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만과 뱀첩 이야기가 전하는 전북
국립민속박물관은 2025년, 다가오는 을사년 ‘뱀’의 해를 맞이하며 ‘한국민속상징사전’ ‘뱀 편’을 발간했다.
뱀은 십이지 가운데 여섯 번째에 해당한다. 길고 털이 없는 생김새에다 독을 품고 있기도 해서 다른 동물에 비해 친근하게 여겨지지 않지만, 풍요와 다산, 지혜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뱀을 퇴치하고자 여러 방안을 모색하면서도, 집과 재물을지 켜주는 업 또는 수호신으로 모시고 위했다. 전북과 관련된 이야기를 뽑아 정리했다.
△상사일(上巳日)
새해 들어 첫 번째로 맞는 뱀날이 상사(上巳日)이다. 정초십이지일의 하나이며 무모일(無毛日)에 속한다. ‘첫뱀날’이라고도 한다. 상사일의 풍속은 주로 뱀의 침입을 예방하기 위한 금기속(禁忌俗)과 주술적 의례행위로 이루어진다. 이 가운데 뱀을 쫓아내기 위한 주술적 행위는 정월 대보름에 행해지기도 한다.
‘경도잡지(京都雜志)’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정월조에 따르면, “사일에는 이발을 하지 않는다. 뱀이 들어오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속은 전국적으로 보이는데, 뱀날에는 뱀이 들어와 화를 입는다고 하여 머리를 빗거나 자르지(깎지) 않는 것은 물론 머리도 감지 않고 머리카락을 버리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새끼줄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러한 금기속이 뱀의 침입을 막기 위한 소극적인 방법이라면, 이날 뱀막이를 위한 적극적인 방법으로 뱀부적붙이기와 뱀치우기(뱀지지기, 뱀끄슬리기)가 있다.
뱀부적을 지역에 따라서 뱀뱅이·뱀방·뱀입춘·배암막이·뱀축·뱀첩이라고도 한다. 뱀부적은 전날 미리 준비해 두거나 아침 일찍 해 뜨기 전에 쓴다.
한지를 조그맣게 잘라 붓으로 ‘巳(뱀 사)’자를 쓰거나 청사(靑巳・靑蛇), 백사(白巳), 황사(黃巳), 홍사(紅巳), 흑사(黑巳) 등의 뱀 종류와 청룡(靑龍), 백룡(白龍), 황룡(黃龍), 적룡(赤龍), 흑룡(黑龍)등 용의 종류를 써서 붙인다.
또는 뱀에게 물려죽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뱀을 많이 잡아 죽였다는 이삼만(李三晩), 뱀을 죽이기로 유명했던 적제자(赤帝子). 그리고 항우검(項羽劒)·패왕검(覇王劒)이나 동사(冬巳)·용의방(龍義方), 그 밖에 뱀이 사방 멀리 사라지기를 바라는 뜻으로 사방무일사(四方無一巳), 동서남북 속거천리(東西南北 速去千里), 사공천리거(巳公千里去) 등 뱀이 무서워하는 글귀를 쓴 뱀뱅이를 써서 마루·기둥·장독대·담벽 등 집안 곳곳과 우물이나 샘 등 뱀이 나올 만한 곳 또는 나와서는 안 될 곳에 거꾸로 붙인다. 거꾸로 붙이면 뱀이 올라가다 떨어진다고 한다. 이때 쑥과 무명씨, 고추를 넣어 뱀불을 피우기도 하는데, 독한 냄새로 인해 뱀을 쫓는 주력(呪力)이 있다고 믿는다.
△‘흥부가’ 문학 속의 뱀
은혜 갚은 까치 설화는 뱀에게 잡아먹힐 위기에 놓인 까치를 구해 주었더니 까치가 희생으로 보은하는 내용으로 인물전설 등의 사례로서 전국적으로 전한다. 동물보은담은 매우 흔하게 전하는 설화의 주요 모티프 중 하나로서 뱀과 관련된 대표적인 예는 판소리 ‘흥부가’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 동물보은담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을 수 있는 ‘흥부가’는 제비와 뱀의 생사대립이 계기가 된다. 잡아먹으려는 뱀을 피해 아래로 떨어져 다리가 부러진 제비 새끼 한 마리를 치료해 주었더니 다음 해 강남에서 돌아오는 길에 박씨를 물어다 주어 횡재를 하게 된 내용으로 민속문학의 한 장르인 판소리에 정착해서 핵심 모티프를 이룬다.
