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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전주생명과학고 농악으로 부활 꿈꾼다

 

 

 

코발트색 하늘 아래, 흰구름 둥둥둥 떠돌아 다닌다. 시나브로 열두 발 상모 더 길게, 더 널따랗게 온고을 ‘전주’에 드리운다.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교장 김진곤)가 농악부(농악교실)를 통해 제2의 부화를 알리는 힘찬 터울림에 다름 아니다.
 현재 농악교실의 지도교사는 박종화, 지도 강사는 이 학교 출신의 허영욱명인(전주농악전수관장)으로 1970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농악부문 대통령상, 196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농악부문 문화공보부장관상을 수상한 이력의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의 화려한 비상을 위해 1학년과 2학년 30여 명이 쩌렁쩌렁 우리의 농악에 흠뻑 빠져 있다.
 농도(農道)인 전북에서 농악은 지역 역사에서 활발하게 숨을 쉴 정도의 생활문화로서 자리잡고 있는 상태.
 그만큼 이 고장엔 출중한 인물이 많아 전북농악은 예부터 전국에서 맹위를 떨치곤 했다. 1970년 10월 25일자 전북일보는 ‘전북농악, 4년만에 대통령상’제목의 기사를 사회면 머리 기사로 실었다.
 신문은 “21일부터 3일간 전남 광주에서 베풀어진 제1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전주농고의 농악이 영예의 대통령상(상금 1백만원)을, 전남의 보름 줄다리기가 국무총리상을 받고 23일 하오 폐막됐다. 전북농악은 61년 국무총리상,63년 문교부장관상,66년 대통령상을 획득한후 4년만의 개선으로 지난 여름방학동안 피나는 노력의 대가였다”고 보도했다.
 이 당시 지도교사는 이기주, 지도 강사는 백남윤(작고, 전 문화재)선생 등, 출전 학생은 허영욱명인 등이 있었다는 것.
 그래서인가 이 학교에서 농악을 지도한 강사의 면면을 살펴보면 백남윤선생을 비롯, 김종수(도 문화재), 류명철(도 문화재) 등 당시 내로라는 예술인들이 거쳐가야 하는 곳으로 장평이 나 있었다.
 이 학교 농악부 출신 인사는 정인삼(한국민속촌 우도농악보존회장), 국수호(중앙대 명예교수), 손병우(예원예술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김파(김조균, 전 도문화재), 허영욱(대한명인회 전북지회장), 이완재(한국국악협회 군산지부장), 강민석(전 사물놀이 한울림 단장), 정병렬, 최용준 무용인 등 이루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정인삼회장은 1974년 한국민속촌이 생기면서 당시 전주농고 졸업생과 예정자 32명으로 민속촌단장으로 임명되기도.
 그러나 전통의 맥이 끊겨오다가 1995년 공주에서 개최된 제2회 전국 청소년 민속예술축제에 농악부가 출전, 은상을 받은 게 최고의 성적.
 김진곤교장이 2011년 9월 부임하면서 이같은 학교의 전통을 살리기 위해 오늘도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 상태.
 김교장은 “1인1기 신장을 목표로 한 특별활동의 강화로 1970년 10월 농악부가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고,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잼버리대회에 참가해, 한국의 민속예술을 과시했다”며 “교육청과 동문회, 그리고 지역 사회 등의 관심이 모두어 진다면 전통문화의 보존 및 계승 발전에 생명과학고가 앞장 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교장은 방학 때 1주일 정도 학생들이 한데 모여 교육을 할 계획을 수립했지만  예산 등의 이유로 만만치 않다는 설명.
 현재 이 학교 농악교실은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오후 2시 30분부터 4시까지 40여 년의 경력을 가진 허영욱명인의 빈틈없는 지도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30일에는 지도교사와 지도강사, 그리고 학생 등 27명이 한국민속촌을 방문, 정인삼회장을 만나 매년 5명 정도의 학생들을 이곳에 취업시켜줄 것이란 약속을 구두로 받아내기도.
  허영욱명인은 “1995년, 이보다 앞선 1980년대에도 후배들을 가르치는 등 우여곡절이 참 많았다”며 “학교와 학생, 교육청, 전주시민 등 모두가 이전에 보여준 관심에 곱절의 격려와 눈길을 보여주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전처럼 집중교육이 쉽게 이뤄질 수 없는 현실이 참 아쉽다고 말했다.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