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샛강 하나가 총총한 별에 의지하고, 살붙이 생명들은 별빛을 배고 수초 아래서 곤히 잠을 잔다.
하지만 당신이 내 인생의 여로에 동행해 주신다면 마음 기댈 수 있고 웃음 나눌 수 있는 마음하나면 부러울 것 없다고 마음 굳게 먹고, 내 인생의 여로에 동행해 주신다면 걷는 길이 험하다고 돌아가지 않고 앞만 보고 걸어가겠다는 의지 하나 만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없는 게 바로 인생사가 아닌가.
분명코, 어떤 슬픔도 옛 사람이 걸어간 발자국보다 더 가슴 아릴 수는 없다. 그 선조들보다 더 오래된 선현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며, 또 한편으론 자손들을 위해 바른 길로 인도해야 했으니 지상에서 가장 숭고한 길인 동시에 훨씬 가파른 ‘길(道)’을 거닐었을 것이다. 내리사랑을 부정할 수 있는 도가 지구상에 흔하게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다.
다만, 진한 슬픔은 우리 마음의 깊은 상처는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차츰 아물어가면서 모두가 부처님이 되고, 예수님이 된다. 바로 지상에서 당신이 ‘도(道)’를 추구하는 전정한 이유다.
중견 서예가 백담 백종희(담묵회 서예연구원장)씨의 작품 ‘야설(夜雪, 서산대사)’. ‘눈 덮인 들판을 걸어 갈 때는(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아라(不須湖亂行, 불수호란행)/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반드시 뒷 사람의 길이 되리니(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눈길 위에 자신이 남긴 발자국은 후세에게 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 발자국을 남겨 놓으면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잘못된 이정표로 빠져들 수 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모든 서체를 두루 섭렵하고 있지만, 특히 예서부문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작가의 작품 ‘야설’은 전라북도의회 3층 복도에 자리한 채 도민들을 맞이하고 있는 대표작.
같은 장소에 놓인 ‘정관(靜觀, 정호)’은 한걸음에 내달린 행서 작품으로, ‘야설’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닐까. ‘고요히 살펴보는 일’은 다스림을 얇은 얼음을 밟는 것과 같이해야 하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수 없는 이치를 추구했을 때 만들어지는 결과물.
“해성중학교 3학년 때로 기억됩니다. 지인이 ‘전동성당’과 ‘성심유치원’을 휘호해 달라는 부탁을 한 까닭에 식사도 거른 채 몇날 며칠을 썼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등 철모르던 시절에 쓴 글씨가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어 살붙이로 긍지를 느끼기도 합니다만, 성당측에 다시 써줄 의향이 있다고 여러 차례 얘기를 했는데 묵묵부답입니다”
“세속을 초월한 고답의 경지를 펼침으로써 마음이 상쾌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이제 중견작가로 서단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날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작품 오른편에 한자가 나오면, 반드시 왼편에 한글 뜻풀이를 하는 배려를 잊지 않고 있단다. 예서로 반듯반듯하게 쓴 성경 구절은 삶의 푯대로, 스승의 가르침이 되어 내 맘을 온통 지배하기도.
“앞으로도 동양 고유의 정신적 토대 위에 새로운 표현 기법과 시대적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싶습니다”
찰윤한 먹색, 날렵하고 활달한 필치의 기법적 혼용 등을 통해 한층 진일보된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한다는 작가는 오늘도 눈덮인 광야를 지나갈 때, 함부로 걷지 않고자 더딘 발걸음으로 세상의 온갖 풍파를 잘도 견뎌내고 있다.
훗날의 의미있는 이정표를 남겨놓기 위해 필묵과 씨름을 거듭하고 있는 이 순간, 푸른 풀 일렁거리는 호숫가엔 백로가 졸고 있다. 갈매기의 꿈이 무르익을 무렵, 봄밤은 하냥없이 자꾸 깊어만 간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
노루귀, 복수초, 꿩의 바람꽃, 변산바람꽃, 현호색 등등 야생화가 너무 많아 현기증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겨우내 쓸쓸한 잿빛으로 가라앉았던 산등성이에 흰 솜털 같은 매화꽃이 군데군데마다 수를 놓는 한편 섬진강변을 따라 매화 향기가 그윽한 남녘은 봄기운이 물씬 흐르고 있다.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연노란 산수유꽃이 봄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오늘, 먹빛을 통해 곱디 고운 마음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오늘처럼 나른한 날은 떠남을 굳이 주저할 필요가 없었다. 애써 방향을 헤아리지 않고 무작정 헤매도 어디서든.
2.원로서예가 권갑석씨의 평
작가는 진북초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백하 김완영선생으로부터 차근차근 기초를 다진 후, 알뜰한 서예공부를 시작, 오늘날까지 붓과 더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작품 활동에 정진하고 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자연이 그려놓은 ‘먹빛 수묵화’를 ‘마음의 거울’을 통해 반짝반짝 윤기를 더하고 있다. 치열하게 혼을 불어 넣어 흐르는 땅방울은 어느 새, 이 봄날의 향기로운 꽃물로 다가온다. 우리 시대 서예가 갖춰야 할 미학으로, 전통적이면서도 시대정신을 잘 갈무리하는 등 ‘낙필성자(落筆成字)’의 경지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3.주요 휘호 및 소장처
전동성당 제호, 전주 송천동성당 벽화 제호, 전주 홍산교회 제호, 전주금암교회 50주년 기념비, 군산상업고등학교 교지 제호, 전민일보, 전북도민일보, 전라북도의회, 전주시청, 완산경찰서, 완주군 구이면사무소, 한일장신대학교
4.작가가 걸어온 길
호:백담, 한물, 시우당, 탐묵재
전북 임실 출신
개인전 2회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특선 2회, 입선 2회, 심사위원
한국서예대전 특선, 대상
조선일보사 문예상(서예, 문교부장관상) 2회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 4회 출품
한국서예대전, 전라북도서예전람회, 벽골미술대전, 대한민국서예문인화대전 등 심사위원
전주시 문화예술 창작 활동 작가 선정
(현)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전라북도 서예전람회 초대작가 겸 이사
(현) 담묵회 서예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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