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 식혜
강증산 상제께서 섣달 어느 날 종도들을 이끌고 모악산 용안대(龍眼台)에서 여러 날을 머무르셨도다. 마침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교통이 두절되고 따라서 양식이 두 끼니의 분량만이 남으니라. 상제께서 종도들이 서로 걱정하는 것을 듣고 남은 양식으로 식혜를 짓게 하시니 종도들은 부족한 양식을 털어서 식혜를 지으면 당장 굶게 되리라고 걱정하면서도 식혜를 지어 올렸도다. 상제께서 종도들과 함께 나누어 잡수시는데 눈이 멈추고 일기가 화창하여 쌓인 눈도 경각에 다 녹고 길도 틔어 종도들과 함께 돌아오셨도다. (권지 1장 31절)
소고당 고단여사의 '산외별곡'에도 '산외8경'이 나온다. 바로 이 작품에 식혜가 나온다.
'가세가세 어서가세 산외집에 어서가세
전라도땅 정읍산외 평사낙안 바삐가세
고운고개 엄재고개 완주정읍 경계지나
연화도수 좋은경치 화죽리랑 도화동을
언뜻보고 지나갈제 진계리 정량리라
운전안계 평동사평 능암양동 용머리에
구장리 만병리며 직금실과 동곡리며
가지각색 마을이름 옛역사가 새롭구나
기묘육월 삼복중에 터를닦아 지은집에
안주인이 돌아왔네 소고당 주인왔네
산외팔경 살펴볼까 평사에 낙안하니
춘대에 피리소리 처녀총각 설레이며
보명에 낙조하니 용두천에 달빛인다
명천에 어화 반짝 상두산에 귀운하고
노봉중턱 맑은안개 멱방산 해돋으니
이강산 삼공불환 이곳자랑 들어보소
처음보아 노호미요 다시보아 평사낙안
산외양택 길지잡아 모여드니 평사리요
산내음택 골짝마다 서기가 뻗쳤으니
산천경개 수려하고 전답이 비옥할사
안개낀 보리밭에 푸두웅 꿩이날고
성안의 쑥국새는 석양을 쑥국쑥국
도리앵화 활짝피어 송림에 월백하니
무릉이 어디메오 도원이 여기로다
집집마다 감나무는 봄여름엔 녹음이요
가을에는 우지가지 다홍치마 두른듯고
능암수시 파라시는 옛날진상 감이었고
용두천 맑은물에 피리붕어 일미로다
주리실 공동마을 살치신배 쌍정리며
상고수려 이 고장은 사시경치 아름다워
춘하추동 계절따라 소고당에 오신손님
정성으로 맞이하니 화기만당 별장이라
나의 종형 선화당님 동행하신 만정국창
춘경난송 두 명창과 재담하고 춤을 추니
황홀한 놀음새며 삼십여년 기리던 정
먼발치로 엿보던 정 오늘에야 이루어져
밤깊은 줄 모르고 웃음꽃이 활짝폈네
기쁜 맘에 취한정은 새벽잠을 청했더니
어느 사이 아침인가 이슬같은 봄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밤 가랑비가 눈이되어
백설강산 되었구나 솔가지 불 때여볼까
한양손님 추울세라 무쇠화로 불담아서
오골보골 된장찌개 조기구이 붕어조림
무우김치 구수하다 아침 나절 언뜻가고
점심을 마련하니 봄철을 먼저 알고
돋아오른 푸성귀는 겉절이도 좋거니와
쌈맛은 더욱좋아 입맛이 절로 돋고
돼지머리 소담하게 새우젓에 곁들이고
홍어찜에 낙지회며 도토리묵 메밀묵과
마늘산적 안주삼아 모과주 과하주를
권커니 작거니 취흥이 도도하다
남창을 반개하니 뜰앞에 각색나무
가지마다 꽃송이라 은행나무 살펴볼제
눈꽃이 흐드러져 삼월동풍 만화절에
벚꽃이 만발한듯 원근산천 만수천림
흰옷으로 단장하고 펄펄내린 백설은
은가루를 뿌린듯이 삼라만상 절경이라
서울손님 손뼉치며 때맞추어 잘도왔다
덩실덩실 춤을추니 기쁘도다 오늘이여
반갑도다 오늘이여 무쇠화로 이리주오
쑥덕구워 조청찍어 손님대접 하고저라
겨울홍시 산외건시 식혜강정 산자엿을
벗님네야 많이들소 영산홍 자산홍이
활짝피어 나비올때 서울손님 다시오고
수수기장 구해다가 별미밥을 지어두고
햇쑥듣어 절편찌고 진달래 화전이며
새참한 쑥뿌쟁이 머위뜯어 양념해서
새봄맛을 듬뿍차려 우리손님 대접하리
어화벗님 좋을시고 소고당에 손님왔네
인아족척 귀한손님 끊임없이 내왕하며
우리동기 대소지친 남녀노소 모여앉아
조상의 얼되새기며 만대유복 전코지고
이 기쁨 이 흥취로 산외별고 지었거니'
식혜는 예로부터 ‘천연 소화제’로 불릴 만큼 소화에 좋은 음료로 알려져 왔다. 주원료인 엿기름 덕분이다. 한의학에서는 엿기름물을 체하거나 구토, 설사를 다스릴 때 약재로 이용해 왔다. 엿기름에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분해하는 소화효소가 많다.
