 백련을 좋아 했음을 알 수 있다. 송영구의 본관은 진천이며 자는 인수, 호는 표옹(瓢翁)·일호(一瓠)·백련거사(白蓮居士)이며, 세웅(世雄)의 증손이며 아버지는 영(翎)이다. 또 성혼(成渾)의 문인이다.
표옹은 1584년 친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후 주서(注書)·사과(司果) 등을 역임했다. 1607년 성주목사가 되었으나, 1610년(광해군 2) 사간에 임명되었고 이어 시강원필선(侍講院弼善)으로『선조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에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냈다.  표옹은 경상도관찰사를 마치고 낙동강을 건널 때 일화가 전한다. 낙동강을 건널 갈 때도 빈털터리로 갔지만 나올 때도 아무것도 없이 나온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방이 아주 겸손하게 여태까지 그런 사람을 보지 못한 나머지 “감사님 손에는 부채만 하나 뿐이네요”하니 순간 표옹은 뇌리를 스치는 것을 깨닫고는 바로 부채를 강에 버렸던 것이다. 이후로 낙동강은 표옹이 부채를 버렸다 해서 투선강(投扇江)으로 부르게 됐다.
 표옹은 사후 아버지 묘소가 있는 서편에 안치되었으며, 송준길이 쓴 신도비와 제실인 우산정사, 백련피는 연방죽과 삼정송 소나무, 그리고 표옹연시비, 망모정 등이 잘 어우러져 있다. 쌀쌀한 겨울에도 재 모습을 드러내는 재실 안의 용송(龍松)과 소나무 숲은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야(歲寒然後知松柏之後彫也)의 정취를 느낄 수 있을 터이다./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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