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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서양화가 김명식

 

 

아침부터 저녁까지 왼종일 바람이 불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일러주네'. 비가 내리는 바다는 회색 운무에 잠겨 있고, 거친 바람에 휩쓸린 안개는 흩어지며 허리가 휜 나무들 사이로 흘러간다. 이제 또 오늘 내게 주어진 일들을 하러 저 바람 세차게 부는 세상 밖으로 떠나야 한다.
 아마도 이 세상엔 ‘귀로 듣는 향기’ 매향(梅香)만큼 기품 있고 그윽하고 깊이 있는 것은 없으리라. 어디선가 떨어지는 바늘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만큼 잠잠해야, 덜컹덜컹 살아 꿈틀거리는 모래 바람을 잠재울 만큼 고요해야만 비로소 봄 향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때란.
 그 바람, 연륜 깊은 산사와 고택의 담장을 넘어 동네를 하염없이 떠도는구나. 목련 꽃 망울, 눈매 고운 꽃샘 바람 타고 작은 꽃 불러 세운다. 은은한 향기, 절터 가득 흩뿌린다. 희디흰 솜사탕, 초록빛 산허리 곱게 수놓는다.
 '바람꽃 언덕', '바람 불던 날', 솔 바람', '울음으로 우는 산', '뻐꾸기 울음 소리' 등 대자연의 바람 소리를 억세게 좋아하는 서양화가 김명식(색깔로 만난 사람들 회장)씨는 자연과 인간의 내면에서 숙성된 그리움을 통해 '생명의 노래', '환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따뜻한 체온으로 모든 걸 껴안는 화폭 속에 그 노래 점점 더 들려온다. 사실적인 풍경 묘사보다는 마음속에서 한번 걸러 낸 풍경들을 재구성한 게 작품의 특징.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화면은 활달하고 자유로운 느낌을 주며, '원형이정(元亨利貞, 하늘이 갖추고 있는 네 가지 덕)'의 질서와 생명의 규칙, '소가 되새김질하듯' 담아내고 있음이런가.
 "어디서 불어온 바람이기에 온 세상을 이토록 흔들어 놓고 가는가. 그런데 나는 왜 이리도 흔들리고 있나. 필시 마음. 그렇다. 내 마음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고 나면 남는 것이 무엇이던가"
 여름 장마가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불던 어느 날. 해바라기는 가끔 억센 바람에 뒤로 넘어질 것 같다가도 다시금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청년 시절에 가슴을 뒤흔들었던 게딱지처럼 웅크리고 있던 산동네의 가슴저림을 아직도 품고 있다. 회색톤을 두껍게 사용하여 거친 질감을 드러내다가, 나이프를 들어 긁고, 또 긁어내면서 그들의 아픔을 받아들이곤 했었다. 의도적으로 각을 세웠고, 약간 과장된 묘사를 통하여 왜곡을 시도하면서, 급경사로 이어지는 쓸쓸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면서도 당당하려는 사람들의 건강한 마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었다"
 시선이 모아지는 '어느 쓸쓸함에 대하여'란 작품. 이는 다름 아닌, 전주 공수네 다리 인근 노랑 은행잎은 가을의 낭만보단 을씨년스럽게 따닥따닥 붙은 산동네의 '생.놀이'. 다리 바로 위는 전주와 완주를 잇는 보광(普光)재가 자리하고.
 ‘보(普)’자는 '햇빛(日)이 평평하게 나란히 구름층에 가려져 그늘이 넓다, 침침하다'는 뜻이며, ‘광(光)’자는 '사람이 치켜든 횃불(火)이 밝게 비친다 하여 빛나다’는 뜻인 만큼 작품 왼편의 새 두 마리 암수 서로 살갑게 빛을 노래한다. "당신 생각이 옳아요", "자기 옷차림이 어울려요" 칭찬을 입버릇처럼 자주하다 보면 다가오는 겨울이 결코 두렵지 않다.
 일찍이 폭설이 쏟아지는 날에는 문풍지 구멍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곤 했다. 산하엔 자주 대설주의보가 내렸고, 눈발 아래로 모닥불을 피운채 찬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곤 했다. 땅이 숨을 쉬는 듯, 하늘이 숨을 토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아들이기에는 참으로 미약한 존재임에도 불구, 당당한 힘으로 이를 이겨내질 않았나.
 3일까지 전북예술회관 1층서 열리는 '색깔로 만난 사람들'의 정기전 출품작 '내가 나에게'는 3백호 크기의 작품이다. 보이지 않는 길에서 보이는 길을 생각하고 있는 지를, 새는 새의 자리에, 사람은 사람의 자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가를 '내가 나에게'. '각득기소(各得其所)'란 말처럼 '모든 것이 그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된다'면. 작가가 꿈꾸는 이상의 세계다.
 초록빛을 담아두었다. 희망은 또다른 희망을 낳으리라는 확신으로. 새 길, 새 들판, 새 하늘과 만나기 위해 종종 여행을 하곤 한다. 빗줄기에 맞춰 슬근슬근 '마음의 담금질'을 시도해본다. 당신을 통해 바라본 세상, 연애처럼 설레이는 희망은 지난 밤의 생채기로부터.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

 

 세월에 다독거려진 눅진한 시간들을 털고 캔버스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말간 봄 바람을 부여잡아 돌돌 말아 담아둔 산하의 하늘 끝 노래를 펼치며 오늘도 사뿐사뿐 걸음을 걷는다. 산을 오를 때마다 긴 호흡으로 다가서는 삶의 이야기에 항상 의식의 심층에는 두꺼운 사념을 쌓아 두곤 한다. 자연의 가장자리만 맴돌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므로 볼품없는 마음 헤집어 한 발짝이라도 자연의 품으로 내디뎌보고 싶구나. 연약한 붓끝을 들어 세상을 이야기 하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2.미술평론가 김선태씨가 본 작가

 

 어둡고 깊은 회색조의 색채는 당연히 인간에 대한 끈질긴 애정을 표현키 위해 밝은 색채를 대신하게 됐고, 낡고 초라한 산동네는 확실히 번듯하게 보이는 고층 아파트와 같은 외양은 갖추지 못했으나 대신에 인간적이고 삶의 무게가 실린 생명력을 담고 있다. 이러한 산동네 연작들은 주제의식 못지 않게 이전의 치밀한 묘사 위주 사실주의 작업보다는 조형적 탐구는 물론 재료와 기법의 다양한 시도까지 곁들여져 작가의 가장 중심되는 소재가 되고 있다.

 

3.수필가 선산곡씨가 본 작가

 

 작가의 그림은 무겁다. 두터운 물감의 질감이 아니라 언어의 육중함이 단단하게 드리워 있어 보인다. 아닌게 아니라 그 안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가 말하고자 했던 수 많은 이야기들이 타래실처럼 풀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향이 보이고 추억이 보이고 상처와 애린이 보인다. 그의 그림은 무겁지만 뜻밖에 포근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4.작가가 걸어온 길

 

임실 출신
개인전 3회
한남대학교 졸업
그룹전 및 단체전 125회
국제교류전 10회
제10회 반영미술상 수상
(현) 한국미술협회, 전북구상작가회, 중작파, 상형전, 전주 누드 크로키회 회원
(현) 신흥고등학교 근무, 색깔로 만난 사람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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