엿기름은 보리에 싹을 낸 다음 말린 것이다. 이름처럼 기름은 아니다. 식혜는 이 엿기름 가루를 우려낸 물에 밥을 삭혀 만든다. 엿기름을 삭히는 발효 과정에서 천연 효소와 좋은 미생물들이 생성되는데, 이는 소화와 장 건강에 이로운 작용을 한다.
“전북의 음식이 맛있다는데….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그 소문의 진상은 1928년 12월 1일에 발간된 '별건곤(別乾坤)' 제16, 17호에 실린 '팔도녀자 살님사리 평판기(八道女子 살림살이 평판기(評判記)’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월간지 ‘별건곤’ 은 '창조', '동인', '삼천리' 같은 1920년대의 근대 잡지지만 시사적 내용보다는 주로 취미를 다룬 완전한 일반 대중잡지로 기능했다. 1926년 창간호를 시작으로 1934년까지 발간된 잡지다. 천도교단이 세운 출판사 개벽사에서 ‘대중의 취미 진작’을 위해 만들었다.
‘별건곤’은 "요리를 잘하는 전라도 여자 중에서도 전주여자의 요리하는 법은 참으로 칭찬할 만하다. 맛도 맛이거니와 상(床)을 보는 것이라던지 만드는 법이라던지, 서울 여자가 갔다가 눈물을 흘리고 호남선(潮南線) 급행선을 타고 도망질할 것"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는 다소 과장한 듯하지만 서울 여자가 전주 여자의 음식 만들기와 상 차려내는 것을 보면 '비교되고 창피해서' 소리없이 줄행랑을 칠 것이라는 얘기다.
‘별건곤’은 이어 "서울의 신선로가 명물은 명물이지만 전주 신선로는 그보다도 명물이다"며 전주 음식을 한껏 치켜세우고 나서 전주의 비빔밥, 순창의 고추장, 고산의 식혜, 남원의 약주, 군산의 생어찜 등도 명물로 꼽았다.
고산면은 지리적으로 완주군 북부지역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고 고려시대 봉성현, 조선시대 고산군으로 인근 6개면의 중심지였으며 현재까지도 고산 6개면의 경제, 문화생활이 집중되고 있는 지역이다. 지역특산물로 미곡, 양파, 마늘, 곶감, 한우가 있고 인접도시와의 접근성이 좋아 대아댐, 자연휴양림, 고산천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여 웰빙 관광지역으로 대두되고 있다.
바로 이곳의 엿기름과 물맛이 좋아 완주 고산의 식혜가 1920년대 최고의 먹거리였던 것 같다.
이처럼 전북의 음식 맛이 좋고 다양한 것은 우리나라의 농경역사를 대변하는 곡창지대인 김제평야의 쌀과 호남평야의 젖줄인 동진강, 청정지역인 서해안 주변의 풍성한 농수산물이 지형과 기후에 맞게 생산돼 독특한 조리법으로 승화됐기 때문이다.
전북의 음식 맛은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 것 같지 않은 성대한 상차림과 함께 손님을 즐겁게 해주는 주인의 입담까지 어우러져 '진미'를 선사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큰 밥그릇에 가득 고봉으로 밥을 쌓아서 먹던 어른들의 밥그릇이 기억난다.
