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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09> 전북의 땅 지명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209> 전북의 땅 지명

고창 흥덕의 옛 이름 '흥성'
고창 무장의 옛 이름 '무송'
남원의 옛 이름 용성 '용성'
김제 만경의 옛 이름 '두릉'
순창의 옛 이름 '옥천'

'두릉(杜陵)'은 만경현(萬頃縣)의 옛 이름으로 ‘두산(杜山)’이라고도 했다. 지금 전북 김제시 지역이다. 만경두씨(萬頃杜氏)는 만경읍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다음은 해일(海日)스님(1541년∼1609년)
의 '영허집(暎虛集)' 의 '영허대사시집서(暎虛大師詩集序)'이다

'대사의 본가는 두릉(杜陵)이며, 변산 영주산(瀛洲山)에서 삭발했다. 나는 세속의 사람으로 대사와는 산 시대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데, 비록 도연명과 혜원의 결사(結社)한 일은 없었지만, 언제나 허순과 지도림의 방외의 교류를 바랐다. 신심(神心)에서 느껴 깨달은 것은 아득하여 알기 어렵거늘, 지금 무료한 때에 그 시고를 얻어 보고 여산(廬山)과 회계(會稽)의 노닒을 혹시라도 아침저녁으로 그 자취를 따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내가 말로써 발휘할 것은 없지만, 이 시들이 흩어져 없어질까 염려되는바, 마침내 권면(卷面)에 써서 준다. (師本家杜陵。
上瀛洲山落髮。余爲山下人。與師生世早
晩。雖無陶慧修社之事。每希許支方外
之交。神心感會。渺渺難了。何幸于今
無聊。獲見其詩什。廬山會稽之遊。倘
可朝暮追之無語發揮。恐詩零落。遂書
卷面相贈)

군산 임피는 '방죽(陂)에 다다르다(臨)'라는 뜻으로 과거 이 일대에 바닷물을 막기 위한 방죽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다를 '임(臨)'자에 방죽'피(陂)'자를 쓴다. 방죽이 많아서인지 옛부터 가뭄 피해를 입지 않는 지역이었다.

누가 한반도에 아름다운 땅이름을 지었는가. 오래 전에 살다간 선조들이 지어놓은 땅에 대한 지명을 분석하다 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너무 많다. 예언성 땅 이름은 경탄할 정도로 딱딱 맞아떨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땅이름의 '우합(偶合)'이다.

 오래 전부터 불러오고 있는 땅이름이 후세에 와서 이상하게도 그 땅이름의 뜻과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로써 땅이름에서 우리 선인들의 선견지명을 엿볼 수 있고, 다시 한번 땅이름의 신비를 실감하게 된다.
 
임실군 강진면에는 옥정리(玉井里)가 있다. 이 마을은 그전에 옥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옥정리라 부른다고도 하고, 혹은 조선 중기에 어느 스님이 이곳을 지나가다가 ‘멀지 않아 맑은  호수, 즉 옥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하여 옥정리라 했다고 한다.

 정읍시 산외면 목욕리(沐浴里)는 원래 물이 맑고 좋아서 선녀들이 목욕하던 곳이라 하여 ‘멱수’, ‘목욕소’라 했던 것을 일제시대에 개명했다고 하는데 온천이 나온다고 한다.

 옥구군(지금은 군산시에 편입)과 새만금간척지도 마찬가지다. 옥구군(沃溝郡)은 군산시를 에워싸고 있는 지역으로, ‘물댈 옥(沃)’자에  ‘개천 구(溝)’자를 합한 이름인 ‘옥구(沃溝)’는 한자대로 새기면 ‘개천에 물을  댄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제, 개천에 물을 대는 현실로 나타나게 됐다. 새만금간척사업은 고군산군도와 비안도를 거쳐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를 잇는 33km의 바다방조제를 쌓아 서울 여의도의 1백40배 규모의 토지를 조성하는 대단위 간척사업이다. 
 
 그리고 또하나, 진안군 용담면과 용담댐.  전북 진안 용담면은 일제시대부터 댐 건설의 적격지로 지목, 계획을 확정하고 사업을 검토하여오다가 일본 패망으로 무산됐지만 지난 1992년 착공, 2001년 완공됐다. 담수가 끝나자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참으로 기이하게도 댐이 가두고 있는 물줄기가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그대로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다.
 ‘용담’이란 ‘용 용(龍)’자에 ‘못 담(潭)’자의 지명으로 ‘용이 자리를 틀고 있는 깊은 연못’이란 의미를 현실화했다. 댐 완공 후 수몰선을 따라 물에 잠겨 호수의 형상이 용의 모양을 이루고 있으니, 용담면이라는 이름과 실제 현실이 맞아떨어지게 된 셈이다. 그래서 용이 살 수 있는 땅이 되었다.
 
‘안천 정천 주천이 용담을 이루면  마령은 용이 되어 상전으로  백운타고 오르리라. 성인 출현 성수라 부귀영화 아닐손가. 진짜 평안한 금골 진안일세 구리골이 아니로소이다'

 본래 안천은 안자천이고, 정천은 정자천 주천은 주자천이다. 안천 정천 주천이 합수하여 용담이 된다는 것은 유교 현인들인  안자(顔子, 安廻), 주자(朱子, 朱熹), 정자(程子,  程伊川)를 거쳐 성인이 출현한다는 것이며, 부귀를 겸한 ‘진짜(鎭) 평안(安)한 세상을 이룬다’는, 진안의 지명풀이는 신비 바로 그 자체다.

