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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근의 행복산책

1백21년전 진안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

지금으로부터 1백21년전, 진안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자료가 전시중이어서 흥미를 끈다. 유생 이택열 등 1백24명이 진안현감(1885.5-1888.3) 신영균(申永均, 1833-1922)의 선정을 기리는 ‘천인산(일산(日傘)으로, 감사, 유수, 수령 들이 부임할 때 받치던 양산)’을 정성스럽게 손수 만들어 바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7월 출범, 민선4기를 맞이한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위민(爲民)의식과 투명한 행정의 실현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하나의 본보기로 비춰지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제3전시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고 지난 6월 14일부터 새롭게 변한  ‘한국인의 일생관’을 개관, 양반 사대부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인생 여정을 중심으로 전시 주제를 세분, 모두 1천4백 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특히 이 전시는 각 유물을 하나의 오브제화 하거나, 모형 중심 연출에서 벗어나, 주제별 유물을 중심으로 맥락 전시, 조선시대 한국인의 일생에 대한 의미를 이해하게 끔 했다. 대표적인 전시 유물 상여(중요민속자료 제230호)를 필두로, 초헌, 영정, 천인산 등이 주제에 맞추어 선보이고 있다.
 3층 누각 형식의 전주최씨 고령댁 상여 앞에는 상여 행렬을 연출하여 명정과 만장이 날리는 가운데 문인석이 서 있는 무덤으로 향하게 했다. ‘출세’ 주제에는 민광승, 권협 등 문무관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2품 이상의 정승들만 타고 다녔던 외바퀴의 초헌이나, 지방관의 선정을 기원하며 전 지역민의 이름을 수놓아 바친 ‘천인산’ 등 일생의 하이라이트라 할 부분에 대한 연출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통 ‘천인산’ 등 일산은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세우는 큰 양산으로, 우산보다 크며 놀이를 할 때에 한곳에 세운기도 하는 한편 감사, 유수, 수령들이 부임할 때 받치는 자루가 길고 흰 바탕에 푸른 선을 두른 물건.
 진안현감 신영균의 선정을 기리며 만든 ‘천인산(千人傘, 지름 1백40cm, 길이 2백30cm)’은 고종 22년(1885년) 11월에 유생 이덕연 등 1백24명의 사람들이 참여 그 공덕을 흥모하면서 만든 소중한 유물이다.
 그 내용은 ‘천인산(千人傘)’이란 타이틀과 함께 ‘수복강령(壽福康寧)’이란 글로 시작, 이어 주민들의 안위를 생각하며 귀감이 되는 정치를 생활화, 그 감화를 잊지 못한다는 내용이 수(繡)놓아 쓰여져 있으며, 바로 그 뒤에 1백24명의 명단이 모두 나열됐다.
 1885년 5월부터 1888년 3월까지 진안현감으로 재직할 당시, 선정을 베푼 까닭에 지역민들이 그를 ‘신보(神父)’라 부르고, 생사당(生祠堂,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찬양하는 표시로 그가 살아 있을 때부터 백성들이 제사 지내는 사당)을 건립하기도 했다는 기록이다. 후에 진안구 상전면 갈현마을에 살았다는 일부의 기록도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최순권연구사는 “‘한국인의 일생관’은 주제 중심으로 유물들을 맥락화하면서 체험 및 휴게 공간을 마련, 관람객들이 쾌적하게 전시를 관람하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생과 가치관을 이해할 수 있게 했다.”며 “특히 지방관의 선정을 기원하며 전 지역민의 이름을 수놓아 바친 천인산은 전시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신영균은 조선 말기의 문관으로 고종 13년(1876년) 장사랑에 제수되어 순강원수봉관(順康院守奉官)을 지냈으며, 의금부도사, 공릉령(恭陵令), 진안현감, 청안현감에 임명됐으며 부친상을 당하여 사직했다. 후에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동시에 통정대부(通政大夫)로 특진됐다. 1884년 갑신정변 때 동지 1백여 인을 규합, 세자와 신정왕후(神貞王后), 명성황후(明成皇后)를 호위한 공로로 고종으로부터 내탕금 5천냥을 하사받았다. 그는 이 자금으로 갑신정변에 반대하는 인사들로 구성된 창의계(倡義契)를 조직, 왕에 대한 충절을 맹세하기도 했다. 저서로 ‘인당집(忍堂集)’을 펴낸 바 있다. 전민일보 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