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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한국 영화계 거장 송길한 작가 별세....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 가르치고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 등 역임




영화 ‘만다라’와 ‘길소뜸’ 등의 시나리오를 쓴 한국 영화계 거장 송길한 작가가 22일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4세.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하는 등 다방면으로 한국 영화계에 족적을 남겼다.
1999년 당시 우석대의 장명수총장이 이강천 감독의 영화 '피아골'의 제명을 딴 ‘피아골영화제’를 제안했고, 지역의 문화계 원로들도 영화제 기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처음 제안된 피아골영화제는 제1회 ‘전북영화상’처럼 시상식 형식의 소규모 영화제였다. 장 전 총장은 영화제 기획을 전주시에 알리고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김완주 전주시장은 지역 문화계 인사들의 간곡한 요청을 수용키로 결정했다. 시는 영화제 예산을 집행하기 위해서 공청회를 열고 자문을 구하는 등 절차를 밟았다.
문화계 인사들과 전문가들이 참석한 수차례의 공청회와 세미나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지방에서 성공하기 힘든 시상식보다는 국제영화제가 시와 지역민들에게 좀더 가치 있고 의미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러한 영화제 방향 전환에 김소영 교수(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등의 노고가 컸다. 1999년 전주시 지원으로 전주에서 국제영화제가 개최되는 것이 확정됐다.
그러나 시가 국제영화제를 목표로 상향 책정된 당시 예산은 9억 7,000만원으로 최소 19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분석 결과엔 훨씬 못 미쳤다. 그럼에도 우선 창립 준비를 서둘렀다. 곧바로 이사회가 구성되고 초대 집행위원장으로 최민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을 선출하고, 민성욱 교수가 사무국장으로 임명됐다. 그리고 영화제의 핵심인 프로그래머는 김소영 교수와 정성일 영화평론가(당시 'KINO' 편집장)가 공동으로 맡게 됐다. 개최지가 전주이니 ‘전주국제영화제’로 쉽게 가자는 시나리오 작가 송길한의 제안에 만장일치로 명칭이 결정됐다,
고인은 1940년 7월 30일 전주에서 태어나 전주고를 거쳐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군대에서 제대한 후 썼던 시나리오 '흑조'가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등단했다
'마지막 날의 언약'(1974) '둘도 없는 너'(1977) '순자야'(1979) '여고얄개'(1977) '나비소녀'(1977) '우리들의 고교시대' 등 멜로와 하이틴 장르는 물론 '도솔산 최후의 날'(1977) '슬픔은 저별들에게도'(1978) '누가 이 아픔을'(1979) 등 반공 및 전쟁영화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임권택 감독을 만나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는 '짝코'(1980) '만다라'(1981) '안개마을'(1982) '길소뜸'(1985) '티켓'(1986) '씨받이'(1986) 등을 함께하며 자신의 재능을 재증명했다.
'만다라'도 제20회 대종상에서 각색상과 제1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티켓'으로 대종상 영화제 각본상, '길소뜸'으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또한 '씨받이'는 배우 강수연에게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겼다.
이장호감독의 '명자 아끼꼬 쏘냐'(1992)의 각본과 임권택 감독의 '달빛 길어올리기'(2010)에 각색에 참여하는 등 40여 년간 작가로 활동했다.
'넘버3'의 송능한 감독이 고인의 동생이며, 송감독의 딸로 '패스트 라이브즈'를 연출한 셀린 송 감독이 조카다.
빈소는 서울 은평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5일이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