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제3의 민간지 조선중앙일보 사장을 지낸 여운형은 점심 때면 손님과 함께 자동차를 몰아 조선호텔 식당 ‘정식’(定食)을 이용했던 모양이다. 월간지 ‘삼천리’(1935년3월호)는 여운형이 식후 ‘로-스까-덴’을 산책하며 신문사 운영의 경륜을 도모하거나 회사를 위한 교제도 한다고 소개했다. 조선중앙일보가 있던 견지동 111번지는 지금도 NH농협은행 지점으로 쓰고 있다. 2013년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근대문화재이기도 하다. 조선호텔까지는 1.2㎞쯤 되는 거리다.
1914년 3층짜리 관영 철도호텔로 개업한 조선호텔은 당시 조선에서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었다. 환구단(圜丘壇)을 배경삼아 양식(洋食)을 먹을 수 있는 고급 식당이 있었다. 업무, 관광차 온 외국인이나 일부 부유층이 이용하던 식당이었다.
조식 1원50전, 저녁은 3원50전
여운형이 즐긴 조선호텔 ‘정식’은 가격이 얼마쯤이고, 어떤 음식이었을까. 정식은 한상에 음식을 모두 내는 것과 달리, 음식을 하나씩 순서대로 내는 ‘코스요리’를 가리켰다. 상록수 작가 심훈이 1931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불사조’에는 조선호텔 식당 음식 가격이 나온다. 바이올리니스트 계훈이 독일인 아내 줄리아와 조선호텔에 한달간 묵으며 경성공회당에서 귀국독주회를 갖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양식이 아니면 먹지 못하니까 아침에 1원50전, 점심에 2원, 저녁에 3원50전 합하면 하루에 식대만 7원이요, 심심해서 여자 혼자는 먹을 재미가 없어하니까 계훈이까지 두 사람에 14원이다.방세(10원)까지 얼르면 하루의 비용이 먹고 자는데만 26원이다.’( ‘불사조’4회, 조선일보 1931년8월19일)
‘코스요리’ 가격은 아침 1원50전, 점심 2원, 저녁 3원50전이었다. 당시 설렁탕 가격이 10전~12전 정도였으니, 여운형이 먹은 정식은 설렁탕 20그릇쯤 먹을 수 있는 비싼 음식이었다. 두명이 조선호텔에 한 달 묵는 비용은 얼추 900원이었다. 계훈의 아버지는 전라도 아전 출신으로 경술국치 전해인 1909년 300석 지기 땅을 바치고 장관 자리를 살 만큼 부자였다. 하지만 이런 재력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호텔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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