조선시대 3대 사서인 '쇄미록(瑣尾錄)'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한양을 점령한 왜군들의 군량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첩자가 알아내 온 바, 당시 조선군의 식사량으로 계산해보니 약 한달 분량이었다. 한 달 뒤면 왜군들의 식량이 떨어져 물러 갈 것이라 생각하고, 성 앞에 진을 치고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한달이 지나도 왜군들이 후퇴하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왜군들의 밥그릇은 조선군의 1/3 크기였고, 그래서 식량 아끼려고 밥그릇이 아닌 김치 종지에 먹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군이 식사량을 줄인 것이 아니었다. 당시 조선 백성의 밥 한 그릇은 약 690g으로 지금보다 4~5배가 큰 엄청난 대식가였으며 1940년대까지도 비슷한 크기였다, 고려시대는 1040g, 고구려 시대는 1300g의 밥그릇을 사용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학자인 오희문(1539∼1613)은 임진왜란 시기에 쓴 일기인 '쇄미록'에 이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는 장을 담그기도 했는데 오늘날 메주에 해당하는 말장과 소금의 비율을 상세히 적어놓았다.
'여종 강비의 남편 한복이 그물을 가지고 연못에 가서 고기를 잡아 붕어 17마리를 얻었기에 저녁밥 지을 쌀을 주고 바꿨다. 다음 날에 다시 잡으면 식혜를 담갔다가 한식 제사에 쓰련다'
임진왜란을 기록한 3대 저서로《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오희문의 《쇄미록》을 꼽는다. 쇄미록(瑣尾錄)은 '보잘것없이 떠도는 자의 기록'이란 뜻이다.
오희문은 임진왜란 당시 토목 일을 맡은 관리였는데 지방에 사는 외거노비들에게 공물을 받을 목적으로 1591년 11월 27일 한양을 떠났다가 전라도 장수에서 임진왜란을 맞은 후 1601년 한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9년 3개월 동안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지역을 옮겨 다니며 일기를 썼다.
소제 이상길(昭齊 李相吉, 1901-1959)은 정읍 출신으로 전주에서 주로 활동한 근대 서화가이다. 그는 우석 황종하(右石 黃宗河, 1887-1952)에게서 그림을 배웠으며, 특히 화조화와 사군자, 호랑이 그림에 뛰어났다. 이상길의 화조영모에 대한 사실묘사 능력은, 특히 호랑이 그림에서 그의 예술적 기량과 독창적 필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호랑이를 직접 사생하고 그려낸 것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호랑이의 유연함과 얼룩무늬, 포효하는 얼굴과 수염의 묘사가 섬세하고 사실적이다. 잔잔한 털의 묘사나 빛깔의 적절한 효과가 유연한 담채의 활용으로 호랑이의 특징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이상길의 산수화를 보면 같은 시기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과는 많이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전통 한국화의 관념적인 특성위에 사생을 통하여 근대적인 시각을 조화시킴으로써 자신만의 회화 세계를 창출하였으며 전환기의 한국회화 상황과 특징을 잘 보여주는 화가이다.
' 東風花事到江城 早有人家喚春錫 동풍이 부는데 꽃놀이로 강성에 이르니 일찍이 사람의 집이 식혜가 있다고 부름이 있었네.(正陽寺 歇惺樓 정양사 헐성루)
全剛絶奇冠西 東天下可與同 금강산은 절묘 기이함이 첫째요.서 와 동의 천하가 가히 더불어 한 가지이다.(玉流洞 옥류동)
金剛無限景 難盡小僧談 금강산은 무한한 경치요 소승의 이야기는 다하기 어렵네.(天仙台 천선대)
蕭蕭落葉聲 驚起秋山暮 소소한 낙엽 소리에 놀라 일어나니 가을 산은 저물었네. (長安寺 夜景 장안사 야경)'
'금강산 4폭 병풍' 등 이상길의 금강산도는 정이 듬뿍 담긴 한국적 풍경의 정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감이 사실성을 바탕에 둔 기법에서 우러나오고 있다고 보여진다.
식혜는 흔하지만 전북 고창 지역의 우슬식혜는 조금 특별하다. 무릎 아픈 데에 특효가 있어 ‘쇠무릎’이라 불리는 약초 우슬을 달인 물을 넣어 만든 것이 바로 우슬식혜다.
식혜를 만들 땐 고슬고슬한 고두밥을 쓰는 게 좋다. 물기가 적어 엿기름 우린 물을 잘 흡수하고, 쌀알끼리 들러붙지 않아 단맛이 골고루 밴다.
할머니께선 애썼다며 으레 고방의 단지에서 살얼음이 낀 식혜를 한 대접 퍼주시곤 했었는데, 달금 시원하고 쌉싸래한 그 맛은 세상 어디에도 견줄 수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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