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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사람

5월의 독립운동가 박재혁선생

 

국가보훈처(처장 김 양)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1920년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하시모토서장을 사살한 후 사형을 언도받고 단식 끝에 옥중 순국한 박재혁(1895.5.17~1921.5.10)의사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1895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진보통학과와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상회에서 일하던 중 1917년 6월 주인으로부터 자본금 700원을 조달, 중국 상해로 가서 무역업에 종사하다가 1918년 6월 귀국했다.
  선생은 보통학교와 상업학교 동창인 최천택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을 결의하고 기회를 노리던 중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다시 상해로 가서 중국 각지와 싱가포르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상으로 일하는 한편 독립투사들과 접촉하였으며, 1920년 8월경 상해에서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참여했다.
 선생은 동지들과 부산경찰서를 폭파하고 서장을 사살할 것을 계획하고 9월 13일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14일 중국인 고서상으로 가장한 뒤, 하시모토 경찰서장을 찾아가 고서를 꺼내는 척하면서 폭탄을 꺼내들었다.
 서장을 유창한 일본말로 꾸짖고 폭탄을 던지자 경찰서장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고, 선생도 폭탄이 터지면서 오른쪽 무릎 뼈에 중상을 입고 현장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선생은 모진 악형 끝에 1921년 3월 31일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아 형이 확정됐다.
 대구형무소에 투옥된 선생은 “왜놈의 손에 욕보지 않고 내손으로 죽자”고 결심하고 단식을 하던 중 5월 10일 옥중 순국했다.
 해방 후 선생의 시신은 정공단(鄭公壇)에 합사되었다가 1969년 4월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