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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토리

위봉산성의 비석 미스테리를 풀다

 

 

 

 

 

 완주군의 정체성을 입증할 수 있는 불망비(不忘碑)와 선정비(善政碑) 5기가 위봉산성(사적 제471호) 서문 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제대로 된 고증을 거치지 않은 채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방치되고 있다. 특히 이들 비석군은 133년-156년의 세월을 거쳐오면서 파손이 심각한 만큼 체계적인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비석들이 한문으로 쓰여져 있는데다가,  모두가 깨어진 비석으로 연령을 추측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보존할 가치가 있는 비석은 복원을 하고, 또 좌대를 설치, 더 이상의 훼손을 막아야 함은 물론 방문객들의 편의를 돕기 위한 안내문 등을 만들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뿐만 아니라 비석과 관련한 내용이 기록된 책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어 후손들의 무성의함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더욱이 완주군 고종시 마실길 1코스가 이 곳을 지나고 있는데다가, 동학농민혁명 2주갑(120년)을 맞아 남고산성을 찾는 방문객이 잇따르면서 환경 정비가 더욱 시급해보인다.
 맨 왼쪽에 있는 것은 ‘진관 한제희선정비’로, ‘진관 한제희’ 아래로는 글자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지만 고종 18년(1881년)에 세운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어 보이는 ‘(전라)관찰사 심이택불망비’ 역시 ‘관찰사 심이택’ 이하로는 전혀 내용이 보이지 않고 있으며, 고종 16년(1879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다음에  자리한 ‘(전라)관찰사 심경택불망비’는 ‘관찰사심경택영세불’까지만 볼 수 있으며, 철종 9년(1858년)에 건립, 이들 비석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다.
 ‘진관한용불망비’는 상태가 아주 좋지 않다. ‘진관’이라는 글자가 아예 사라진 가운데 ‘한용영세불망’까지 판독이 가능하며, 고종 16년(1879년)에 세워졌다. 맨 오른쪽의 ‘관찰사조성교불방비’는 최악의 상태다. ‘관찰사조공’ 이란 다섯 글자만 만나 볼 수 있으며, 고종 16년(1879년)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 비석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이곳에 자리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관광객 김연님(여, 전주시 효자동)씨는 “가족과 함께 완주관광을 하기 위해 남고산성에 왔는데, 깨어진 비석들이 아무런 해설없이 그냥 세워져 있어 궁금했다”며 “역사 유적지에 있어 뭔가 연관성이 있을 것도 같은데, 방치되다시피 세워져 있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완주군의 유구한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 유물인 비석들이 그대로 방치된다면 어찌 문화예술과 역사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안내판을 만들고, 좌대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