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풍경화를 그리듯 나무들이 저마다 투명한 연둣빛을 뿜어내더니, 입하(立夏)로 접어든 요즘은 짙은 녹색빛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올해 저는 유난히 몸과 마음으로 봄을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작년 초부터 시작한 마을숲 연재가 이런 기쁨을 주고 있습니다. 때로 나태한 마음을 추수리게 하는 마을숲 연재가 조금은 짜릿한 긴장감을 함께 주기도 합니다. 정읍 산외와 칠보의 마을과 숲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대학시절 후배와 김동수 가옥에 답사한 기억이 있는데, 그때 당시에 마을에 숲이 있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당시엔 마을숲에 관심이 없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책자를 뒤척이다가 김동수 가옥이 있는 공동마을에 마을숲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김동수 가옥은 가옥형태와 풍수적 입지로 널리 알려진 마을입니다.
공동마을은 마을 뒤로 창하산(일명 지네산)이 있고, 마을 앞으로는 동진강의 상류인 도원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입니다. 특히 마을 뒷산인 청하산이 지네[蜈蚣]를 닮았다고 하여 ‘지네산’이라 불립니다. 행정 명칭도 오공(蜈蚣)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본래 공동(蚣洞)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공동(公洞)마을로 바뀌게 됩니다.
공동마을은 광산 김씨에 의하여 형성되었고, 김동수 가옥은 그분의 6대조인 김명관(1755-1822)에 의하여 지어졌습니다. 풍수적으로 지네산을 염두 해 두고 지어진 김동수 가옥은 마을 중심부에 자리합니다.
지네는 다리가 가장 많은 동물의 하나로서 그 수는 최소 15쌍에서 최대 170쌍에 이르며 천룡(天龍)이라고도 부릅니다. 풍수지리에서 지네형의 터를 길지로 여기는 것은 지네의 다리처럼 자손이 번성하고 재화를 많이 모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이점 때문에 김동수 가옥도 지어졌을 것입니다. 박공머리나 대문에 지네 모양의 철판(이를 지네철이라 한다)을 붙였던 것도 같은 이치라고 합니다. 다만 지네혈의 단점은 산이 높고 골이 깊고 좌우의 보좌하는 산들이 너무 가까워 후손들의 생활입지가 항상 불안하여 편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또한 지네와 닭 그리고 매 혹은 지네와 닭과 개와의 긴장된 삼각관계를 요구합니다.(김두규 풍수사전) 공동마을 주변에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지네, 닭, 개가 서로를 견제하고 있어 지형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소위 삼수부동격(三獸不動格)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닭은 지네를 쪼아 먹으려 하지만 뒤에 있는 개가 두려워 움직이지 못하고, 개는 닭을 물고자 하지만 중간에 있는 지네에게 물릴까 움직이지 못하여 서로 긴장하며 균형을 이루는 형세를 말합니다. 이는 여러 다양한 특성을 지닌 땅이 인간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마을 안산(案山)은 독계봉이고 조산(朝山)은 화견산(火見山)인데, 화견산의 화기(火氣)를 막기 위하여 마을입구에 연못을 조성했습니다. 또한 김명관은 집을 짓고 안채에서 바라다 보이는 화견산 방향에 나무를 심어 산이 보이지 않도록 했다고 합니다. 대문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40그루, 오른편으로 26그루의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반달형으로 심었으며 특히 왼편으로는 지네산까지 연결되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과거에는 마을전체를 감싸듯이 숲이 조성되었으나 현재는 많이 축소된 상태입니다. 그래서 공동 마을숲을 답사한 분들은 조금은 실망할지 모릅니다. 현재 공동 마을숲은 1,700여 평에 이르고 마을 소유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느티나무이고 팽나무, 산사나무, 단풍나무, 은행나무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공동 마을숲은 풍수적으로 지네가 습지에서 사는 동물이므로 지네가 잘 살 수 있는 여건을 만들기 위하여 조성되었다는 의미와 함께 마을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 그리고 실제적으로는 방풍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습니다.
공동마을을 뒤로하고 유교문화의 전통이 살아있는 칠보 원촌마을 미을숲과 송산마을 입구 천변 제방림으로 조성된 왕버들 숲도 덤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막바지로 치닫는 봄빛을 이렇게 즐기고 돌아왔습니다. 이상훈 전주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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