 진안 옥녀봉 중턱에 자리 잡은  부귀면 황금리 가치(歌峙)마을은 지금으로 부터 약 3백년전에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옛날 옥녀라는 선녀가 노래를 부르며 이 고개를 넘었다 하여 일명 ‘노래재’라고 불렀다. 지금도 일반적으로는 모두 ‘노래재’라고 부르고 있으나 글자붙임으로 해서 ‘가치(歌峙)’로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섬진강은 진안군에서 시작, 전남을 거쳐 경남 하동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고려시대 1385년,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만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한다. 그 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했다고 한다.

 충견 이야기는 어느 나라에나 있다. 임실군의 오수(獒樹)의 ‘오(獒)’자는 개의 이야기에서 생겨난 땅이름을 암시하고 있다.
시장에서 돌아오는 도중 만취한 주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개로부터 비롯된다. 개의 시체를 그 자리에 고이 묻어주고, 자기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무덤가에 꽂아주고 후일의 표적으로 했다고 한다.

 전주 마당재는 고개가 마당처럼 넓어서 마당재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에서 고려시대에는 야단이 설치되고 법석이 열렸다고 한다. 구 전주상업고등학교 교정 주변을 가리켜 야단법석(野壇法席)자리였기 때문이다.

임실군 성수면 오봉리의 아침재(朝峙)는 이성계가 지리산에서 성수산 도선암(현 상이암)에 들어갈 때 아침에 넘었다고 해서 지어진 지름이다.

 임실군 성수면 왕방리(枉訪里)는 이성계가 지리산을 거쳐 도선암으로 갈 때 이곳에서 안개를 만나 헤매이면서 머물렀다 하여 생긴 이름이며, 성수면 수철리(水鐵里)는 이성계가 지리산을 거쳐서 도선암으로 갈 때 이곳에 와보니 수천리(數千里)를 걸어 왔다 하여 부른 이름이란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예언한 전북의 땅 이름

 전라감사를 역임한 이서구(李書九, 1754~ 1825). 그는 전라도에 40대 초반과 60대 후반에 걸쳐 전라감사를 2번이나 부임했던 인물이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수많은 전라감사가 다녀갔지만 이서구처럼 흥미진진한 예언을 남긴 인물은 없다.

 우선, 새만금과 관련, 이서구가 남긴 예언이 있어 눈길을 끈다. 

‘수저(水低) 30장이요, 지고(地高) 30장이 될 것이다’
 변산 앞 바다 쪽의 바닷물이 30장 밑으로 내려가고 해저의 땅이 30장 위로 올라온다는 예언이다. 30장이면 대략 90미터에 해당한다. 바닷물이 90미터 내려가고 땅이 90미터 위로 올라오면 어떻게 되는가? 이는 지각 변동을 의미한다. 서해안이 결국 융기하면서 상당부분이 육지가 된다는 예언이다.

 1820년 전라감사로 와 있던 이서구가 선운사 마애불의 감실을 열어 보았다. 감실 안에는 책이 한 권 있었는데 열어 보니 ‘이서구가 열어 본다’라는 대목이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대목은 갑자기 친 벼락에 읽어보지 못했다고 전한다.
 
 대아저수지를 품은 동성산 일대는 풍수지리상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의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이다. 이서구가 장차 수만리에 ‘물이 가득 찰’ 것이라는 예언대로 1920년 동상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음수(飮水)리와 수만(水滿)리는 말 그대로 마을에 물이 가득찼다.

 완주군 봉동하면 단연 생강이다. 이서구가 봉동에 와서 봉실산과 봉동의 들판을 보고 ‘이 산 아래에서 만인이 살 곳이며 만인의 은덕을 베풀 곳이고 만인을 구제할 약초가 자라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이후 ‘만인의 구제할 약초’로 이곳에서 ‘향내 나는 풀’ 생강이 재배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주에 가면 한벽당이 있다. 어느 날 이서구가 이 한벽당에 와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앞으로는 이 한벽루 옆으로 불말(火馬)이 지나다닐 것이다’라고 예언, 일제시대에 이르러 과연 굴이 뚫리면서 기차가 지나 다니게 됐다.

 남원 광한루에는 해태상이 있다. 애시당초 이 해태는 남원 삼거리에 있었다고 한다. 이서구가 전라감사 시절에 남원에 와서 ‘남원에 불이 많이 나는 이유는 견두산(犬頭山)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삼거리에 해태상을 세워 놓고, 산 이름을 개 견(犬)자를 써서 견두산으로 해라“는 지시를 했다. 원래 산 이름은 호두산(虎頭山)이었는데, 이서구가 현재의 견두산으로 바꾼 것이라고 한다.

 고창 구시포항이 관광 어항으로 본격 재개발된다. 군산 비응항과 비슷한 관광어항 재개발 사업으로 국,지방비 690억원과 민자 221억원 등 911억원이 투자된다. 2018년 준공 목표로 올 상반기 기본 계획을 세워 2014년 착공할 계획으로, 구시포항 일대 25만 여㎡(7만5,600여평)에 청소년수련원과 생태체험장, 해상낚시공원과 해수치료리조트 등 관광 기반시설이 조성된다. 

‘훗날 번창할 것’이란 이서구의 구시포 예언이 희망으로 자리해 다시금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