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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순창 영광정

 

 

 

 

 

영광정은 순창군 쌍치면사무소에서 복흥쪽으로 가다 쌍갈매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작은 고개를 넘은 후 시산를 지나 둔전마을로 가는 강변에 있다. 위치는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 산 6-1번지로 기룡암(騎龍岩) 위에 세웠다. 정자는 배산임수의 조건을 갖추었으나 바로 옆으로 찻길이 나면서 옛 풍경을 잃었다. 바로 앞에는 추령에서 시작한 물줄기가 서마리와 농암을 거쳐 영광정 앞에 도착한다. 이 물은 쌍치를 지나 금성(전봉준 피체지)과 매죽(구절제 축제하는 곳)을 거쳐 산내 옥정호로 들어간다. 영광정 앞에 흐르는 물을 추령천이라 하는데 물이 맑아 물속에서 노는 고기가 훤히 보이고 앞산이 비쳐 유리알 같다.
 정자를 만들고 이름을 영광정(迎狂亭)이라 한 사람은 이 고장 출신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이다. 그는 1910년 8월 9일 강제로 병탄(倂呑)이 체결되자 우국에 불타는 뜻있는 7명의 애국동지들과 함께, 8인이 고의적으로 광인 행세를 하면서 은밀하게 항일 투쟁을 하기 위하여 이곳에 근거지를 만든 것이다. 김원중은 영광정 편액을 초서와 행서로 썼으며, 영광정시를 한 수 지어 걸었다. 
 영광정은 1921년 6월 27일 항일운동의 집회 장소였던 이곳에 8인 애국동지의 뜻을 높이 추앙하고자 정자를 세웠다. 건물의 처마 끝에는 태극팔괘(太極八卦)를 도각(圖刻)하여 망국의 설움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숨은 의지를 표시하였다. 정자 밑 바위 암벽에는 8명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서 항일 투쟁활동을 전개한 사람은 금옹(錦翁) 김원중(金源中), 어초(魚焦) 이항로(李恒老), 안설(安卨) 김정중(金正中), 우파(禹坡) 설문호(薛文皓), 취죽(翠竹) 이봉운(李鳳雲), 남곡(南谷) 안종수(安宗洙), 병산(甁山) 송국빈(宋國貧), 백계(柏溪) 김요명(金堯冥)이다. 6·25전쟁 때 쌍치면 일대는 빨치산들의 소굴로 전락되었고 쌍치면 쌍계리에 사는 제헌의원인 노일환의 집에서는 빨치산들이 불을 질러 책이 모두 불탔다고 전한다. 즉 관내의 모든 건물은 완전히 불에 타 잿더미가 되었는데, 유일하게 이 정자만은 소실되지 않았다 전한다.
 영광정이 있는 마을은 둔전이라 하는데, 둔전은 군인들의 군량을 제공하던 논밭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이곳 둔전리에는 김인후선생이 옥과현감을 사직하고 잠시 고향인 장성에 머물다가 부모님과 함께 처가인 순창 점암촌(지금의 둔전리)으로 들어와 훈몽재를 짓고 이곳에서 후학을 양성하였던 곳이다. 이에 하서 김인후선생을 기리는 어암사(魚巖祠)를 건립하였고, 1827년(순조 27년)에는 어암서원을 세웠다. 그러나  6·25전쟁 때 불에 타고 빈터로 남았는데 몇 년 전에 지역 유림들이 어암서원유허비(魚巖書院遺墟碑)를 세웠다.
 이곳에는 하서 김인후의 문하생이었던 송강 정철이 손수 대학을 읽으면서 대학암이라 쓴 암각서가 전하고 있으며, 이때 배출된 인물로는 조희문, 양자징, 기효간, 변성온 등이다. 훈몽재는 2009년 순창군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중건되었으며, 젊은 학생들에게 전통예절과 유학정신 등을 강의하고 있다.훈몽재 마당에는 청동기시대의 산물인 고인돌이 버티고 있으며, 하서의 자연철학을 느낄 수 있는 삼연정(三然亭: 山,水,人) 정자는 사제지간에 강론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훈몽재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고당 김충호선생은 하서의 도학과 절의 정신을 강의하고 있으며, 또한 도학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좋은 계절을 맞아 훈몽재에 들러 고당선생님으로부터 역사와 철학에 대한 고견을 듣는다면, 인생을 살아가는데 좋은 좌표가 될 것이다. 순창 쌍치는 분지로 된 지역이면서 고지가 높기 때문에 발걸음 하기가 어려운 지역이다. 영광정을 가거든 바로 옆 종곡의 송시열이 쓴 관수당마농암 암각서가 있으니 꼭 찾아보기를 권한다<완>/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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