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시나브로 깊어갑니다. 무르익은 봄은 알록달록, 형형색색 마음마저 포근하게 만드네요. 바로 그것을 찾으러 그림에 몰두하는지도 모릅니다.
저 먼 한적한 산골 마을. 새벽잠을 깨우는 닭 우는 소리가 정답게 들려오고, 어둠에 덮여 있던 마을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는 모습은 생물이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
얼굴에 내리쬐는 따스한 봄볕과 뺨을 스치는 봄바람이 향긋한 미소로 다가올 즈음, 해맑은 동심을 만날 수 있었답니다. 봄내음을 풀풀 품은 상태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서로 나눈 것은 '희망'이란 두 글자.
거센 물살을 뚫고 강바닥에 몸을 바싹 밀착시킨 채 오로지 자갈에 의지하며 자꾸만자꾸만 상류로 오르는 물고기떼들의 반짝이는 금비늘은 또 어떻합니까.
건너편 산들은 이미 노란 색상으로, 하얀 빛깔로 채색을 이미 끝마친 상태입니다. 때론 쭉쭉 뻗은 소나무가 빨간 속살을 부끄러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대여! 숨이 막힐 지경이면 '산-첩첩, 물-철철' 봄노래를 흥얼거리라고.
'한적한 대웅전 앞에 무더기로 피어난 수선화 노란 꽃. 요사채 섬돌 밑에도 한 송이, 차가운 봄바람에 꽃대궁 흔들거린다'는 어떤 시인의 말을 생각하면서 부안 개암사로 향하는 길. 시골 버스가 덜컹덜컹 고요한 아침을 깨우면서 달려갑니다. 그 자리에서 한바탕 눈물을 펑펑 쏟아부은 채 다시 오지 못할 지난 나날들을 곱씹어 보았답니다.
서양화가 김혜숙(전북미술작가회 부회장)씨가 쓱싹쓱싹 붓칠한 '봄이 오는 개암사'란 작품입니다.
"첩첩한 산줄기들은 아침 안개와 함께 부드러우면서도 힘찬 곡선을 이루면서 대자연의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산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리드미컬한 율동미를 제공하면서 인간의 헛된 지배욕을 말없이 질타하는 것 같네요. 우리는 자연에서 나서 결국은 드넓은 자연의 품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요"
'심원 계곡의 정취', '모악산 길따라', '고향의 강가에서', '산천 예찬', '선유도', '하일의 정', '바람부는 날에' 등 작품은 목가적 풍경에 대자연의 소소한 아름다움까지 발견, 캐치해내는 시선은 사실주의에서 비롯되었구요. 봄볕처럼 따사로운 작품의 실체입니다.
작가의 내면에 자리란 원초적 노스탤지어는 인간의 고향인 자연에 대한 회귀 본능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네요. 향수가 깃든 풍경을 통해 잃어버린 저 먼 시간과의 대화를 시도, 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화면 속의 형상이나 이미지들은 독특한 조형미를 갖추면서 대화를 나누게 만듭니다.
문득, 그림이 말을 건넵니다. 화면 가득 산, 들, 바람, 물 등 풍경이 차분하면서도 작가의 성격처럼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어떤 경우는 진득하게 삶에 대한 성찰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을 향한 무언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그림인 셈이죠. 그는 사고의 깊이와 폭이 어떻게 조형 언어로 형상화되는가를 주시하도록 만드는 대목이랍니다.
"이상과 일상의 수레바퀴를 돌면서 숨바꼭질로 해가는 줄도 몰랐던 시간들이 어느 덧 16년이란 긴 터널이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이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내 안의 욕망을 가두기에 적절하고도 안락한 나만의 안식처가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곳은 항상 자유로웠습니다. 자연을 바라보면서 허심탄회한 미소를 지어도, '미의 세계' 뒷자락을 웅켜쥔 채 고민하고 투정을 해도 항상 용서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으로 포근히 안아주네요"
색채와 표현법은 지극히 단순하고 투박하지만 그 속에서 발하는 미묘한 색조의 변화는 세월을 쌓아 온 연륜을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항상 아쉬움을 남겨놓는 여백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넉넉하게 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개암사를 뒤에 두고 떠나가는데 자꾸만 고개가 돌려집니다.
"온 세상을 디딜 수는 없다하더라도, 자신 안의 숨겨진 영혼을 깨울 수만 있다면, 혹은 숨 막힐 듯 아름다운 자연을 통해 황홀한 나날들을 상상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큰 위안을 받을 수가 있지요"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 온천지를 하얗게 물들이는 배꽃, 노란 산수유가 전하는 말을 두 눈에, 아니 오로지 하나 뿐인 맘 속에 가득 담아오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받아놓은 오는 2회 개인전(5월 계획)으로 인한 중압감 탓인가요. 하늘도 가슴이 터질 듯, 이내 심금 다시 한번 찡하게 울립니다. 글=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사진=사진작가 유연준
1.작가의 말
언제나 풍경을 즐겨 그립니다. 풍경을 그리다보면 대자연은 언제나 겸손한 심상과 순수한 몰입으로 향하게 만들구요. 일상적인 시각으로 다가선 마을 어귀의 이야기를 화화적 이미지로 조각하면서 낯설지 않고 풍경 앞에서 오묘한 신비에 사로잡히곤 한답니다.
마을 어귀에는 늘 마음속에서 자리하는 고향의 향수가 산과 들을 향하여 줄달음칩니다. 내면의 주관적 체험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체감하면서 희열에 안기고 있는 자아를 발견합니다. 마을 동구의 굴뚝 연기 속에서 피어오르는 행복한 욕망은 캔버스에서 붓 끝에서 안겨 나래를 활짝 펴봅니다.
대자연의 모습은 나의 심연에서 한 장의 이야기가 되어 교감을 통해 합일점을 찾아 그렇게 밤이 새는 줄도 모르네요. 오늘도 사실주의에 입각하여 숨김없이 다가섭니다. 순진무구함이 아직 그대로 살아있는 본연의 순백을 드러내고 있는 증거이겠구요.
신이 붓으로 말하기에 나도 붓으로 꽃을 그리면서 신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하루 해가 저물어 갈 때 오히려 저녁 연기와 노을이 더욱 아름답고, 한 해가 저물어 갈 즈음에야 귤은 잘 익어 더욱 향기롭고 탱글탱글하네요.
2.작가가 걸어온 길
임실 출신
우석대 대학원, 군산대 대학원, 전주대 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개인전 1회(전주)
전북미술대전 입선 4회
전국춘향미술대전 입선 2회
현대미술대전 입,특선 4회
전라북도-가고시마현 국제교류전
중한 중견작가교류전
전주일요화가회 정기전(1993-2007)
(현) 전주일요화가회 회장, 전북미술작가회 부회장, 전주대 국제교육교류원 객원 교수
(현) 현대미술대전 초대작가, (사)한국전업미술가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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