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을 모국어처럼 읽지 못하는 시대. 여기, 한문이 영원히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사문(死文)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말끔이 해소시키는데 앞장서기로 작정한 젊은 사람이 있다.
28일 열린 한국고전번역원(이사장 임형택, 원장 박석무, 구 민족문화추진회)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전주분원(분원장 김성환, 전주대학교 한문교육학과 교수) 제4회 수료식서 수석의 영예를 차지,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을 거머쥔 노미주(27.한국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 연구원)씨는 한문의 특성상 제대로 된 번역을 위해서는 오랜 세월 축적된 유추 경험이 필요하다는 귀띔이다.
‘한문 고전 국역 전문인 양성 기관’인 고전번역교육원 전주분원은 지난 1999년 3월, 한학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북에 인재 양성의 필요성을 느껴 국내 최초의 지방분원으로 탄생, 전주가 조선 왕조의 본향이며, 완판본의 고장,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한 바 있던 전주사고 등 문향이 고장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키며 노씨 등 14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조상들의 여러 가지 생활상이나 그들이 지녔던 사상과 감정은 물론, 정서나 가치관, 생활 태도를 엿보려면 주로 한문 기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볼 때, 한문으로 기록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해독하고 이해하여 과거의 전통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새로운 민족 문화를 꽃피우게 하는 것은 후손들의 도리요, 마땅한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김시습의 기상천외한 어린 시절 이야기가 사고의 벽에 일침을 가하는 것도, 황희 정승의 깊고 따뜻한 인간애를 행동으로 보여준 청빈하고 넉넉한 삶을 느끼는 것도, 전우의 권세에의 집착과 탐욕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비판을 우리들이 새록새록 느끼는 것도 모두가 고전 국역이 잉태한 옥동자임에란.
허름하고 비좁은 작은 교실서 3년 과정의 야간 커리큘럼을 정상적으로 마치고 수료장을 받는데까지는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을 터. 가히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말이 부끄럽지 않은 그였으리라.
참으로 길고도 험난한 고전번역연구원의 1천 여 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직장, 학교, 사회 생활로 인해 나른한 몸을 이끌고 밤에 수업을 받을 양이면 쏟아지는 잠과 권태가 어깨를 짓누르지만 예서 멈출 수도 없었다.
시시각각 내려 앉는 눈꺼풀을 차마 이길 수 없으면 세수를 한후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잠시 후에 이어지는 소리내어 문장읽기-.
잠은 어느 새 사라지고 청정한 마음이 되어 고금을 오가며 나는야 장자도 되고 노자도 됐다. 때론 ‘맹자’의 빈틈없는 논리에 세상의 병폐를 생각해봄은 물론 ‘통감’을 보면서 끊고 맺는 이치를, ‘고문진보’를 읽으면서 시속의 떼를 벗겨내는 기회를 가져보기도 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한 과정인 만큼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대충대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김성환분원장의 운영 스타일하며, 반드시 거쳐야할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이르기까지 말그대로 첩첩산중을 하나둘씩 걷어내기란.
물론 직장, 학교, 사회 동료로부터 들리는 무수히 많은 핀잔, 또는 볼멘 소리도 모두 이겨낸 후 갖는 수료의 기쁨은 더 없이 소중하기만 하다. 회식 자리에 준비된 술자리로부터의 유혹, 젊은 나이에 한문 공부를 해 무엇에 써 먹을려고 하느냐는 등 주위의 시선을 모두 극복하고 모처럼 밤이 아닌, 낮에 갖는 수료식은 보석처럼 빛이 나고.
“세상은 늘 변하는 것 같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인들의 관심사가 지금 우리 고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 사람들의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한문공부를 해 인재가 양성되어 국역사업에 동참하고 싶습니다”
원광대학교 서예학과를 졸업하고 대전서 직장에 다니고 있는 노씨는 한국한의학연구원 학술정보부의 연구원으로 활동, 지난해에는 ‘전통의학 고전국역총서’(1차) 12권의 내용 및 체제 편집에 참여했으며, 올해에는 ‘전통의학 고전국역총서’(2차)의 국역, ‘실전된 한국의학 문헌자료의 복원 사업’에 앞장설 각오다.
논어의 ‘삼인행(三人行, 3명의 사람과 함께 하면)’에 ‘필유아사언(必有我師焉,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으로, 누구에게나 어떤 상황에서든 배우려는 학문적 마음가짐을 유지토록 다짐하며, ‘서경’의 ‘만초손(滿招損, 가득 차면 덞을 당하고) 겸수익(謙受益,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을 신조로 삼고 있을 정도로 애어른(?)이다.
그의 당찬 포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를 놓는 일.
뿌리 없는 나무가 없고, 어제 없는 오늘, 오늘 없는 내일이 없듯이 그의 작업은 미래를 향한 아주 소중한 일이다. 그래서 한밤중에도 한문 공부에 매달린 그의 뒷모습은 참으로 듬직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도 거부할 수 없는 한문의 마력에 ‘신들린 무녀’처럼 푹 빠져본다. 글=전민일보 이종근기자, 사진=전민일보 오세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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