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가는 눈발이 햇살을 살금살금 끌어 당긴다. 시린 손을 모아 빛을 모아 모두 모두 매달려 발을 구르며, 숨은 해가 솜털처럼 뽀송뽀송 피어오른다.
동틀 무렵, 은은한 연보라색으로 채색된 저 바다는 곧 황금빛으로 변한다. 특히 갯벌과 바닷물에 드리운 이 햇살은 골드 카펫을 깔아놓은 듯 반짝인다.
세월과 파도가 찬연히 예술을 빚고 있다. 내 삶을 자꾸만 주억거리게 만든다. 어느 덧, 2007년의 끝자락. 각종 일정들로 빼곡했던 달력도 이제 달랑 한 장 남았지만 지난 시간을 반추하며 불필요한 것들을 비워내야 할 때다.
그러나 1년 동안 동고동락했던 정해년의 붉은 해가 펼치는 마지막 빛의 축제에 아쉬움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빈 자리에 새로운 것을 채우는 가슴 벅찬 환희와 감동도 함께 한다. 적어도 위도에서는.
서양화가 조영철씨의 작품 ‘잔잔한 꿈’은 해넘이로 붉은 기운이 스며든 억새꽃 너머로 유장하게 흘러가는 위도, 그리고 개펄 위로 떨어지는 자태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추운 겨울 바다를 녹여버릴 듯한 황금빛 햇살이 아쉬움으로 속살거리며 붉게붉게 시시각각 내 맘을 물들이고 있다.
“세번째 개인전(3.9-15, 전북예술회관)은 ‘옹기옹기 옹기종기한 작품전’으로 이름 지어 선보였습니다. 암흑과 환희, 황홀, 절정, 젊음과 늙음, 그리고 죽음이 공존하는 우리네 삶을 표현하고 싶어서 였습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소외되고 배척되고, 사라지고 버려지는 것들을 모아 작품으로 꾸며 보았습니다”
평면과 입체를 아우르면서 세상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낸 그림 마당인 셈이다. 전시장에 1천 여 명 정도의 각기 다른 사람의 얼굴들로 벽면을 가득 채우기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얼굴인 만큼, 다양한 감정들이 담긴 표정으로 세상살이를 이야기한데 다름 아닌 듯.
자연의 형상을 따르기 위해 나무 형태를 살려 사람 또는 새를 표현했으며, 나무로 광개토대왕비를 만들기도 했었다.
특히 꽃가마와 상여를 세상살이 소품으로 내놓아 세상사를 진지하게 반추해볼 시간을 제공, 사는 날이 줄어든다고 생각할수록 치열하게 살아야 하며, 죽음 앞에서 부족한 삶을 위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던져주었다.
1회 개인전(2006.2.24-3.2, 전북교육문화회관) ‘옹기옹기한 그림전’, 인간이 어떻게 왔다가 가는 과정을 그린 데 따른 후속 작업인 셈.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중국 미술사에서 가장 뛰어난 화가로 손꼽히는 팔대산인(八大山人)이다.
‘팔팔조도(叭叭鳥圖)’란 그림은 황량하고 적막하지만 감상적인 느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결코 허망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수양과 진실한 체험의 결합에 의한, 다시 말하면 섬광처럼 번뜩이는 예술정신과 반석처럼 무거운 선심(禪心)의 결합으로 볼 수 있는 작품.
그리는 대상(여기서는 새)의 정신을 강조한 나머지 형상을 무시하거나 버리게 되는 것이 그의 예술정신이 아닐까. 한 마디로 활달하고 천진하면서도 긴장, 광기, 고독이 드러난 팔대산인의 예술 세계는 일종의 ‘옹기옹기’ 시리즈의 밑바탕이 되고.
하지만 2회 개인전(2006.6.1-6.7, 서울 코엑스 특설 전시장)과 4회 개인전(9.7-9.13,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은 이같은 유형의 실험 작업이 아닌, 계절의 변화와 정겨운 풍경을 화폭에 그대로 옮겨졌다.
‘꽃동네’를 포함, ‘산모퉁이 가을’, ‘지리산 봄’, ‘산골마을’, ‘가을 들’, ‘봄동산’, ‘언덕 위 여름’ 등 한국의 산하, 그 아름다움의 진실이 평면 예술의 한 장르 안에서 어깨를 맞대고 화폭에서 곰삭은 채 무르익는다.
20여년 동안 매주 야외스케치를 통해 아름다운 자연을 화폭 가득 담아온 순수한 열정과 노력은 작가 지속될 수 있게 한 중요한 버팀목이 됐단다.
다른 사람들의 서양화와 다른 것은 선위주의 먹 작업.
선 위주로 작업을 하다 보니 힘과 힘을 절제할 수 있는 순간순간의 박력, 끊고 맺는 과정에서 묘한 형상이 나오며, 이를 즐겨하는 예술혼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 산의 굵은 모습이 바로 그것. 미적인 표현보다는 그림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수한 사고 덩어리를 선사하는 실체이기도 하다.
사계의 풍경을 대할 때마다 자연의 위대함에 인간의 운필과 상상력은 얼마나 초라한가를 절실히 느꼈고, 앞으로도 겸손한 마음으로 자연을 솔직히 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작가의 설명.
오늘 산행하며 느끼는 바람소리, 새소리, 물소리 등 자연의 소리는 넘쳐나는 작가의 청정도량이요, 마음의 텃밭이다.
아니, 가슴에 일체를 어우르는 빛맑은 하늘 한 점 내일 들여 놓기 위한 살붙이다. 꿈을 담는 든든한 그림 수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
1.작가의 말
산수유 가득핀 무릉도원에서 아름다운 멜로디와 그림 삼매경에 빠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산수유꽃이 생소했을 때는 화사하지 않은 노란색이 빚어내는, 조금은 어두운 풍경들만이 있던 곳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개나리와 산수유의 색감은 같은 노란색 계열임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개나리는 화사하고 밝은 노란색인 반면, 산수유는 눈에 잘 안 들어오는 약간 어두운 노란색이다. 산수유는 한동안 평가절하의 대상이었지만, 그 풍경만은 오랫 동안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남아 있다.
먼 발치서 내년 봄을 기다린다. 겨우내 잦아든 물소리도 따뜻한 날씨에 화답이라도 하듯이 우렁차고 시원하다.
너럭바위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기분이 샘솟고 있어 샛노란 꿈 깨알같이 창공에 달아두었다.
2.작가가 걸어온 길
전주 출신
개인전 4회
호원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제1회 공무원미술대전 우수상
전라북도미술대전 특선 3회, 입선 1회
전국 춘향미술대전 특선, 우수상
무등미술대전, 전북상징 미술 공모전 입, 특선 수회
전주일요화가회 회장
(현) 전국춘향미술대전 추천작가, 한국미술협회, 전주일요화가회, 솔회 회원, 모양건축설계사무소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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