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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일의 세상사

진동규, <댁 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

서울에서 삼례거쳐
전주.남원. 함양. 산청. 진주.
고성지나 통영으로 이어지던 길이
조선시대 옛길 통영대로였다.
전주에서 전주천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방바위. 각시바위가 있고
색장동을 지난 모롱이 벼랑에
어사 조 아무개.
관찰사 아무개들의 영세불망비가
새겨져 있다.
그들의 후손이 있긴 있을 것인데
아무도 알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서 그랬는지
푸른 달개비 꽃이 스스로 꽃다발이 되어
바람에 하늘 거리고
진동규 시인의 시 한편이
강물 아래로 흐르고 있었다.

진동규 시인 <댁 건너 대수리를 잡습니다.>

“살던 집은 텃자리까지 파버렸습니다. 그 이웃까지 뒤집어 파서 앞내 끌어 휘돌아 가게 하였습니다. 깊고 깊은 소를 만들어버렸지만 그때 그 집 주인이 반역했다고, 그래서 전주천 물이 거꾸로 흐른다고, 북으로 흐른다고 소문내고 그런 속셈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댁건너 마을 사람들은 上竹陰 下竹陰하면서, 구름처럼 모여들었던 선비들의 죽음 그 떼죽음을, 서방바우 각시바우, 애기바우, 그 피울음을, 상댁건너 하댁건너 점잖던 자기 마을 이름 위에 불러보기도 해보지만, 어떻게 변명 말씀 한번 엄두를 못 내고 죽어 지내왔습니다.

그 집 뒷산 월암에 달이 뜨면 댁 건너 사람들은 월암 아래 소에 들어 대수리를 잡는답니다. 관솔불들을 밝히고, 주춧돌 기둥뿌리 항아리 깨진 것, 뭐 그 집주인 뱃속까지 빨아먹고 자란 대수리들을 잡는답니다. 일삼아 잡아내고 그런 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