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용담 (53) 썸네일형 리스트형 [45]1995년의 투쟁 ‘댐 건설예산 저지를 위한 농성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 동안 흐르는 강물을 막는 대규모의 댐을 수 없이 건설해 왔습니다. 그러나 댐이 그 동안 큰 무리없이 세워질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흉칙한 댐보다도 더 높이 쌓여진 정치권력에 집중된 부도덕 앞에서 이 나라 살림과 고질적으로 체질화되고 뻔뻔한 비상식적 예산집행의 또 다른 무지와 오만의 더 큰 댐 앞에 분노하며, 힘을 모아 벌이기로 했습니다. 용담댐 백지화를 원하는 많은 분들의 참여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1995년 봄, 안천면 본댐 공사현장에서 각 마을별로 연좌 대모(농성)를 합니다. 인도에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얻기 위해 17번이나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그는 몸이 나중에는 30Kg 밖에.. [44]정천면 농산마을 철거 현장 나는 굴삭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지리도 재수 없는 굴삭기입니다. 굴착기나 포클레인으로도 불립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 다리 밑 공터입니다. 한창 공사장을 누비며 땅을 파거나 산에서 벤 나무를 옮겨야 할 몸이 5t 화물차 위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녹슬어가고 있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입니다. 내 주인은 올해 만으로 48살인 노총각 정모씨입니다. 뭔가에 홀려 갈팡질팡 헤매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넘긴 양반이 나를 앞세워 난동을 피운 것입니다. 더구나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신성한 공권력에 대들었습니다. 2016년 11월 1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한복판에서입니다. 이날 주인 양반은 나를 몰고 대검 청사로 돌진했습니다. 시설물을 부수고 이를 말리던 방호원까지 다치게 했다. .. [43] 정천 이포다리의 추억 이천(伊川)은 정천면 망화리를 흐르던 정자천의 하류 구간을 말합니다. 이천은 정천면 망화리를 흐르던 정자천의 하류였지만 지금은 용담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정자천의 유래가 된 중국의 현인인 정자(程子: 程灝)의 동생 정이의 호가 이천(伊川)이기에 정자천.. [42]정천면 신기마을 ‘운장산 명덕봉의 한 줄기인 국사봉 아래 남산소 기슭의 쪽바우들 장평리에서 농사짓던 나주 임씨, 성주 이씨, 청주 한씨, 은진 송씨들이 1830년 이곳에 자리를 잡은 뒤 조,김,최,신,백,설,천,박,장,양,씨들이 계속 이곳에 입주하여 샛터(新基)라 칭하고 대대손손 동중계를 조직하여 화합하.. [41] 오동교에서 본 정천면 오동교는 옛날 징검다리와 가을에 놓아 다음해 10월에 놓은 나무다리를 이용하다가 1972년에 새롭게 모습을 드러냈으며, 길이는 80미터, 폭은 3미터였습니다. 1997년 가을 오동교에서 정천면 소재지를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애드벌룬 3개가 떠있는 가운데 저 멀리로 하늘이 보입니.. [40] 용담댐 준공 <하> ‘물부족 시대에 대비하는 지혜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친애하는 유종근 지사를 비롯한 전북 도민과 건설 관계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오늘 우리는 매우 뜻깊은 자리에 모였습니다. 전북도민의 오랜 숙원이자 국내 다섯번째 규모의 다목적댐인 용담댐이 마침.. [39] 용담댐 준공 <중> 예로부터 ‘용담팔경(龍潭八景)’이 전하고 있습니다. 용강추월(龍崗秋月)은 용강산에 걸린 가을 달, 태고청풍(太古淸風)은 태고정에 부는 시원한 바람, 응봉락조(鷹峰落照)는 응봉에 깃드는 저녁 노을, 송림수학(松林垂鶴)은 송림에 드리운 학의 정취, 소요낙안(逍遙落雁)은 소요대에 날.. [38] 용담댐 준공<상> 우리네 조상들은 일찍부터 진안군 용담(龍潭)면에 호수가 생긴다는 것을 예견해 왔습니다. 이는 용담면에 댐이 완공된 후, 담수가 되면 물에 잠기는 호수의 형상이 용의 모양을 형성, 지역명과 맞아떨어진다는 유래 때문으로 보입니다. 용담다목적댐은 1990년에 착공, 2001년 10월 13일에 준..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