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 '태산가'의 근거
양사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태산가’가 일재 이항의 작품이라고 한다.
정읍 남고서원은 조선 숙종 11년(1685년)사액을 받은 서원이다.이 서원의 주련(柱聯)에는 조선 중기 양사언이 썼다고 알려지고 있는 태산가(泰山歌)가적혀 있으나 학계에서는 이 시가 일제 이항의 시일지도 모른다고 점쳐지고 있다. 이항의 유품에 해당하는 벼루가 현재는 없어졌지만 이 벼루에도 태산가가 새겨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 근거다.
또, 그 근거는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이 1747년에 쓴 『고가신번이십구장(古歌新飜二十九章)』에 한문으로 싣고 일재가 지은 노래로 전해진다고 했고, 남고서원의 주련(柱聯)에도 한시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또 1759년 추간한 『일재선생집속록(一齋先生集續錄)』‘유사(遺事)’에 실려 전한다. 이 시의 주제는 ‘학문하는 사람이 수행하여 도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라’는 뜻이고, 똑같은 주제로 다음과 같은 칠언절구의 한시를 지었다.
시김군영정(示金君永貞)
욕관홍수수창해(欲觀洪水須滄海)
여견명구상태산(如見名區上泰山)
대장불위폐승흑(大匠不爲廢繩黑)
통명성학량비난(通明聖學諒非難)
홍수를 보고자 하면 모름지기 창해가 필요하고, 이름난 곳을 볼 것 같으면 태산에 올라가야지. 이름난 장인은 먹줄을 놓지 아니하는 법, 성학(聖學)을 통하여 밝히는 일은 진실로 어려운 일이 아니라네.
정읍 남고서원은 조선 숙종 11년(1685년)사액을 받은 서원이다.이 서원의 주련(柱聯)에는 조선 중기 양사언이 썼다고 알려지고 있는 태산가(泰山歌)가적혀 있으나 학계에서는 이 시가 일제 이항의 시일지도 모른다고 점쳐지고 있다.이항의 유품에 해당하는 벼루가 현재는 없어졌지만 이 벼루에도 태산가가 새겨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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