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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숭례문 6백 여년의 위용 연기속으로

 

 

시뻘건 불꽃을 낼름거리던 국보 1호 숭례문이 11일 날이 밝자 시커먼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한순간에 화마가 삼켜버린 선물은 처참한 몰골. 시커먼 잿더미로 변하는데는 불과 5시간 여.
 소방차를 동원해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았다지만 우리 모두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불씨 하나로 인해 잃어서는 안될 모든 것들을 이미 잃은 상태였다. 조선 왕조 6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잇는 웅장함은 온데간데 없고, 그을려버린 자존심은 흉물스러운 뼈대로 남아 ‘연기처럼 사라진 그젯밤’을 되뇌이게 하고 있다.
 현재까지 서울에 남아있던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6.25전쟁의 만고풍상을 잘도 견뎌온 숭례문의 원래 모습을 다시 보기는 힘들 것 같아 더욱 안타까운 마음뿐.
 천장을 지탱해주던 기둥과 서까래 수십여 개가 숯이 되어 바닥에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그 위에 검게 그을린 기왓장들이 산산조각 난 채로 흩어져 이 겨울의 삭풍을 이겨내고 있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서 웅장한 모습을 지켜보았던 시민들은 화재 현장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하얀 국화를 헌화했다.
 대문 앞에 덩그러니 서 있는 안내판만이 이 자리에 대한민국의 국보 1호가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오늘. 일찍이 세계문화유산 수원 화성, 낙산사, 고창 문수사, 김제 금산사 등의 ‘타다 남은 재는 고스란히 상채기로 남는다’는 가르침을 주고.
 그마나 다행인(?) 것은 숭례문의 원조로 칭함받는 전주의 상징 풍남문(보물 제308호)은 여전히 6백70여 년의 족보를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밤이면 울긋불긋 색동옷으로 갈아입을 수 없게 된 숭례문은 이제 고된 하루를 보낸 맞벌이부부의 거친 한숨을 받아들이지 못할 신세다. 저 멀리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행렬이 힘겨운 일상을 대변하는 것처럼 애처로운 모습이다. 먼동이 밝게 터왔지만 숭례문의 얼굴엔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 글:이종근 전민일보기자, 사진:사진작가 유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