△‘사두혈’이 자리한 무장읍성
뱀과 관련된 풍수지리담으로서 전국적으로 전하는 ‘뱀형국 설화’가 많다. 대표적으로 고창 무장성과 관련되는 전설 본래 무장성이 있던 자리는 사두혈(巳頭穴)로서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는 대신 늘 사고를 일으키는 양면적 지세였다.
옛날 어떤 도인의 말을 듣고 현감이 사두혈을 파헤치자 사고는 줄었으나 인물이 나지 않았는데, 어떤 도인의 말대로 파헤친 사두혈에 느티나무를 심고 연못을 만들어 뱀의 먹이가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더니 다시 인물이 나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그 사두혈이 바로 현재의 무장읍성이며, 무장읍성의 무성한 느티나무는 이러한 전설과 관련되는 전설유적이다.
△이삼만과 뱀첩
창암 이삼만(李三晩, 1770~1847)은 뱀만 보면 닥치는 대로 잡아서 생식도 하고 구워도 먹었다. 특히 독사가 눈에 띄면 그 자리에서 잡아 살과 뼈까지 씹어 먹었다. 이삼만이 이런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약초를 캐서 생활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약초를 캐다가 그만 독사에 물려 죽고 만 것이다. 이삼만은 아버지가 그리워 한동안 울부짖으며 지내다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겠다는 굳은 결의를 하였다. 그 뒤부터 이삼만은 눈에 보이는 대로 뱀을 잡아서 먹어 치웠다.
이렇게 수년이 지나자 뱀들은 이삼만만 보면 주눅이 들어 옴짝달싹도 못 하고 잡혔다. 이 이야기가 호남 지방에서 전해져 정월 첫 사일(뱀날)에 ‘李三晩’이란 이름 석 자를 종이에 써서 집 안 곳곳에 붙임으로써 집 안으로 뱀이 들어오지 못하게 ‘뱀방이’(또는 뱀뱅이, 배암막이, 뱀첩)를 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1960년대 제주도에서 채록된 ‘김녕 뱀굴’에도 이삼만이 등장한다. 본래 이 전설의 주인공은 1513년(중종 8) 제주 판관(判官)으로 부임한 서련(徐憐)인데, 이삼만으로 바뀌어 있는 것이다.
서련이 등장하는 전설에서는 서련이 처녀 제물을 받는 큰 뱀을 퇴치하고 성안으로 들어오다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즉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삼만이 등장하는 전설에서는 큰 뱀에게 처녀 제물을 바친다는 소식을 들은 이삼만이 그 뱀을 퇴치하고자 자원하여 김녕을 찾아온다. 이어 이삼만은 큰 뱀을 성공적으로 퇴치하고 관아로 돌아가려 하지만,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뒤를 돌아보았다가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여기까지는 두 전설의 내용이 흡사하고, 이후 정월 사일에 종이에다 ‘李三萬’이라고 써서 뱀이 돌아다니는 데에 붙이면 뱀이 무서워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차이 나는 내용이다.
‘뱀 퇴치자’로서 이삼만이 보인 행적과 뱀첩 풍속이 제주의 ‘김녕 뱀굴’에 수용된 것은 제주도 사람들이 뱀의 피해를 많이 받아온 것과 관련이 있다.
아키바 다카시(秋葉隆)의 ‘조선민속지(朝鮮民俗誌)에 의하면, 토산리가 위치한 한라산 동쪽에는 산(山)뱀이 많아 민가의 토방 중앙에 불을 지피는 화로를 만들어 뱀이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고, 의복도 뱀을 피하기 위하여 감색물을 들여서 입었다고 한다.
뱀의 피해가 인간의 주거와 의복 풍속에도 영향을 줄 만큼 중대한 문제였던 것이다. 다만 이 전설에서 뱀첩에 적는 이름이 ‘三晩’이 아니라 ‘三萬’이라고 한 것은 구전상의 와전이다./이종근기자
http://sjbnews.com/news/news.php?number=837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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