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은 계동이라 소한 대한 절기로다/설중의 봉만들은 해 저문 빛이로다./세전에 남은 날이 얼마나 걸렸는고….’
지난 21일은 24절기의 마지막 절후 대한. 음력 섣달을 관장해 한해를 마무리하는 절기로, 옛 사람들은 집안은 물론 집 주위, 동네까지 깨끗이 청소를 하고 차분히 앉아 한 해를 되돌아보며 잘잘못을 가려 정리를 했다. 연초에 계획했던 일이 얼마나 잘 진행되었는지, 실수는 없었는지, 노력이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사람들에게 소홀했거나 상대가 서운하게 여기도록 행동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곱씹어보면서 지난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데 정성을 들였다.
음력으로는 12월 보름께부터 내년의 시작 절기인 입춘까지는 대한의 운기가 관장한단다. 이름이 대한이지 우리나라에서는 바로 앞 절인 소한이 훨씬 더 춥다.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농사 스케줄을 노래로 지어 보급한 ‘농가월령가’는 12달 모두 첫 구절은 그렇게 절기로 시작한다.
서예가이자 수필가인 노산 최난주(59, 필명 최원용, 전라북도교육청 감사담당관)씨의 ‘농가월령가’는 일과 놀이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농촌의 세시풍속을 열두 폭에 담은 대표작이다.
한미FTA로 인해 농산물 수입 개방과 맞물려 점점 사라져가는 농촌의 문화를 돌아보면서, 지금 농촌의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계기를 갖게 하는 작품으로, 농촌의 풍속사의 자료로도 그 가치가 더욱 크다.
“‘농가월령가’는 한 해 동안의 기후의 변화나 의식 및 농가 행사 등을 달의 순서에 따라 읊은 노래입니다. ‘농가월령가’의 서문이 알려주듯 농사의 세시풍속은 달님의 태음력 ‘운기도수’에 맞추어 시후(時候)를 맞추어 나가게 마련입니다”
이미 30대에 한글 궁체 서예가로는 호남에서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국전) 초대작가 반열에 올랐으며, 또 지난 1983년에는 작품 ‘농가월령가’로 전북에서는 처음으로 원곡(原谷)서예상을 탔던 작가이기도 하다.
지난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농가월령가’는 12폭의 초대형 병풍으로, 전체 글자 수가 8천자에 이른 대작(가로 840cm, 세로 175cm)으로, 고 강암 송성용선생이 작가를 아끼는 마음에서 혹시 건강에 무리를 하지 않을 까 염려한 옥동자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국립현대미술관 작품 수집 심의위원회가 작가의 경력과 가치를 기준으로 심사한 결과, 수십 명의 경쟁 작품을 물리치고 기증 작품으로 선정됐다는 후문.
작가는 1977년 봄에 난로를 치우면서 벽에 뚫린 구멍을 가리기 위해 써 붙인 족자를 우연히 ‘연묵회’ 모임 회원인 조옥영씨가 보고 강암선생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평소 한글을 잘 쓰는 제자를 원했던 강암선생은 작가에게 ‘노산’이라는 호를 지어주고, 격조높은 서예와 사군자를 가르치기도. 그렇게 40여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면서 우리 시대 내로라하는 한글 서예가로 애틋한 민초들의 마음을 노래하는 작가로 통하고 있다.
원곡서예상 수상식에서 소설가 김동리선생이 “소년 문장가는 있어도 소년 명필가는 없다”면서 “시(詩), 서(書), 화(畵)를 삼절(三絶)이라고 하는데 노산이 이뤄 보면 좋겠다”는 말에 감동, 1987년 ‘시와 의식’으로 등단한 후 수필집 ‘내가 그린 초상화(2005년)’를 발간하고 전북수필문학상(2007년)을 수상한 바 있다.
