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운사 동백나무의 용도는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
우리 조상은 음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양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습지에서 잘 자라는 나무, 건조한 땅에서 잘사는 나무 등을 나누어 적재적소에 심는 슬기로움을 보였는데,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방화수림대(防火樹林帶)다.
우리나라의 어느 절이든 화재를 당하지 않은 절을 찾아보긴 어렵다. 지난 2005년 산불로 폐허가 되었던 낙산사만 해도 조선왕조 5백 년 동안 무려 11차례의 화재를 겪었다.
방화수림대란 산불이 났을 때 불길이 사찰 경내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고, 사찰에서 난 불이 산으로 번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사찰과 숲 사이에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띠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공간을 말한다.
먼저 사찰의 전각 뒤쪽 15~20m 공간의 숲을 완전히 제거하여 화소(火巢)를 조성하고 화소 위쪽에다 불에 잘 타지 않는 나무를 심어 방화수림대를 조성한다.
현재 사찰에 남아있는 방화수림대는 고창 선운사에 동백나무숲이 있고, 화엄사 각황전 뒤에 동백나무와 참나무를 심은 방화수림대가 남아 있다.
나주 불회사 방화수림대는 아래쪽에서 위로 올라가며 잔디, 차나무, 동백나무, 비자나무, 대나무, 소나무, 혼효림이 층을 이루며 자리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화수림 띠를 이루고 있다. 사천 다솔사는 화소 공간에 차나무를 심었는데 차나무는 동백나무와 같은 과에 속한다.
방화수림으로 이용되는 나무 - 동백나무, 아왜나무, 참식나무, 광나무, 사스레피나무, 호랑가시나무, 굴거리나무, 붓순나무, 후피향나무, 가시나무, 잎갈나무, 사철나무, 굴참나무, 불이 나면 줄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온다 하여 '화두목'이라 불리는 은행나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러한 내화수종은 산불 이후에 다른 나무들보다 회생력이 강하다는 장점도 있다. 음지에서 잘 자라는 음수나 친수성 나무인 고로쇠나무, 피나무, 물푸레나무, 황철나무, 고광나무, 음나무 등도 비교적 화재에 강하다.
고창 '삼홍화(三紅花)', '삼백화(三白花)'에 취해보세요.
고창엔 삼홍화, 삼백화가 유명하다.
삼홍화는 세 가지 붉은 꽃으로 동백, 철쭉, 상사화를 말하고, 삼백화는 세 가지 하얀 꽃으로 벚꽃, 녹차 꽃, 메밀꽃이 있다.
'동백(冬柏)'은 말 그대로 겨울나무이지만, 사실 고창 선운사를 비롯, 뭍에서 만난 동백들은 대부분 이르긴 해도 분명 봄에 피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거문도에 가서 처음 동백나무가 겨울꽃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건너, 섬에서 만난 동백꽃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진초록빛 잎새 사이에 선연하고도 붉은 동백꽃잎들을 과하지 않게 벌려 그렇게 단아하게 피고 있었다. 가슴 저 깊은 곳을 살짝 건드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름다웠던 기억이다. 내륙으로는 고창 선운사, 바닷가로는 좀 더 북쪽인 마량리, 섬으로는 대청도까지 올라오지만 따뜻한 곳에 자라는 남쪽의 꽃나무이다.
'동백(冬柏)'이라고 불러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의 선조는 동백나무를 겨울에 피는 꽃나무로 인식했다.
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는 높이 7-15m로 자라며 겨울에도 푸르른 잎을 자랑하는 대표적인 겨울나무이다. 하지만 동백나무는 뭐니 뭐니 해도 인고의 겨울을 지내고 붉게 핀 동백꽃이 가장 유명하다.
꽃이 시들지 않은 상태로 봉오리 째 떨어져 예로부터 절개와 지조를 상징했고, 이런 이유로 아가씨와 관련된 사연과 이야기가 많다. 그 속에서 피어난 대표적 사연이 바로 이미자씨가 부른 '동백아가씨' 이다. 동백아가씨(노래)는 동백꽃에 그리움이 사무쳐 빨갛게 멍이 들고 이 사연을 꽃잎에 새긴다는 임을 향한 그리움의 가사로 유명하다.
