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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기업가, 수필가 국중하

 

 

벚꽃 함박눈이 소복히 하늘을 뒤덮고 있는 4월. 터질듯한 꽃송이는 고운 꿈 가득 싣고 몽실몽실. 어느 틈엔가, 슬그머니 손을 잡은 연인들은 그들만의 세상에 빠져들며 희희낙낙.
 완주군 동상면 수만리 학동마을의 학동산 인근의 문화공간 ‘여산(餘山)재’에 울긋불긋 봄 기운이 완연하다. 벚꽃을 비롯, 온갖 나무 가지에 꽃들이 환하게 형광등을 켠채 송이마다 꽃술이 앙증맞게 붙어 있다. 분홍빛 복숭아 과수원이 구릉 언덕에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으니 무릉도원이 따로 있는가.
 꽃을 ‘보는 법’은 꽃마다 다를 터. 산수유는 노랗게 물든 색깔에, 벚꽃은 꽃보다는 그 규모에 눈길이 가고 철쭉은 강렬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깊어만가는 상념에 꽃멀미가 다날 지경이다. 아득하니 아름다운가, 아름다우니 아득한 것인가.
 그야말로 세상은 온통 꽃천지이지만 임권택감독의 영화 ‘천년학’에 유봉이 죽기 직전 매일 부른 ‘사철가’의 여운은 잊혀지지 않고. ‘이산저산 꽃이 피니/분명코 봄이로구나/봄은 찾아왔건마는/세상사 쓸쓸하더라/나도 어제 청춘일러니/오날 백발 한심쿠나/내 청춘도 날 버리고(하략).’
 ‘여산재’의 주인으로, 네 권의 수필집을 펴낸 국중하(우신산업주식회사 대표이사, 공학박사)씨와 뻘건 백주 대낮에 오디주 한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무상한 세월을 단단히 붙잡아두었다. 

 “논어의 ‘옹야(雍也)편’에 ‘요산요수(樂山樂水)’가 소개됐으니, ‘지자는 요수(知者 樂水)’요 ‘인자는 요산(仁者 樂山)’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 이 성어의 본뜻은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조용하며, 지혜로운 자는 즐겁게 살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는 의미이니 물과 산을 지칭하고 있는 것이죠”
 국씨는 봉동읍에서 자동차와 선박에 필요한 기계를 납품하는 우신산업을 20년 넘게 운영하면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2003년 12월 13일 이곳에 ‘여산재’를 들이게 되었다고.
 “지난 1973년, 돌아가신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 밑에서 울산조선소(현대중공업)가 27만톤의 배를 만드는 당시에 현대건설(주) 기계과장으로 일하는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무렵,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에 시찰을 갖는데요. 50이 넘은 여자가 영빈각에서 잔잔한 베이직 음악을 틀어주면서 손님을 지극 정성으로 접대하는 그 순간, 마음 속으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일본은 자원과 경제력만 앞서는 강국이 아닌, 문화도 한국보다 훨씬 월등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바로 이같은 생각을 갖고 사업을 시작한 지 참으로 오랫만에 문화공간 설립의 꿈을 이뤘으니 바로 ‘여산재’입니다”
 ‘여산’이란 호를 지어준 수완스님(통도사)을 생각하면서 지은 '여산재'는 산속에 생뚱맞게(?) 들어앉은 문화공간이지만 다실, 서재, 외국인과 내국인를 배려한 숙소가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음은 물론 공연 및 세미나, 전시실을 겸용한 외부 공간을 갖춘 문화사랑방.
 그동안 연중 무휴(단, 공휴일은 제외)로 운영하면서 문화산업 창업 강좌, 관리자 대학생 취업대비 워크샵 , 가톨릭문우회 심포지엄, 전주시립국악단 공연, 주부클럽연합 전북지부 세미나, 전북수필문 제58호 출판기념회, 국제 디자인 대회 등의 행사를 통해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상태.
 2001년엔 여산장학재단 이사장을 맡아 후학들의 든든한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기도. “죽을 때까지 배우고 또 일하기 위해 창업을 한 지 올해로 스물 한 돌입니다. 새로운 것들을 찾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혼자 보기 아까워 꿰놓은 게 수필입니다. 대중 앞에 한걸음 더 다가가는 부드러운 글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퇴고를 거듭하면서 원고지와 씨름 한판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8년 8월 ‘수필과 비평’ 수필부문 ‘성지를 찾아서’로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그는 한국문인 문학상 본상과 전북수필문학상 등을 수상하면서 ‘들녘 바람몰이’ 등 4권의 수필집을 문단에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내 가슴 속엔 영호남 고속도로가 알린다’, ‘호남에서 만난 아내 영남에서 만든 아이들’이란 수필집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옴은.
 “남북간에도 반세기의 쇠사슬을 끊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영호남의 화해는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게 안타깝습니다. 클릭 한 번 하면 지구촌의 모든 것들이 해결되는 지금, 영호남은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대한민국이란 작은 땅 덩어리 안에서 지루한 소모전을 계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와 해외 곳곳을 여행하면서 본 사회의 모습을 통해 영호남의 벽을 깰 요소를 하나하나씩 짚어본 것이죠”
 국씨는 전북의 문화예술을 울산에 접목하고, 울산의 공업을 전북에 도입, 서로 윈윈전략을 구사한다면 더 없이 바랄 바가 없다는 귀띔. 오늘도 작게는 울산과 전주, 크게는 영남과 호남을 이어주는 구름다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국씨는 한국문인 수석 부이사장, 전북수필문학회장, 전북수비문학회장, 새천년 문학회 문학상 운영위원장, 한국수필문학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전북문인협회, 영호남수필문학회 회원을 거쳤거나 현재 활동하고 있다.
 차 간을 맞게 빚어 달여진 ‘우전차(雨前茶)’를 손수 따라주는 즐거움에 오디주의 취흥이 스멀스멀 점점 더 사라져간다. 명징한 마음은 차분차분 점점 더 봄나들이를 종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햇살에 졸고 있는 꽃망울은 길 떠나가는 나그네를 반기는 천년지기.
 ‘벗님네들, 서로 모여 앉아서 한잔 더 먹소. 그만 먹게 하면서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세’. 어젯밤에 봄비 그친 ‘여산재’에서 꽃비 맞는 여정 속, 어느 덧 사뿐사뿐 다가오는 화려한 봄꿈. 글=전민일보 이종근부장, 사진=전민일보 백병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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