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강이씨가 (무장현감으로 간)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편지
기별 아득 요원하니 밤낮으로 답답하고 염려 녹을 듯할 차에 뜻밖에 물한으로 온 편지에 적으신 것 자세히 보니 연하여 기운 대단한 더치심은 없으나 날마다 십 리쯤 되는 곳에 왕래하시며 조석도 제때에 자시지 못하는데 여관 주인은 정답지 못하니 지내시는 도리는 그러하시고, 귀실은 대고 인력을 감당하지 못하여 얼굴과 살갗이 몹시 여지없으실 듯하여 답답할 밖에 없습니다. 이 장장 긴 해에 요기도 못 하시고 어찌 견디시리. 그러고 하시다가 병환을 내실 듯 안타깝고 안타까우나 푼돈을 보내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고 몹시 귀찮습니다. 그러고 지내시며 집의 사람을 걱정하시니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잊어버리고 생각지 마십시오. 아무리 하더라도 차돌이를 죽을 먹이지는 않을 것이니 염려 마십시오. 여기도 차돌이 무병하고 중간에 음식 싫어하더니 지금은 줄곧 먹고 충실하니 기특하고 기특합니다. 약도 지어 온 것을 아직까지 권 의원을 데려오지 못하여 미루어지니 답답하더니 지난번에야 가까스로 세마를 내어 데려다가 보이니, 미음에 먹으면 지나치게 살이 찌니 그러지 말고 사물탕에 먹이면 살도 지나치게 찌지 않고 낯에 혈기 화색이 날 것이니 그걸 하여 먹이면 매우 좋을 것이라고 하니 사물탕을 달여 시작하였으나 무수히 오래 먹게 될 듯하여 민망하고, 주아도 겨우내 담같이 두 다리로 오르락내리락, 배로도 들고 간 곳마다 곪는 듯이 아프고 두통도 있고 면종이 겨우내 반한 곳 없이 그러하니 의원을 보니, 근위가 깊다고 탕약 스물다섯 첩을 처방하여 제가 지어 주마고 25일 찾아가라 하니, 찾아다가 즉시 시작하려 하고, 아주머님도 스무 첩 짓고 봉대집 진맥하니 복병 괴상하여 태기 없고 태기 있다 하여도 열 달을 보태를 못 할 것이라 하니 또 약 20첩을 처방했으니, 일시에 다 먹으려 하니 어찌된 아이들이 병이 그리 많은지 괴이합니다. 건너 새집이 다 그만하고 유행병도 없으니 다행합니다. 창의감은 무얼 주고 사셨는지. 점심 굶으시며 바느질까지 값을 드릴 일 답답합니다. 창의에 스물넉 자면 넉넉하게 드니 한삼, 행전까지 넉넉히 될 듯하나 몇 자나 되는고. 서른석 자나 되면 넉넉할 듯합니다. 오늘에야 편지가 와서 내일 또 간다고 하니 급급하여 이만입니다. 내내 태평하고 태평하신 기별 쉬 듣기 바랍니다. 태봉이 올 적에 옷은 다 왔으나 동의는 아니 왔습니다. 3월 20일.
