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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용담

[44]정천면 농산마을 철거 현장

 

 

 

 

나는 굴삭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지지리도 재수 없는 굴삭기입니다. 굴착기나 포클레인으로도 불립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한 다리 밑 공터입니다. 한창 공사장을 누비며 땅을 파거나 산에서 벤 나무를 옮겨야 할 몸이 5t 화물차 위에서 옴짝달싹 못 한 채 녹슬어가고 있습니다. 주인을 잘못 만난 탓입니다. 내 주인은 올해 만으로 48살인 노총각 정모씨입니다. 뭔가에 홀려 갈팡질팡 헤매지 않는다는 불혹(不惑)을 넘긴 양반이 나를 앞세워 난동을 피운 것입니다. 더구나 '정의의 칼'을 휘두르는 신성한 공권력에 대들었습니다. 2016111일 오전 830분쯤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한복판에서입니다. 이날 주인 양반은 나를 몰고 대검 청사로 돌진했습니다. 시설물을 부수고 이를 말리던 방호원까지 다치게 했다. 나도 자의(自意)는 아니었지만 공범(共犯)인 셈입니다. 당초 주인이 공격하려 한 표적은 최서원씨(작명을 통해 이름 바꿈)였다고 합니다.

먼지를 풀풀 날리며 포클레인은 집을 사정없이 부수고 있었습니다. 포클레인이 집을 부수고, 담을 부수고, 나무를 찍어 쓰러뜨렸어요. 동물들은 자신의 보금자리가 부서지는 걸 막을 수가 없었는데요. 집 안 깊숙이 숨은 고양이도, 재잘재잘 아름다운 소리를 내던 새들의 소중한 목숨이 이렇게 사라져가요.

건축물이 철거될 때 보면 정말 인정사정없습니다. 마치 한 번에 요절낼 듯이 포클레인이 건축물을 찍고 넘겨버립니다. 철근은 엿가락처럼 휘어지고, 그 단단하던 콘크리트도 동강동강 떨어져 나갑니다.

벽돌이나 석고보드는 먼지만 자욱이 휘날리며 사정없이 짓이겨집니다. 그렇게 건축물은 이 세상에 존재했던 몇 십 년 동안의 흔적을 뒤로 한 채, 그냥 앉아 고스란히 해체 당하고 맙다는 최상철 건축사의 얘기입니다.

대부분의 철거현장에서는 자욱한 소음진동과 먼지 사이로 포클레인의 굉음만이 요란할 뿐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저런 사연을 뒤로 한 채, 하나의 건축물이 지어졌다가 무심하게 해체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저 덧없이 먼지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인생을 떠올리게 됩니다.

1998년 정천면 농산마을의 철거 현장, 집 한 채를 사라지게 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한국의 전래동요 중에 하나인 <두껍아 두껍아>의 노랫말 가사입니다. 기원을 알 수 없이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 노랫말 가사에는 새집에 대한 바램이 들어있습니다. 그 바램 과 같이 우리가 새집을 갖게 되면 무엇을 얻게 되고 무엇을 잃게 되는 걸까요?

용담댐 건설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간 마을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던 존재들의 흔적을 따라가며 점점 상실해 가고 있는 우리의 정서 중 한 측면을 들여다봅니다. 포클레인에 허물어진 정천면 농산마을의 한 사람이 말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습니다".<=이종근 기자, 사진=이철수 용담호사진문화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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