또, 오래 전엔 아가씨들의 아름다움을 꾸미기 위해 동백나무 씨앗에서 기름을 짜 이를 머리에 바르고 다녔다고 하니 겨울나무이자 아가씨나무라 부르고 싶다.
봄이면 천연기념물 184호인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에 빨간 동백꽃이 만개한다.
선운사 대웅보전 뒤뜰에는 수령 500여년 된 동백나무 3,000여 그루가 병풍처럼 둘러져 꽃이 피는 이 시기에는 만개한 꽃과 떨어지는 꽃들로 장관을 연출한다. 그 누구는 1만 여루의 동백꽃이라고
한다.
이곳처럼 동백꽃이 하나의 아름다운 숲으로 남아있는 것은 흔치 않아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상록활엽수인 동백나무는 잎이 두껍고 수분 함유율이 높아 사철 산불의 진행을 최대한 더디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선운사 사찰 창건 당시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 식재한 것으로 추정되며 동백 열매의 기름을 등화 연료로 사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는 숱한 시인, 묵객에게 예술적 서정을 불러일으켜 빚어진 선운사와 동백에 연원을 둔 작품 중 하나다. 고창 선운사 동백을 글로 그려낸 시인의 시는 ‘나뭇가지에서’ ‘땅 위에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세 번을 핀다는 동백의 모습을 보지 않고도 상상하게 한다.
선운사 초입 추사 김정희선생이 쓴 ‘화엄종주 백파대율사 대기대용지비(華嚴宗主 白坡大律師 大機大用之碑)’는 조선 철종 9년(1858)에 세운 것으로, 대기(大機)는 원만해서 두루 응하는 것이고, 대용(大用)은 바로 끊는 것을 말한다.
선운사에 주석하며 원숙한 깨달음에서 나오는 자유자재한 경지로 후학을 제접했던 백파스님을 기리는 비를 지나 도량으로 들어섰다. 30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싼 대웅보전의 모습이 드러난다.
선운사엔 동박새가 산다.
동백나무는 벌과 나비가 없는 한겨울에 꽃이 피는데 수정을 어떻게 할까? 곤충이 아닌 동박새가 수정을 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동박새 등 겨울에 먹이가 부족한 새들은 동백꽃 꿀을 빨아 먹는 과정에서 이마에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으로 옮겨준다. 동박새는 워낙 작고 날쌔 실물을 보기가 참 어렵다. 동백꽃처럼 새가 꽃가루를 옮겨주는 꽃들을 조매화(鳥媒花)라고 한다.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떠나실 거에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 곳 말이에요”
가수 송창식이 노래한 고창 선운사의 동백꽃이 꽃망울을 터뜨리며 아찔한 붉은빛의 유혹을 한다.
‘누구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란 꽃말을 지닌 동백꽃은 나무 위에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꽃봉오리가 땅으로 통째로 떨어져 마치 땅 위에 피어난 것처럼 땅에서 두 번째 꽃을 선사한다. 그리고는 우리 마음에서 세 번째 꽃을 피운다.
김훈은 에세이 '자전거 여행'에서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죽을 때 주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고 했다.
전성기에 지고마는 동백꽃을 두고 선인들은 '동백꽃은 세 번 핀다'며 그 애잔함을 달랬다. 한번은 나뭇가지에서, 또 한번은 땅 위에서, 마지막 한 번은 사람의 가슴 속에서라고.
붉은 꽃이 짙푸른 숲을 수놓는 개화의 절정기에 땅바닥에는 '눈물처럼 후두둑 진' 동백꽃이 수북이 쌓인다.
구름 속에서 마음을 닦는 고창 선운산이 온통 붉은빛으로 물들었다. 내 마음에도 어느 새 동백꽃이 화사하게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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