긔별 아득 요원오니 쥬야의 답〃 념녀 녹을
올 의외 믈한 긔편의 뎍오심 시 보오니
년여 긔운 단 쳠샹은 업오시나 날마다 십 이
허의 왕시며 죠셕도 제예 시지 못시
쥬인은 졍답지 못니 경과지도 그덧
시고 귀실은 고 인역을 감당 못 와 신관 긔뷔
여지〃업오실 답〃올 밧 이 댱〃 긴 예 요긔
도 못 시고 엇디 견시리 그러고 시다가 병환을
내실 탁〃오나 푼젼을 보내지 못고 이시니
답〃 귀찬〃 그러고 경과 시며 집의 사을 궐
념시니 민망〃 이저부리고 각지 마시 아모리
터라 돌을 죽을 먹일 줄 아니오니 념녀 마시
예도 돌 무양고 듕간의 음식 념더니 즉금
은 다라 먹고 츙실오니 긔특〃 약도 지어 온 거 이
적 권의 려오지 못여 쳔연오니 답〃
더니 거번의 갓가싀로 셰마 내여 려다가 보
니오니 미음의 먹으면 과히 이 지니 말고 물탕의
먹이면 도 과히 아니 지고 낫 혈긔 화이 날 거
시니 그걸 여 먹이면 댱히 죠흘다 니 물탕
을 려 시여오나 무수히 오 먹을 민
망고 도 겨으 담치 두 리로 오르락리락
로도 들고 간 곳마다 곰 시 아푸고 두통도 잇고 면죵
겨으 반 곳 업시 그러니 의원을 보니 근위 깁다고
탕약 스물다 쳡을 졔겨 제 지어 주마고 념오일
자가라 니 다가 즉시 시려 고 아바님도
스무 쳡 짓고 봉집 집니 복병 괴샹
여 긔 업고 긔 잇다 여도 십 삭을 보 못
다 니 약 이십 쳡을 젹여시니 일시예
다 먹으려 니 엇딘 아들이 병이 그리 만
고 고이 건네 집이 다 그만고 시긔도 업니
다 창의은 무얼 주고 신고 졈심
굴무시며 바질지 갑슬 드릴 일 답〃 창의예 이
십팔 쳑이면 넉〃 드니 한삼 젼거지 넉〃이 될 나
멋 이나 되고 설흔석 이나 되면 넉〃
오 편지 와 일 간다 니 급〃 이만 내〃 평
〃신 긔별 수이 듯기 라 봉이 올 적 오
슨 다 와스나 동옷슨 아니 와
삼월 념일
<주석문>
답샹장(答上狀) 긔별(寄別) 아득 요원(遙遠)오니 쥬야(晝夜)의 답답 념녀(念慮) 녹을 올 (次) 의외(意外) 믈한(勿閑)1) 긔편(寄便)의 뎍오심 시 보오니 년(連)여 긔운(氣運) 단 쳠샹(添傷)은 업오시나 날마다 십 이허(十里許)의 왕(往來)시며 죠셕(朝夕)도 제예 시지 못시 쥬인(主人)2)은 졍(情)답지 못니 경과지도(經過之道) 그덧시고 귀실3)은 고(大故)4) 인역(人力)을 감당(勘當) 못 와 신관 긔뷔(肌膚ㅣ) 여지여지(餘地餘地)업오실 답답올 밧 이 댱댱(長長) 긴 예 요긔(療飢)도 못 시고 엇디 견시리 그러고 시다가 병환(病患)을 내실 탁탁(哀㤞哀㤞)5)오나 푼젼을 보내지 못고 이시니 답답 귀찬귀찬 그러고 경과(經過) 시며 집의 사을 궐념(眷念)시니 민망민망(憫惘憫惘) 이저부리고 각지 마시 아모리 터라 돌(次乭)6)을 죽(粥)7)을 먹일 줄 아니오니 념녀(念慮) 마시 예도 돌(次乭)6) 무양(無恙)고 듕간(中間)의 음식(飮食) 념(厭)더니8) 즉금(卽今)은 다라9) 먹고 츙실(充實)오니 긔특긔특(奇特奇特) 약(藥)도 지어 온 거 이적 권의(權醫)10) 려오지 못여 쳔연(遷延)오니 답답더니 거번(去番)의 갓가싀로 셰마(貰馬)11) 내여 려다가 보니오니 미음(米飮)12)의 먹으면 과(過)히 이 지니 말고 물탕(四物湯)13)의 먹이면 도 과(過)히 아니 지고 낫 혈긔(血氣) 화(和色)이 날 거시니 그걸 여 먹이면 댱(壯)히 죠흘다 니 물탕(四物湯)13)을 려14) 시(始作)여오나 무수(無數)히 오 먹을 민망(憫惘)고 15)도 겨으 담(痰)치 두 리로 오르락리락 로도 들고 간 곳마다 곰 시 아푸고 두통(頭痛)도 잇고 면죵(面腫) 겨으 반16) 곳 업시 그러니 의원(醫員)을 보니 근위(筋痿)17) 깁다고 탕약(湯藥) 스물다 쳡(貼)을 졔겨18) 제 지어 주마고 념오일(念五日) 자가라 니 다가 즉시(卽時) 시(始作)려 고 아바님도 스무 쳡(貼) 짓고 봉(鳳垈)19)집 집(執脈)20)니 복병(腹病)21) 괴샹(怪常)여 긔(胎氣) 업고 긔(胎氣) 잇다 여도 십 삭(十朔)을 보(補胎) 못 다 니 약(藥) 이십(二十) 쳡(貼)을 젹여시니22) 일시(一時)예 다 먹으려 니 엇딘 아들이 병(病)이 그리 만고 고이 건네 집이 다 그만고 시긔(時氣)23)도 업니 다(多幸) 창의(氅衣)24)은 무얼 주고 신고 졈심(點心) 굴무시며 바질지 갑슬 드릴 일 답답 창의(氅衣)24)예 