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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사람들

도의회 의원, 서예가 권창환

 

 


 샛노란 산수유가 시시각각 파스텔톤으로 전라산천을 곱게 물들이고 있다. 달 밝은 밤에 좋은 친구와 함께 매화우(梅花雨) 흩날리는 서정을 벗삼아 술 한 잔을 하고 싶잔다. 매화꽃 가지 너머로 멀리 산 중턱을 감싼 구름이 선계에 들어 있음을 증명하는 징표. 아무도 없는 작은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나는야 한동안 신선이 된다.
 상촌 신흠(1566-1628)의 '야언(野言)'에 나오는 '매화는 일생 동안 추워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매일생한 불매향, 梅一生寒不賣香)'는 한시를 마음 한켠에 저미고 산다는 전라북도의회의원(완주1, 행정자치 위원)이자, 서예가인 무산 권창환(담묵회 회장)씨.
 '오동나무로 만든 악기는 1천년을 묵어도 자기 곡조를 고스란히 간직한다'는 뜻의 ‘동천년로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과 멋진 대구를 이루는 구절로, 한편 참으로 멋스럽기도 하지만, 한편 명예를 먹고 사는 사나이 대장부인 만큼 예서 긴장을 잠시라도 멈출 수 없지 않은가.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매죽헌(梅竹軒)' 성삼문이 죽음 앞에서도 매향을 팔지 않았듯이 말이다.
 모악산 저 먼 발치에서 붉은 홍매화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음을 생각하자니, 춘심은 은은한 묵향의 세계이어라. ‘끝없는 자유의 경지에서 노닐고자(유무극지야, 遊無極之野,)’ 무심필로 자연스런 감흥을 표출코자 하지만 '법고창신(法古倉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의 길은 아득하니 멀기만 하다.
 요즘 들어 물 흐르듯 저만치 흘러가는 세월이 다 무서울 지경이다. 그러나 저 덧없이 흘러가는 촌음을 무상타 탓하지만 말고, 하루하루 가슴 가득 무언가로 채워야겠다. 아니, 비우는 연습을 함이리니, 나를 다른 세상으로 잘도 인도하는 서예의 깊은 맛.

 "모악산 대원사 주지스님의 부탁을 차마 뿌리칠 수 없는 입장이라서 행서로 '적묵당'을, 예서로 '모악당'이란 휘호를 습작하고 있습니다만 실로 엄청난 부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는 5월 12일 부처님 오신 날 이전까지 온전하게 숙제를 끝마쳐야만 '수행 정진으로 세상을 향기롭게' 만드는데 저도 일조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시로 부서지는 봄햇살이 더없이 청아하기 그지없는 27일 오전 10시 무렵. 전라북도의회에 자리한 의원실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나그네가 독차지하고 있는데, 권의원은 목을 옥죄오는 고통을 피할 길 없는 신세.
 권의원이 서예에 입문한 것은 지난 1999년. 완주군청 직원이 전주의 서예가 백담 백종희(담묵회 서예연구원장)선생을 소개,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입문한 이래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입선 2회,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 특선 2회, 한국서예대전 특선 4회, 전라북도서예전람회 우수상을 수상하는 등 10여 년 동안 '절차탁마'를 하고 있는 오늘이다.
 먹선의 다양한 스펙트럼이 표출된 작품마다 유려한 필치와 힘찬 기운이 돋보이는 가운데, 특히 즐겨 쓰는 예서는 굵고 반듯한 느낌 그대로 '기운생동'이 한껏 느껴지고 있으니, 자신의 성격과 너무나도 빼닮은 듯.
 "대둔산 배티재 휴게소 옆 이치대첩 전적지는 임진왜란의 대첩 중 하나로 알려진 '이치(梨峙)대첩'을 기념하기 위한 문화재(전북기념물 제26호)입니다. 이는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로,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왜군이 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침입해 와 권율장군과 황진장군 등이 전라장병 1천5백명을 지휘해 왜군을 격퇴한 곳이죠. 임진왜란의 서전을 장식했던 전투이므로 행주대첩과 웅치대첩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견인차 역할을 했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권의원은 바로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반추하면서 '서화동원 5백인 초대전(깃발전)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조선이란 나라는 망했다)'의 의미를 되새기는 작품을 남기기도. '약무호남 시무국가'는 유득공이 1795년(정조 19년) 편찬한 이순신장군의 문집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의 끝부분 서간문 모음집에 실려 있는,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 속 글이다. 보낸 날짜는 정확히, 임진왜란 발발 1년 2개월 여가 지난 1593년(선조 26년) 7월 16일.
 권의원은 담묵회 제8회 정기전을 통해 '비비낙안(飛飛落雁, 완산팔경중 하나로 '비비정'에 해질녘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통해 고향을 노래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자신의 작품 ‘위민의정(爲民議政)’을 도의회의장실에 기증하면서 “도의원들이 ‘도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고자 하는 각오를 다시 한번 다지고 실천하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모두었다"는 설명. 이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지난해 전북도의회(의장 김병곤)가 청사 1층 로비와 홍보관에서 담묵회 회원들의 작품 38점을 전시하는데 회장으로서 선봉장에 나섰다.
 "천하를 종횡하며 영웅들을 정복하고, 호호탕탕 70만 대병을 얻어 적벽까지 내려온 중국 위나라의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과 촉나라 유비의 연합군 100만 대군과 대전을 앞두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조조는 지난 세월의 감회에 젖은 채, '월명성희(月明星稀, 달은 밝고 별은 드문데) 오작남비(烏鵲南飛, 까막까치 남쪽으로 날아가네)' 기나긴 창을 비스듬히 비껴들고 즉흥시('횡삭부시'란 고사성어)'를 지었던, 참 여유를 생각하면서 서예 공부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붓으로 쓰는 글씨는 송곳으로 모래판을 긋듯이 하고, 붓끝으로는 용과 뱀처럼 생동감이 넘쳤으면 한다"는 권의원은 전라북도의회, 전주의 서실, 완주군의 사무실, 자택 등 4곳 모두에 문방사우를 차려 놓고 소동파의 '적벽부'를, 그 '적벽부' 속의 '횡삭부시'를 흠모하면서 틈만 나면 먹을 갈면서 '마음의 밭'에 경작을 한다. 아주 큰 산을 의미하는 호 '무산(無山)'은 지금 어디까지 진도를 빼고 있는가.
 깜깜한 봄 밤. 하늘은 맑고 차갑다. 그냥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별 하나에 꿈 둘. 나도 모르게 지그시 눈을 감았다. '아하! 이제야 알겠다'. 이 봄날의 매향은 코가 아니라, 저 마음을 적시는 향기로소이다. 하늘 향한 길섶에서 살째기 ‘천년 미소’ 를 훔쳐 벼루에 담궈본다. 글=전민일보 이종근부장, 사진=전민일보 백병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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