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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꽃신을 신고 가시는 걸음마다 송이송이 꽃이 피네

꽃신을 신고 가시는 걸음마다 송이송이 꽃이 피네



할아버지와 꽃신

내 어린 날 우리 집은 집안 어디에서나 꽃신을 볼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놀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디선가 꽃향기가 몰려오는 듯하였다. 가죽을 자르고 광목과 모시에 쌀풀을 먹이시면서, 할아버지는 치맛자락 너머로 살포시 고개를 내밀 꽃신의 코끝을 꿈꾸고 계셨다. 할아버지는 왕실의 신을 만들던 조선 왕조 최후의 갖바치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심부름을 하면서 어깨 너머로 꽃신의 유려한 곡선과 자연스러움을 배웠다. 그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도 그 향기 따라 꽃신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끔 가슴이 설레기도 하였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할아버지의 어깨는 야위고, 어깨 너머로는 쓸쓸한 바람이 불어 다녔다. 옛날 신분제도가 무너졌을 때, 사대부 집안에서나 신던 귀한 꽃신을 너도 나도 신어보려는 통에, 엄청나게 주문이 늘어 정신없이 꽃신을 만들기도 하셨던 할아버지. 그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쓸쓸함이 내 것처럼 생각되었다.



길을 걸으며

길이 있었다. 아무도 내게 그 길을 걸어가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길로부터 살포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과 길가에서 살랑살랑 고개를 흔들던 풀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할아버지의 후계자인 아버지가 훌쩍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그 길은 더욱 나의 길로 생각되었다. 그냥 잊어버릴까 고민할 새도 없이, 연로하신 할아버지는 자꾸 노쇠해지셨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다. 할아버지가 가시기 전에 모두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정신없이 꽃신에 몰두했다. 할아버지는 주무시다가도 내가 궁금해 하는 게 있으면 일어나 일러주셨다. 할아버지도 마음이 급하셨던 게다. 이젠 할아버지도 떠나시고 오롯이 혼자 남아 길을 걷는다. 내가 처음 신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가 아마도 열여섯 살이었을 거다. 어느 새 40여 년이 흘렀다. 너무 살기 힘들어서 포기해버릴까 고민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하지만 내가 아니면 꽃신 만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잊어버릴 수 없었다.
 
신과 함께 보낸 인생 40년

내 어깨 위에 켜켜이 내려앉은 외로움은 외로움이 아니다. 언제나 치열했고, 언제나 뜨거웠던 나의 인생이다. 사람들은 구두나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점점 꽃신을 잊어간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에서 꽃신 만드는 법을 전수받고 있는 아들에게 나는 외로움을 이기는 법도 함께 가르친다. 5대째 이어온 가업이 내 아들을 통해 6대째 맥을 잇고 있다. 아들이 광목과 모시에 풀칠하여 백비를 만드는 동안 나는 꽃신에 어려 있는 정신을 이야기한다. 백비를 말리는 데는 가을이 제격이다. 낮엔 햇빛에 마르고 새벽엔 이슬에 젖으며 백비는 칼날처럼 빳빳해진다. 인생이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며 제 모습을 찾아가듯이. 구두는 신에 발을 맞춰야 하지만, 우리 전통 신은 발 모양에 맞게 서서히 신의 모양이 바뀐다. 그래서 꽃신에는 오른쪽과 왼쪽의 구분이 없다. 이것이 우리 신이 갖고 있는 미학이다. 바람은 몰라도 인생은 안다. 내가 만든 이 신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죽과 백비를 자르고 붙이고 두드려 신발을 만들면, 코끝이며 뒤꿈치는 붉은 꽃송이처럼 피어나는 것 같았다.   

▶글 |이지혜    
▶사진 |임재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