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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김제출신 차일혁 경무관

전쟁기념관은 항일 독립운동과 6.25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차일혁(1920. 7. 7 ∼ 1958. 8. 9, 김제출신) 경무관을 ‘9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했다. 따라서 4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 차길진 법사 등 유족과 경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는 현양 행사가 거행된다.

차경무관은 1920년 7월 7일 김제시 금산면 성계리에서 아버지 차유선, 어머니 김유순의 외동아들로 출생했다. 흥성공업전수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6년 초 조선인 교사를 연행한 바, 일제 특별고등계 형사를 구타하고 중국으로 망명,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지강 김성수와의 인연으로 중국 중앙군관학교(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1941년부터 조선의용대에서 항일유격전 활동을 펼치다가 광복 이후 남한으로 귀국했다. 귀국 후 그는 김성수, 이규창 등과 함께 악명 높았던 일본 경찰 사이가, 츠보이 등을 저격,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데 앞장섰고 6·25전쟁 발발하자 ‘옹골연 유격대’를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싸웠다. 이 과정에서 인민군 보급차량을 습격 도중 입은 팔 부상으로 군에서 제대했다. 이어 1950년 10월 전북경찰국 제18전투대대장(경감)에 투신하게 된다. 부족한 화력과 인원이었지만 전주시 완주군 구이면의 토벌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그는 1951년 1월, 정읍 칠보발전소 일대를 빨치산 2,500여명이 포위하자 전투경찰 75명을 이끌고 탈환작전에 임했다. 턱없이 적은 병력에도 불구, 신출귀몰한 기만전술로 당시 유일한 남한의 발전소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여 호남과 충남일대에 전기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장수, 정읍, 무주 등에서 빨치산토벌작전을 펼쳐 많은 공을 세운 그는 무주경찰서장, 임실경찰서장 등을 역임한고, 1953년 5월에는 서남지구전투경찰대 2연대장으로 취임, 그해 9월 18일 빨치산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을 사살, 빨치산 토벌작전을 사실상 종료시켰다. 이후에 충주경찰서장, 진해경찰서장, 공주경찰서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해내며 대한민국 경찰의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1958년 8월 안타깝게도 금강에서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은성 충무무공훈장과 금성 화랑무공훈장, 대통령수장 등을 받았으며, 정부는 2008년 10월 그에게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했고, 시인 고은은 공덕시를 지어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 프로야구단 넥센 히어로즈의 구단 대표 대행인 차길진씨의 부친이기도 하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