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실상사(사적 제309호)에서 고려시대의 정원 시설이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상태로 발견됐다. 이는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초대형 고려시대의 정원으로, 완벽한 보존과 빼어난 양식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전통적인 개념으로 볼 때 정원이란 자연을 소재로 해 인간이 만든 하나의 작품으로서 주로 식물이 많이 자라고 있는 외부 공간이다. 만든 사람의 취향이나 거기 거주하고 있는 사람의 성격에 따라 그것은 심미적인 장소일 수도 있고, 꽃이 만발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때론 그 건물의 용도와 관련되어 어떤 기능을 담는 외부생활공간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려시대에 나타난 정원은 동국이상국집의 ‘손비서냉저천정기’와 근재집의 ‘순흥봉서루중영기’ 에서 기술된 바로 알 수 있다. 경도를 중심으로 한 권신이나 귀족계급의 정원은 석가산이나 기화이목(奇花異木), 곡소(曲沼), 곡지(曲池) 등 인위적인 정원 시설에 치중해 만들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지나친 인공미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경도 교외나 전원지 등의 수려한 경승지에 수림, 계곡, 암석 등 자연 요소들을 활용, 자연과의 조화를 시도한 성격의 정원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불교문화재연구가 실상사 양혜당과 보적당 건립 부지에서 고려시대 사찰의 원지(苑池)를 온전한 상태로 확인했다. 원지와 수로 시설은 그동안 발견된 네모난 형태가 아닌, 타원형에 가깝고, 바닥은 천석(川石, 강돌)을 편평하게 깔아 축조하는 등 다른 사찰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독특한 형태이다.
고려시대의 불화인 ‘관경16관변상도(觀經16觀變相圖)’에서 연지와 배수로가 확인되고 있는 만큼 고대 정원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임에 틀림없다. 원지는 고려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선종 가람(사찰)에서 원지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단서가 아닐 수 없다. 신라말 구산선문(九山禪問) 가운데 가장 먼저 세워진 선종의 대표 사찰, 실상사가 이번 발굴 조사를 계기로 더욱 더 번창하기를 바라며, 정원 관련 유적이 아주 적은 전북에 새로운 콘텐츠로 활용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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