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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주 경기전의 장식기와 '취두(鷲頭)'

전주 경기전의 장식기와 '취두(鷲頭)'
ㅡ궁궐 지붕 용머리 장식이 태안 갯벌서 나온 이유....한양서 만들어 배로 옮기다 침몰한 것으로 추정

전주 경기전으로 이동하다가 난파된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기와‘취두’(鷲頭)가 공개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해양유물전시관 개관 30주년을 맞아 '10년의 바다, 특별한 발견' 특별전을 갖는다.

16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17일부터 2025년 3월 30일까지 최근 10년(2012~2022)간 태안 마도와 제주 신창리 해역 등에서 출수한 수중 유물 190여 점을 선보인다.

2019년 태안 양잠리 갯벌에서 처음 발견된 취두는 서울 용산 일대 와서(瓦署, 조선시대 기와 담당 관서)에서 만들어 충청 이남 지역으로 옮기려던 것으로 보인다.

이 취두는 높이 103㎝, 최대너비 83㎝에 달한다. 눈 부릅뜨고 입을 벌린 큰 용의 머리 위에 따로 작은 용 한마리와 나선형의 오목새김 선을 새겼다. 

위엄이 서린 표정과 생동감 넘치는 형상이 돋보이며 비늘과 갈기, 주름의 표현도 세밀하다.

‘취두(鷲頭)'는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 기와를 말한다. 

현재로서는 태조의 어진이 있던 전주 경기전을 위한 취두였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조선시대 전기의 궁궐 용마루 장식 기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담은 보고서가 발간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9년 태안 양잠리 갯벌에서 처음 발견된 이후 2년에 걸쳐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양으로 발굴된 궁궐 장식 기와인 취두와 기와 장식품인 검파 등 출토유물 13점에 대한 발굴과정과 조사·연구 내용을 수록한 ‘태안 양잠리 조간대 발굴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조선 전기 왕실 관련 건축물에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식 기와 ‘취두’(鷲頭한 세트가 충남 태안 갯벌에서 발굴됐다. 취두를 구성하는 일부 기와가 발견된 적은 있지만 온전히 한 세트가 발굴된 건 처음이다.

이는 전주 경기전으로 이동하다가 태안에서 난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전은 태조의 첫 임금 이성계와 그 선조들을 배향하는  조경모 등이 있어 왕실 관련 건축물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취두는 전체 높이가 103㎝이며 가로 길이는 83~85㎝, 두께는 22㎝다. 검파는 길이 40.5㎝, 폭 16㎝, 두께 7㎝ 크기다. 취두와 검파까지 합친 완전체의 총무게는 120㎏에 달한다. 취두는 마루장식기와의 일종으로 조선시대 왕실의 마루장식기와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주로 왕실에서 건축자재로 썼던 취두 등의 장식기와가 태안 앞바다에서 나온 까닭은 뭘까? 

 한양에서 만든 장식기와를 충청도·전라도·경상도 삼남지방에 있는 왕실 관련 건물에 쓰려고 배에 싣고 옮기다가 태안 해역에서 침몰한 데 따른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로 조선시대 나라 최고의 법전 '경국대전'(經國大典)을 보면, 기와를 만드는 공영관청인 ‘와서’(瓦署)를 한양에 두고 기와 만드는 장인 와장(瓦匠) 40명과 장식기와 등을 만드는 잡상장(雜像匠) 4명으로 구성해 운용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양 와서에서 만든 기와들을 해로로 옮기다 물길이 험한 태안에서 해난사고로 바닷속에 가라앉았을 것이란 얘기다.

취두는 고려시대부터 임진왜란 전까지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대상물이었지만, 조선후기에는 왕실 관련 건물의 축조와 보수가 증가하면서 상징성보단 실용성이 부각됐다.

발굴된 취두는 숭례문과 양주 회암사지의 취두 등과 그 문양이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용산 와서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취두는 숭례문과 양주 회암사지의 취두 등과 그 문양이 매우 유사한 점 등을 근거로 조선 전기 용산 와서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며, 전주 경기전 또는 충청 이남 지역 등으로 이동하다가 태안에서 난파된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태안 양잠리 조간대의 발굴조사 내용과 취두, 검파 등 유물 도면과 사진 '고려사절요','조선왕조실록','의궤' 등 고려~조선시대의 문헌으로 본 마루 장식 기와의 특징과 변천사가 담겼고, 숭례문과 양주 회암사지, 서울 진관사에서 출토된 유물들과 비교분석한 내용도 수록됐다.

또, 발굴로 서울 진관사에서 쓰임새를 알지 못한 채 특수기와로만 알려져 있던 파편 유물 1점이 검파라는 것을 확인한 성과도 수록되어 있다. 

진관사지 검파는 칼손잡이 부분만 남아 있으나, 태안 양잠리에서 발굴된 검파와 매우 유사한 형태와 문양을 보인다.

'진관사(津寬寺)'는 서울 북한산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고려 현종 2년(1011)에 창건하여 조선 후기까지 왕실과 국가적인 제례 담당했다./이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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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경기전 사용 추정 ‘취두’(鷲頭) 공개

http://sjbnews.com/news/news.php?code=li_news&number=8356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