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동백나무의 용도는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
ㅡ'방화수림대'가 있는 한국 사찰을 알고 보니
의성 산불은 천년고찰 고운사도 집어삼켰다. 신라 신문왕 1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운사는 경북을 대표하는 대형 사찰 중 하나다.
고운사 주변은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듯했다. 화재로 무너진 건물 곳곳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지난해 7월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된 가운루는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가운루는 계곡을 가로질러 건립한 누각 형식의 건물로 기존의 사찰누각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의 건물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높다는 평을 받아왔다.
하지만 가운루는 이번 화재를 피해 가지 못했다. 가운루 주변에는 숯처럼 변해버린 나무 잔해들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사찰 관계자들이 가운루를 화마에서 지키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소방호스도 잿더미에 파묻혀 녹아있었다.
천연기념물 184호 선운사 동백나무의 용도가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 조상은 음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양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습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건조한 땅에서 잘사는 나무 등을 나누어 적재적소에 심는 슬기로움을 보였는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방화수림대'다.
선운사에는 500년 이상 자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얀 눈 속에서도 빨 간 꽃봉오리를 볼 수 있어 잘 알려진 선운사 동백나무는 원로 시인의 시로서, 이름 날리 던 가수의 대중가요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된 것 같다.
대웅전 뒤로 울창하게 조성된 동백나무는 실은 관상용이 아니라 산불이 절집으로 번지 는 것을 막기 위한 내화림으로서 이미 조선시대에 가꾸어졌다고 한다.
동백나무 숲은 대낮 에도 컴컴할 정도로 수관이 빽빽하고 잎이 두툼하여 불에 강하기 때문에 산과 사찰의 경 계에 띠 모양으로 심어줌으로써 화마가 사찰에 미치는 것을 방어할 수 있다.
선운사는 또 대웅전에서 동백나무 숲까지 15 m 이상 공간을 띄워 산불이 동백 숲에 옮겨 붙는다 해도 절 마당까지는 쉽게 침범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절이든 화재를 당하지 않은 절을 찾아보긴 어렵다. 지난 2005년 산불로 폐허가 되었던 낙산사만 해도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무려 11차례의 화재를 겪었다.
'방화수림대'란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이 사찰 경내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사찰에서 난 불이 산으로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찰과 숲 사이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띠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간을 말한다.
먼저 사찰의 전각 뒤쪽 15~20m 공간의 숲을 완전히 제거하여 화소(火巢)를 조성하고, 화소 위쪽에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를 심어 방화수림대를 조성한다.
일반적으로 활엽수보다는 침엽수가 발열량이 커서 산불에 취약하다. 소나무는 불이 났 을 때 가장 잘 타는 나무 가운데 하나이며, 삼나무나 편백림도 그 다음으로 불에 타기 쉽다.
낙산사가 그처럼 빠른 시간 안에 소실된 것도 절을 둘러싼 소나무가 가장 큰 원인 이었다.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는 잎이 두껍고 수분함유율이 높아 사철 산불의 진행을 최대한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단풍나무는 수피에 다량의 수분을 함유하고 있어 방화 기능이 뛰어나다.
화두목으로 부르는 은행나무도 불에 강한 편이며, 이 밖에 고로쇠나무, 음나무 등도 불에 강한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낙산사 화재 이후 새삼 조명된 내화수림대는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이 경내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기도 하지만, 거꾸로 사찰에 불이 났을 경우 이 불길이 숲으로 쉬이 옮겨 붙 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도 한다.
내화수림대와 더불어 화재 방호에 큰 역할을 하는 '방화대'는 잔디 외에 아무 것도 심 지 않은 공간을 말한다.
화엄사 각황전 뒤에 동백나무와 참나무를 심은 '방화수림대'가 남아 있다.
나주 불회사 '방화수림대'는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잔디,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혼효림이 층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림 띠를 이루고 있다.
사천 다솔사는 화소 공간에 차나무를 심었는데 차나무는 동백나무와 같은 과에 속한다.
낙산사 화재 이후 조계종이 권장한 방화대의 폭은 50 m이다. 방 화대 바깥에 있는 가장 큰 나무의 높이를 25 m로 보고, 이 나무가 불에 타서 쓰러졌을 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거리를 나무 높이의 2배로 잡은 값이다.
'전북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산과 전주 기독교 역사 (0) | 2025.03.28 |
---|---|
부안 왕등도의 요술 부채 (0) | 2025.03.28 |
청정한 법수(法水) 청산이 그립다 (0) | 2025.03.24 |
‘맷방석을 갓에 견준다’[맷돌로 만나는 전북의 생활 문화 알고 보니] 춘향전 등 곳곳에 맷돌 이야기 (0) | 2025.03.18 |
전주 풍남문 (0) | 2025.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