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현 전주시청 건물에 전주 풍남문의 모양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풍남문은 고려말 1389년, 전라도출척사(관찰사) 최유경(1343~1413)이 축성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런데 풍남문과 숭례문의 모습이 비슷하지 않나요. 국보 남대문을 설계한 사람은 당시 50세의 최유경입니다. 풍남문 모양을 본따 숭례문을 만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정해년 1767년 다시 대화재로 남문과 서문을 비롯 관아와 민가 수천 호가 소실되자 관찰사 홍낙인이 중건했습니다. 이번에는 숭례문을 본따 풍남문을 다시 짓습니다.
이때 풍남문은 4대문으로 지어져 동쪽은 완동문(完東門), 서쪽은 패서문(沛西門),
남쪽은 풍남문(豊南門), 북쪽은 공북문(拱北門)이라 불렀습니다. 각각 완산의 동쪽, 풍패지관의 서쪽, 풍패지관의 남쪽, 북쪽은 임금이 있는 곳이란 의미입니다.
이때 전주는 객사인 풍패지관을 중심으로 한 T자형 도시 구조였습니다. 남쪽 성문은 문루 이름을 풍남문(豊南門)으로 고침은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땅 패현 즉, 풍패지향(豊沛之鄕) 첫 글자를 따 ‘풍패 남문’이란 뜻입니다. 서문 이름은 ‘패’자를 따 패서문(沛西門)으로 고칩니다.이 모두 ‘전주가 이씨 조선의 본향‘이란 의미입니다.
편액 풍남문은 작자 미상이며, 호남제일성은 전라관찰사 서기순이 썼습니다. 이삼만의 제자 서홍순이 썼다는 것은 잘못입니다.
전의이씨의 문중 노래 가운데 풍남수성가가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전주성을 지킨 전의이씨의 후손 충경공 이정란장군 추향제가 전주성 수성을 기념해 매년 완산구 동서학동 충경사(忠景祠)에서 봉행, 참석자들이 '풍남수성가'를 합창합니다.
충경사는 임진왜란 당시 70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주성을 왜적으로부터 지킨 공으로 충경이라는 시호를 받은 의병장 이정란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시내의 도로명 충경로는 바로 그로부터 비롯됩니다.
한편 호남제일성은 풍남문, 호남제일루는 광한루, 호남제일관은 만마관, 호남제일정은 태인 피향정과 제주 관덕정입니다. 호남제일문은 전주 입구에 있습니다. 풍남문의 종은 완산종이라고도 하며 전주 시민의 날과 연말 제야축제에 종소리를 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풍남문은 4대 박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돌아가셔 목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천주교 성지이기도 합니다. 전주성의 기자재는 훗날 전동성당을 짓는데 사용했습니다. 한때 풍남문 종지기로 정종실씨가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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