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상훈마을숲

임실 물우리 마을숲

 

 

 

 

 

 

비가 간간히 내리는 곡우(穀雨)날 물우리 마을숲을 보고 왔습니다. 곡식에 필요한 비가 내린다는 곡우에 진짜 비가 내리는 걸 보면서 새삼 24절기를 되새기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철이 시작되는 때라고 합니다. 전주 인근에 있지만 좀처럼 살펴 볼 기회가 없었던 임실을 둘려 보았습니다.

임실(任實)은 삼국시대 이래로 이름이 변하지 않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임(任)은 임금의 임 또는 선생님 할 때의 님의 표기이고, 실(實)은 마실․고라 실 할 때의 ‘실’로 마을을 일컫습니다. 그래서 임실은 왕이 있는 마을 즉 행정의 중심마을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임공빈)

물우(勿憂) 마을은 덕치면(德峙面)에 자리합니다. 덕치는 본래 고덕치라 칭하였습니다. 이는 주변에 높은 재를 넘어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우 마을은 덕치면 사무소를 지나 순창으로 가는 길목에서 덕치초등학교 못 미쳐 섬진강 건너편에 자리합니다. 강에 인접해서 물로 인한 근심이 끊이지 않았다고 하지만 마을에 직접적인 피해를 본적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우(勿憂) 마을은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물로 인한 근심이 끊임없이 있는 마을이라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물우리는 ‘물구리’에서 온 말로 ‘물구리’는 ‘물골’이라고 합니다. ‘물골’이란 의미는 물이 주변에 많다는 의미로 물우리는 한자의 해석은 의미가 없고 물가에 인접한 마을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될 듯합니다.

물우 마을은 초창기에 밀양 박씨가 많이 거주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양씨, 이씨, 정씨 등이 들어와 살게 되었고 현재는 54가구로 제법 큰 마을에 속합니다.

물우 마을을 들어설 때 강을 건너야 하는데, 예전에는 나무다리를 놓아 다녔고 이후 콘크리트다리가 건설되면서 좀 더 편안해졌다고 합니다. 이는 옥정호라 부르는 섬진강댐이 건설될 무렵에 이곳의 모래, 자갈을 운반하기 위하여 60년대 초반에 다리가 놓여 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섬진강 댐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착공했다가 제 2차 세계대전으로 중단되었고 다시 해방 후에 착공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중단 되었습니다. 이후 1961년에 착공하여 1965년에 준공됩니다. 현재는 큰 다리가 놓여 물우 마을로 가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물우 마을에는 구세군 교회가 있습니다. ‘구세군 물우리 교회’라 불립니다. 장경환 사관님을 통해서 알게 된 ‘구세군 물우리 영문’ 연혁은 다음과 같습니다.(영문은 교회와 같은 의미)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초대 담임 사관인 정위 최대산이 부임하게 됩니다. 처음 교회는 지금 마을회관자리였다고 합니다. 7대 담임 사관인 순준정이 1943년 대구 1영으로 전근 가면서 물우리 영문이 폐영 됩니다. 일제 강점기 13년 동안 물우리 영문 출신 사관은 양복덕, 박병술, 박천수 등 3분이 탄생하게 됩니다. 특히 박천수 사관님의 아들이 1981년 당시 영등포 영문에 장교(장로) 섬기던 중 고향마을에 구세군을 다시 세우고자하는 열망으로 물우리 영문이 재개영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현재 구세군 물우리 교회는 장경환 사관님께서 마을공동체를 이루며 헌신하고 계십니다.

마을입구로 들어서는 길목에 소나무 숲이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힘든 세상을 겪어온 모습같이 굽어 자란 소나무가 안쓰럽게 보이기도 합니다. 한국전쟁 중 회문산(回文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빨치산이 떠오릅니다. 그런 굴곡의 역사속에서 마을을 지켜보면서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을 소나무 숲을 생각합니다. 길을 새로이 내면서 소나무 숲이 훼손되어 소나무숲 규모가 축소된 상태입니다. 소나무 숲이 위치한 곳은 물우 마을 좌청룡에 해당되는 곳입니다. 마을 북쪽의 바람을 막고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서 조성되었다고 전해집니다. 50여년 전에 ‘천불’이라 일컫는 큰 불이 발생하여 마을이 거의 전소(全燒)되다시피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초가집이 대부분 이었던 시대에는 화재가 가장 큰 재앙이었습니다. 마을에서는 화재를 방비하기 위하여 마을숲을 방풍림으로서 조성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책이었습니다. 또한 마을 중심에 조성된 저수지도 화재를 방비하기 위한 방화수로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물우 마을 할머니당산은 특이하게 봉분으로 되어있습니다. 필자는 남원 산내면 매동 마을에서 봉분으로 된 당산을 살펴본 적이 있는데, 매우 특이한 당산 형태입니다. 물우 마을 할머니 당산은 현재는 제(祭)가 중단된 상태이나 이곳은 물우 마을 우백호 맥으로 이를 보강할 목적으로 할머니 당산을 봉분 형태로 조성한 듯합니다. 이 맥에는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등 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물우 마을이 풍수적으로 좌우 맥이 약하기 때문에 이를 보강하고 특히 마을이 북서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방풍을 목적으로 조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화재(火災)나 수재(水災) 보다는 당면한 농촌의 현실이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한편으론 구세군 물우리 교회의 지역공동체 역할이 중요할 거란 생각을 하면서 마을을 뒤로하고 임실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이상훈 전주고등학교 교사

 

'이상훈마을숲'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완주안남마을 마을숲  (0) 2013.07.08
정읍김동수가옥과 마을숲  (0) 2013.05.13
장수 원삼장 마을숲  (0) 2013.04.15
금오도 해송 숲과 봉산(封山)  (0) 2013.04.01
진안 영모정과 숲이야기  (0) 2013.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