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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돈편액

정읍 영주정사

 

 

 

 

 

 

 

 정읍시내에서 서쪽으로 높이 솟은 말봉에 바로 수두목승(水斗木升:곡식을 재는 말과 되의 형상)글귀가 새겨져 있는 두승산이 있다. 두승산(斗升山)은 예부터 도순산(都順山), 혹은 영주산(瀛州山)이라 하여 부안의 변산(邊山: 蓬來山)과 고창의 방장산(方丈山)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이라 일컬어 오고 있다.
 두승산의 동쪽 흑암동에는 2005년에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 212호 지정된 영주정사가 자리하고 있다. 영주정사와 사당인 영양사는 조선 후기 정읍 출신 유학자 창암 박만환이 각각 1903년과 1909년 건립 한 건물로, 특히 영양사는 중국 오성육현(五聖六賢)의 영정을 봉안한 곳이다.
 강학의 장소인 영주정사에는 많은 편액이 붙어 있다. '연비어약'이라는 주자의 글자를 집자한 것도 보이며, 들어가는 입구에 거대한 편액(280*90)이 있는데 이것이 이곳에서 후학을 가르친 간재 전우의 행초서 글씨이다. 이 거대한 편액 하나만 이곳에 가서 음미해보고 와도 답사의 재미를 느낄 것이다. 특히 편액의 두 번째 글자인 주(洲)자는 초서의 필의가 많이 들어가 있으며, 낙관은 화둔(華遯)으로 되어 있어 간재가 계화도에 은둔할 때 사용한 호임을 알 수 있다.
  박만환은 정읍 갑부로 자는 경서(景瑞) 호는 응천(凝川) 휘는 만환(晩煥)이며, 1867년 나이 17세에 충남 아산의 전재(全齋) 임헌회(任憲晦)선생 문하에서 유학하며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심석(心石) 송병순(宋秉珣), 간재(艮齋) 전우(田愚)선생 등과 동문수학했다.
 영주정사에서는 1905년에 임헌회가 제자인 전우와 신기선에게 명하여 조선의 학자인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송시열의 오현 문집 중에서 진수를 뽑아 오현수언이라는 책을 발행하도록 했다.
 이 책의 서문은 간재 전우가 썼고, 삼례도찰방 박만환이 자금을 대어 출간하게 됐다. 이 책의 요지는 학자들로 하여금 본체를 밝혀 근원을 알게 함이며, 실제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편집을 하였다. 또 영주정사에서는 완판본에서 중요한 한글판 여사서언해를 만들어 대중에게 보급시켰다.
 박만환이 지은 영주정사에서는 유교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학습을 하였고, 조선 성리학의 맥을 잇을 간재 전우 선생이 이곳에서 직접 6년간 후학을 지도한 유서 깊은 곳이다. 뒤에 그의 아들 박승규도 학문이 나라를 살릴 수 있다는 신념으로 승동학교를 세워 신식교육을 시켰다. 잃어버린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던 것.
 박만환이 지은 영양사는 강당 뒤 산쪽에 지었는데, 이곳에는 기자(箕子), 공자(孔子), 안자 증자 자사 맹자를 배향하고, 또 주염계 정명도 장횡거 소강절 주자 등 5성 6현을 모시고 있다.
 영주정사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던 박만환과 전우의 정신을 깊이 새겨야 할 것이며, 사당을 지어 옛 성현들의 정신을 체득하고자 노력하였던 곳이다.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송상현을 모시는 정충사와 정충서원이 있으며, 북쪽길을 따가 가면 돌담길이 고풍스런 상학이 나온다.  여기서 내친김에 두승산을 끼고 한바뀌 돌면 멋진 문화답사가 이루어진다. 도계서원, 백정기의사기념관, 은선리 3층석탑, 지사리고분군, 장문리 5층석탑, 고사부리성과 군자정, 유선사와 미륵암 석불입상 등을 보고 동학 2주갑을 맞아 동학혁명모의탑을 둘러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김진돈 전라금석문연구회장. 전북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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