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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박운섭화백과 매니저 김점순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진정으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행복은 애시당초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인식의 차이로, 경험의 부족으로 인해 꼭 붙들지 못하고 있음이리라.
 지금 이 순간도 인류 세계는 과도한 경쟁과 물질주의, 소비주의로 심각하게 병들어가고 있다. 더욱이 사람들은 남들보다 더 많이 갖고 쓰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어른들은 일터에서,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이웃 또는 동료들과 심하게 경쟁해야만 하는 삶. 그래서 세상살이를 거칠고 황폐하게 만듬은 물론 타인의 자유와 평화마저 앗아가고, 적대감과 미움은 하늘 높은 지 모른 채 높아만 간다.
 남들보다 높아지려고도, 많이 가지려고도, 앞서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 나보다는 남들이 더욱 높아지고, 더욱 찬란해지길 바라는 사람, 그로 인해 더욱 값진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사람.
 중견 서양화가 박운섭화백의 아트 매니저 김점순씨는 꽃소식 한아름 안고 미소를 머금은 채 행복이 ‘봄날의 새싹’처럼 더욱더욱 많아지기를,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지난 밤새에도 기도했다.

 “땅이 품고 있는 씨 과일, 아니 이미 꿈틀거리고 머리를 내밀고 있을지도 모를 희망의 새싹을 찾는 것이야 말로 투자의 요체며, 인생에 임하는 자세가 아닌가 합니다”
 박화백의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익산시 춘포뜰 들녘은 이미 따뜻한 봄볕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등 봄이 한 가득 잡힌다. 그래서인가, 새로운 마음들이, 새로운 자리에 앉아,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하며 비상의 나래를 맘껏 펼친다.
 바람막이 구실을 해주는 돌담 아래는 유채꽃이 서서히 피어나고 있고, 머지 않아 샛노란 물감을 터트릴 것이다. 길을 따라 피어난 산수유는 봄을 맞는 열여덟 처녀의 두근거리는 가슴처럼 수줍은 듯 살짝 미소 짓는다. 초록이 점점 짙어지는 밭엔 한가롭게 풀을 뜯는 염소떼하며,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면서 아득하게 멀어진 모악산도 어렴풋이 보인다. 연분홍 꽃물이 마음밭 깊은 곳까지 번져 가는 이 봄날에 나는 어느 새 행복한 여자가 되었소이다.
 “작품에만 전념해온 박화백이 언제부턴가 매니저 역할을 할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만나보곤 했죠. 2-3년이 지나도 합당한 사람을 찾지 못해 고민하더니만 저에게 그 역할을 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달하게 됐습니다. 때문에 남편이기도한 박화백의 매니저가 되어 4년 동안 전문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매니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짬을 내 도서관으로 발길을 옮겨가며 관련 서적을 훑어보고, 다도를 배우고, 요즈음에는 작가의 미니홈피, 카페, 블로그를 제대로 꾸리기 위해 컴퓨터와 씨름하고 있다고. 머지 않아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문화와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깊이의 깊이를, 무게의 무게를 다져나가고 싶단다.
 박화백을 만난 것은 십수년 전, 지금의 남편이 경영하던 미술학원으로부터. 사무실에 소를 그려놓은 그림 한 점을 보면서 감동을 받아 결혼할 생각을 하게 됐다는 것. 소의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그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김씨. “선한 소의 눈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을 송두리째 맡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이후로 마음을 활짝 열고 자주 만나다가 드디어 결혼행진곡의 주인공이 됐죠”
 미술과 관련된 직종은 참으로 많은 게 현실. 미술관, 박물관 화랑 및 전시공간에서 기획 업무를 담당(학예, 교육, 홍보, 관리 등)하는 큐레이터를 포함, 아트 딜러, 아트 디렉터, 아트 컨설턴트, 아트 코디네이터, 갤러리스트, 그리고 아트 매니저에 이르기까지.
 “여러분들은 아트 매니저를 아시나요. 아트 매니저는 작가의 중.장기적인 활동 계획과 전시, 홍보 마케팅, 해외시장 진출, 컬렉터 관리 등을 입체적으로 경영해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화가들을 연예인처럼 관리해 주는 게 주 업무죠”
 김씨는 아트 매니저가 직접 화가들의 작품 전시 및 판 매 계약을 챙기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이지만 한국에서는 이제 걸음마 단계란다.
 김씨를 위해 곧잘 하모니카를 불어준다는 박화백은 “고흐의 든든한 후원자인 테오같은 매니저가 있어 든든하기만 합니다. 전시회 또는 작품 의뢰, 홍보 등을 매니저가 도맡아 해결해주는 만큼 오로지 좋은 그림만을 생각하며, 더욱 더 좋은 작품을 남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설명.
 박화백은 1990년부터는 ‘둥지 속의 여인’을, 1996년에는 ‘해바라기’를, 2000년부터는 ‘꽃 속의 여인’을 의인화하는 등 ‘행복을 그리는 남자’를 오래 전부터 자처하고 있다.
 작품은 자연의 원초적인 색감을 명쾌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모나지 않게 다듬어진 붓질, 안정된 형태감과 원숙한 미감을 표출하고 있다. 영화 ‘서편제’와 같은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해에 찌든 도시에서 망각처럼 시달리며 사는 도시인들에게는 비온 뒤 맑은 바람을 쏘이는 듯.
 몇해 전, 쌍용자동차 달력에 박화백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내게 만든 김씨는 올해 서울 초대전을 포함, 프랑스와 일본의 전시회 준비를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림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눈으로 고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제부터라도 감동이 동반되는 그림에 투자를 해보시죠. 물론 작품은 상류층의 전유물만이 아니랍니다. 문화를 꽃피우는 몫은 예술가 혼자만의 힘으로 되지 않고 애호가들이 더 큰 몫을 차지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랍니다”
 5월경에 핀다는 밝은 붉은색의 공작 선인장이 캔버스 위에서 봄꿈을 꾸고 있다. 흠뻑 취해 꽃멀미가 다날 지경이다. 이른 바 화신(花信)은 시시각각 북상하며 기다림과 설렘을 동반하고 있는데, 이미 나는 화실에서 이 꽃의 포로가 되어 버렸다. 글=전민일보 이종근부장, 사진=전민일보 백병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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