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지어놓은 땅에 대한 지명을 분석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특히 예언성 땅 이름은 경탄할 정도로 딱딱 맞아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땅이름의 우합(偶合)인 셈이다.
오래 전부터 불러오고 있는 땅이름이 후세에 와서 이상하게도 그 땅이름의 뜻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써 땅이름에서 우리 선인들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고, 다시 한번 땅이름의 신비를 실감하게 된다.
임실군 강진면 옥정리(玉井里). 이곳은 그전에 옥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옥정리라 부른다고도 하고, 혹은 조선 중기에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멀지 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해 옥정리란다. 옥구군(지금은 군산시에 편입)과 새만금간척지도 마찬가지다. 옥구군(沃溝郡)은 군산시를 에워싸고 있는 지역으로, ‘물댈 옥(沃)’자에 ‘개천 구(溝)’자를 합한 이름인 ‘옥구(沃溝)’는 한자대로 새기면 ‘개천에 물을 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제 개천에 물을 대는 현실로 나타나게 됐다.
새만금간척사업은 고군산군도와 비안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를 잇는 33km의 바다방조제를 쌓아 서울 여의도의 1백40배 규모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단위 간척사업이다. 그리고 또하나, 진안군 용담면과 용담댐. 진안 용담면은 일제시대부터 댐 건설의 적격지로 지목,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검토하여오다가 일본 패망으로 무산됐지만 지난 1992년 착공, 2001년 완공됐다. 담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도 댐이 가두고 있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대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용담’이란 ‘용 용(龍)’자에 ‘못 담(潭)’자의 지명으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의미를 현실화했다. 댐 완공 후 수몰선을 따라 물에 잠겨 호수의 형상이 용의 모양을 이루고 있으니, 용담면이라는 이름과 실제 현실이 맞아떨어지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용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沐浴里)는 원래 물이 맑고 좋아서 선녀들이 목욕하던 곳이라 하여 ‘멱수’, ‘목욕소’라 했던 것을 일제시대에 개명했다고 하는데, 온천이 나온다.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의 아침재(朝峙)는 이성계가 지리산에서 성수산 도선암(현 상이암)에 들어갈 때 아침에 넘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枉訪里)는 이성계가 지리산을 거쳐 도선암으로 갈 때 이곳에서 안개를 만나 헤매이면서 머물렀다 하여 생긴 이름이며, 성수면 수철리(水鐵里)는 이성계가 지리산을 거쳐서 도선암으로 갈 때 이곳에 와보니 수천리(數千里)를 걸어 왔다 하여 부른 이름이란다.
그러나 아픈 지난 날도 숨쉬고 있다. 조선총독부는 ‘황산대첩비’ 등 무려 20여 기의 문화재를 철거 대상으로 지정했으며, 마을 이름에 사용된 ‘왕(王, 임금)’자를 ‘왕(旺, 성하다)’자로 바꾸는 등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제멋대로, 일방적으로 바꾸었다.
정읍시 농서동 흑암(黑巖)마을은 본래 현암(玄巖)마을이었지만, 일제 치하에서 친일을 거부하면서 ‘말을 잘 듣지 않는 시커먼 마을’이라며 흑암으로 바꿨다는 얘기하며, 고부면 주산(舟山) 마을의 이름은 당초 죽산(竹山)이었지만 ‘배가 산으로 간다’, ‘배가 떠나버린 마을’이라는 의미로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 말 이성계가 잠이 들었다가 닭울음 소리를 듣고 깨어나 왜적을 무찌른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장수군??용계(龍鷄)‘마을은??용계(龍溪)’로 장수군의 구시봉은 일제가 깃대를 꽂아 우리 국토를 측량한 데서 ‘깃대봉’으로 바뀐 채 지금까지 불리워오고 있다.
도내에선 완주 15곳, 정읍과 순창 8곳씩 등 모두 78곳에 말 지명이 있다는 자료다. 마을명(56곳)이 가장 많았고 산(15곳)과 고개(7)가 뒤이었다. 진안 마령면 마이산을 비롯, 전주 송천동 천마산과 군산 흥남동 팔마산, 순창 인계면 대마흘 마을과 정읍 내장상동 말허리골 등도 말의 형상에서 유래됐다. ‘말이 울면 흥하고 구리로 만든 말을 세우면 풍년이 든다!’는 말과 얽힌 설화나 형상을 빚댄 지명이 유난히 많은 전북에 ‘청마의 기운’으로 흥건히 넘쳐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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