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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부고] 전주교구 김진소 대건안드레아 신부 선종

[부고] 전주교구 김진소 대건안드레아 신부 선종


천주교 전주교구 김진소 대건안드레아 신부가 선종했다. 향년 84세.
선종일: 15일 오전 6시 30분, 빈소: 중앙 주교좌성당 (☎ 063-277-1711) 전주시 팔달로 251(서노송동 639-40)
입관 예절:16일 오후 3시, 장례 미사:18일 오전 10시 30분 중앙 주교좌성당.
장지는 치명자산 성직자 묘지, 승화원 화장 후 안치. 삼우미사는 20일  오전 10시 치명자산 자비의성전, 성직자 묘역(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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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소 신부 선종 "46년 사제인생 순교자의 삶 기록에 바쳤다"

한국 가톨릭 교회사 연구의 선구자 김진소 원로 신부(호남교회사연구소 명예소장)가 15일 선종했다. 향년 84세
사제로 살아온 40년 세월 동안 39년을 한국천주교회사 연구에 오롯이 바친 천산(天山) 김신부. 
1983년 설립과 함께 29년간 맡아온 호남교회사연구소 소장직에서 지난 2012년 2월 이후에도 물러나 연구에만 몰두했다.
사제로 살아온 46년 세월을 교회사 연구에 바쳤다.
1972년 서품을 받은 그는 1970년대 초반 대건신학대학(현재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인 생각과 정서, 한국 문화로 쓰인 한국교회사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김신부는 전국을 떠돌며 자료를 수집해 1983년 호남교회사연구소를 설립했다. 
"박해를 피해 남쪽으로 피신 온 신자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전북 지역 오지들에는 이름 없는 순교자들 피가 지금도 서려 있습니다. 자기 삶도 이름도 다 버리고 살다간 그분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지역 교회사가 정리되지 않으면 한국 천주교 역사는 절름발이 통사가 됩니다"
1995년 5월 봄날에 ‘전동 성당 100년사’를 책으로 내놓았다. 교구사 연구 20년의 결실인 ‘전주교구사’를 순교자 축일인 1998년 9월 20일에 맞춰 그들 무덤과 제대에 제물로 바쳤다.
 2006년에 또 다른 걸음을 내쳤다. 고려대 조광 교수와 전주대 변주승 교수 등과 교감하며 사단법인 한국고전문화연구원을 연구소 옆에 냈다.
김신부는 한국고전문화원 학자들과 함께 수백 권에 이르는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 '추안급국안(推案及鞠案)' 등 신문과 재판기록들을 국역했다. 또, 20~30권 분량 '포도청등록(捕盜廳謄錄)'도 국역을 마쳤다.
1만쪽 분량에 각주만 3,000개 넘게 달린 '전주교구사'로 인해 1999년 제3회 가톨릭학술상을 받았다.
저술과 연구만이 아니다. 
김신부는 천호성지 순교자 유해발굴 작업과 전주교구 순교자 5인에 대한 시복시성 청원을 주도했다.
1983년엔 호남교회사연구소를 설립하고, 기념사업으로 천호성지에서 순교자 유해 12구 유해발굴작업을 벌였다. 전주교구 5인 순교자 시복시성 청원서 발송(1989년), 고군산열도 학술조사(1990년), 치명자산 유항검 가족 7인묘 시굴 주관(1993년) 등도 잊을 수 없다.
 지도와 고문서, 나침반을 들고 전국을 떠돌았다. 변고도 많았다. 교통사고도 크게 당했고, 심장질환과 뇌졸중, 결장암 투병도 했다.
 1973년인가 정읍 대숲골 공소에서 '보세만민가(保世萬民歌)'를 찾아냈던 기억은 잊히지 않았다. 당시 신자들 사고와 생활이 기록되어 있는 한국판 시편이었기 때문이다.
1938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난 김 신부는 공대를 다니다 신학교에 입학했다. 신부로서 첫 부임지가 그의 운명을 바꿨다. 임실·순창·남원 본당 세 곳을 담당하는 일이었다.
본당 이외 공소는 수십 곳이었다. 당시 사제가 부족했기 때문에 김신부는 거리가 떨어져 있는 세 곳을 돌아다니며 사목활동을 해야 했다. 
그때 김신부는 임실에서 순창으로 혼인미사를 집전하러 가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나흘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난 그는 새로운 생명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갚는 방법으로 불모지에서 교회사 연구를 시작했다.
"순교자들 영성은 한국인 얼과 혼으로 다시 쓰여야 합니다. 천주교의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천주교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순교자들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당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유교문화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천주교를 이해했고 복음화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는 일은 '한국의 천주교'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1973년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2개월간 치료를 받고, 1980년에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수개월을 병상에 머무는 사무친 병고를 겪어야 했다.  1999년에 대상 포진을 앓고, 2000년부터 2년간 뇌경색을, 2005년에는 심장수술을, 그리고 2006년에는 결장암 수술을 받았다. 
"1791년 한국 최초 순교자인 윤지충이 처형됐을 때 정조는 '고산 윤선도 후손을 내 손으로 죽였구나' 하고 통탄합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초기 천주교는 명문가 출신 남인 유학자들에 의해 학문으로서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성직자 한 명 없이 문서와 연구를 통해 천주교가 뿌리내린 것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사는 반드시 연구되고 기록되어야 합니다"
저서 '사색의 오솔길'은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삼아 쉽게 접할 수 있는 일상적인 주제들을 심도 있게 사색하여 풀어낸 책이다. 4ㆍ19혁명의 정신에 대한 찬양, 현실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성찰, 결혼생활에서 사랑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 나를 비운 것보다 더 큰 만족과 힘을 주는 예술 등 싱싱한 이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들로 채워져 있다.
수 많은 병마 등과 싸워온 인고의 세월을 마음으로 읽어가던 그는 완주군 천호성지 마을에 머물고 있으면서 입버릇처럼 "책상에서 죽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이종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