작가는, 특히 한글 서예에 치중, 궁체로 정자(해서), 반흘림(행서), 진흘림(초서)과 한자의 예서획과 전서획을 도입한 각 서체로 우리말의 우수성을 널리 전파하는 한편 사군자(대나무 등)로 선비정신을 오늘에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구불구불한 그러한 형태의 가장 오래된 서체인 전서, 단정하고 단아한 예술미가 뛰어난 예서, 정갈한 선비의 기상이 담긴 정자체인 해서와 휘청거리는 낭만이 물씬 풍기는 초서, 그리고 행서, 우리의 고전인 궁체, 그윽한 정취가 생명인 문인화 등을 통해 현대인이 멀게만 느껴지는 가장 동양적인 정감이 듬뿍 담긴 작품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개성에 따른 체취가 물씬 묻어나는 필(Feel)의 여러 모습으로 드러난 묵(墨)의 향연은 민족의식이 짙게 배인 ‘독도는 우리 땅(고창고등학교 소장)’, 향토애가 물씬 풍기는 ‘정읍사’, ‘반야심경’, ‘묵난’, ‘묵죽’, ‘고시조’ 등이 서예술의 생명력을 싹틔우고 있음을 감지하게 만든다.
“아름다운 글씨를 쓰려면 마음이 먼저 깨끗해야 합니다”
지금, ‘군자는 세 가지 다른 모습이 있다. 멀리서 바라보면 근엄하고, 가까이 보면 온화하고, 그 말을 들으면 바르고 엄숙하다(君子有三變望之儼然則之也溫聽其言也)’는 논어 '자하(子夏)'의 말을 막 떠올리리고 있다.
잠을 못이루게 불어대던 바람이 멈춘 아침, 서설이 내려 차창 밖으로 흰백색 물감을 뒤집어쓴 지붕이 줄을 서고 있다. 이내 하얀 그리움 꽃비 내리듯 흩뿌려진다. 기억 속에 숨은 반가운 얼굴들 살풋 보듬으며 그리운 한 마디 ‘사랑했노라’고. ‘기다렸노라’고.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나는 서예가인가
국전 초대작가란 글자 그대로 국가가 인정하는 명칭이니 달리 표현하면, 국가 대표 서예 선수인 셈이다. 국가 대표 서예 선수라니 좀 비천한 이름 같고 누구의 표현을 빌어 국필이라고 해둘까.
(중략) 서체를 일러 오체(전서, 예서, 헤서, 행서, 초서)니 또 거기에 두 체를 더하여 칠체니 한다. 오체라고 해도 5만의 글자에 5체를 곱하면 25만자의 글자를 익혀야 한다. 문장가와 명필가는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평생에 쓸 수 있는 글자 수는 몇 자나 될까. 이순의 언덕 위에 올라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려도 나는 과연 서예가인가 하는 회의만 앞설 뿐이다.
2. 고 강암 송성용선생이 본 작가
노산 최난주선생과 알게 된 인연은 서예를 하기 때문이며, 그 세월이 20여 성상이 됐다. ‘글과 서화는 바로 사람이다’는 말처럼 작가의 성품이 중후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인간의 안창이 담겨진 명정(明淨, 밝고 맑음)을 읽을 수 있다.
‘서울 매미’, ‘흙같이 살고 싶소’와 ‘교사의 기도’ 10폭 병풍, 그리고 ‘논어구’에 이르기까지 독창적인 진흘림으로 갈무리, 한글 서예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3.작가가 걸어온 길
호 노산
고창 출신
전주대학교 대학원 졸업(행정학 석사)
개인전 1회(1996)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국전 초대작가)
한국서가협회 이사
전북미술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장, 초대작가
한국서가협회 전북지회장
국전(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 등 각 공모전 특.입선 15회(특선 9회, 입선 6회)
제6회 원곡서예상(1983년)
예술의전당 개관기념전 초대 출품
서울 정도 600년전 초대 출품
(현) 한국서도협회 중앙 자문위원, 서울세계서예비엔날레 출품작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진묵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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