이십팔(二十八) 쳑(尺)이면 넉넉 드니 한삼(汗衫)25) 젼(行纏)26)거지 넉넉이 될 나 멋 이나 되고 설흔석 이나 되면 넉넉 오 편지(便紙) 와 일(來日) 간다 니 급급(急急) 이만 내내 평평(太平太平)신 긔별(寄別) 수이 듯기 라 봉(太奉)27)이 올 적 오슨 다 와스나 동옷28)슨 아니 와 삼월(三月) 념일(念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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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이를 봉대에 보내며 청송 편지를 이리이리 하라고 하였는데, 제가 어지럼증으로 앓아 편지 못 한다고 하니 와서 하려 하는가 싶습니다. 박실 댁에서 사안 논 서 마지기 여섯 냥이고 뒷골 밭 서 마지기 스물닷 냥에 값이 났다 하니, 집에서는 돈이 없는 듯합니다. 대촌이가 대토 없어 하던 것이니 의논하여 보십시오. 봉대 편지 아니 오니 갑갑합니다. 걱정하시는 일 민망하고 민망합니다. 열사흗날 오려고 하였습니까? 박실 댁이 사안 논이 좋다고 하고 밭도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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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무명은 살년, 살년오니 종들 입힐 것도 없으니 어찌할지 수란하고, 차돌이 온 후는 제가 반찬 가지나 사서 준 후는 한 푼 돈도 쓸 데 있다고 달라고 하면 변통성이 없으니 그래도 쓸 데는 전혀 없습니다. 남의 것을 더러 꾸어서 쓴 것 갚아 달라고 하니 저에게는 쓸 돈이 없는 것을 보챈다고 하니 갑갑하고, 이불도 며느리가 바빠서 할 사이가 없어서 남을 시켰더니 집에서 아니하고 남을 시킨다고 값을 줄 뜻이 없으니 답답합니다. 후편에 돈냥이나 주시면 이 빚을 벗을 듯합니다. 여기는 용암과 건넛마을에 유행병이 있다고 하니 몹시 두렵습니다. 병환은 그러하시고 점점 한겨울이 되면 견디실 도리가 더 괴롭고 하여 못 견디실 것이오니 병 핑계나 하고 (벼슬을 버리고) 오시면 나을 듯하나 마음대로 못 하니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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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10대 종손 김진화(金鎭華, 1793~1850)의 아내 여강이씨(驪江李氏, 1792~1862)가 전라도 무장(茂長)에 현감(縣監)으로 나가 있던 남편 김진화에게 보낸 것이다. 본문에 “ 폐국 거시 농여 먹으러 드러갓다다 오나 어느 말이 올흔동 아 그저〃 무댱이나 나시기 츅슈〃 …… 법흥 졔 뭇디 못여시니 후편의나 죠곰 무르시”이라고 하였는데, 발신자가 1848년 5월 11일에 보낸 편지(039번)에 “아모려나 무댱이나 나시시면 경올 츅슈〃더니…… 고이 소문이 위름〃오니 게 더고나 바다이오니 엇디〃올고 …… 호쳘 모 초칠일 보내고 쇼상 어제 지내오니 돌 갓다가 어제 와 졔의 무르실가 호 모가 고 기리던 거 몰라 계신 무류”이라고 한 내용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호쳘 모’는 발신자의 둘째 딸로서 시댁이 법흥인데 시조모 광산김씨(光山金氏, 1780~1847)가 1847년 5월 14일에 사망했으므로 ‘쇼상’은 바로 시조모 광산김씨의 소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졔의 무르실가 호 모가 고 기리던 거 몰라 계신 무류”과 본문의 “법흥 졔 뭇디 못여시니 후편의나 죠곰 무르시”을 비교하면
이 편지는 1848년 5월 11일보다 며칠 뒤에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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