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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97> 전주 한옥마을 ‘지족헌(知足軒)' 담장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97> 전주 한옥마을 ‘지족헌(知足軒)' 담장

전주 한옥마을 ‘지족헌(知足軒)'은 김용무 전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이 살고 있는 살림집이다. 

김 전 이사장은 ‘욕심을 내지 않고 모든 일에 만족하면서 살고 싶다(소욕지족, 小欲知足)’는 좌우명으로 스스로의 당호를 지었다고 한다.

지족헌(知足軒) 

기린봉 토해낸 달
조선왕조 발상지
자만동에 자리한 지족헌

묵향의 검은 기와지붕
나지막한 황토 담
주인의 여유로운 마음이리라

천년을 산다는 소나무
두꺼비 바위의 넉넉함
오죽 같은 선비의 지조

마당 안 바닥의 덮개석
여백으로 텅 빈 정원
무욕의 파장을 음미하리라.

바람따라 구름따라
자연과 벗 삼아
독서삼매경에 빠지며

분별심을 여의고
원융무애의 경지로
주어진 소임을 다 이루리라.

족한 줄 알고 사는 세상
과거 현재 미래생에
깨달음의 지혜를 얻으며

염화시중의 미소로
무소의 걸음으로
해탈의 노래를 부르리라.

知足軒

麒麟吐月滋滿座
黑瓦低垣露餘心
松壽蝦岩貴竹志
盤石空園波長吟

與風雲讀書三昧
離分別圓融遂任
知足天三生得智
微笑牛步解脫音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족(知足)'이다. 자세히는 '소욕지족(少欲知足)', 곧 욕망을 덜고 과분한 탐욕을 일으키지 않는 만족이요. 

수분지족(守分知足) 곧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기에, 더없이 수지(受持)해야 할 덕목이다.

'소욕(少欲)’이란 아직 얻지 못한 것에 대해 과분한 욕심이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며, ‘지족(知足)’이란 이미 가진 것은 적을지라도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평상심이다.

명심보감 안분편(安分篇)에도 만족을 말한다.

'만족할 줄을 알아 늘 만족해하면, 죽을 때까지 욕되지 않을 것이요, 멈출 줄 알아 늘 적당한 선에서 멈추면, 죽을 때까지 부끄러움이 없으리라(知足常足이면 終身不辱하고 知止常止면 終身無恥니라)'

  ‘지족헌’은 1935년 김제 백산에 지어진 일자 한옥을 2011년 생활공간 확보를 위해 기역자 한옥으로 변화를 주어 이축했다.

담은 나지막하고, 지붕은 머리를 잘 빗어 올린 상투를 연상케 한다. 몸을 낮춰서 들어가는 대문에서 머리를 숙이는 겸손을 익히며, 뜰 안의 텅 빈 모습은 공(空)을 느끼게 한다. 

최인호가 물었다. "행복이 시작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법정이 답했다.'소욕지족(小欲知足), 작은 것을 갖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알면, 행복을 보는 눈이 열리겠지요. 일상적이고 지극히 사소한 일에 행복의 씨앗이 들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불가의 수행자와 가톨릭 신자가 마주 앉았지만 둘의 이야기는 결국 하나의 길로 합쳐졌다.

 "모든 것은 받아들이기에 따라 행복이 될 수도 있고 고통이 될 수도 있다”는 법정의 말을 시작으로 대화는 사랑, 가족, 자아, 진리, 삶의 자세, 시대정신, 참 지식, 고독, 베풂, 죽음으로 이어진다.

법정스님은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라는 수필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왔으니 가난한들 무슨 손해가 있으며, 죽을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으니 부유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중략) 똑같은 조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삶의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근심 걱정의 원인으로 본다. 소욕지족(小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있다”

고 하면서 작은 것에 만족하는 생활이 곧 행복이라고 했다.

이 집엔 법정스님의 '지족천(知足天)'의 세계 그대로를 드러낸다. 

푸른 솔에서 십장생의 무병장수, 두꺼비 바위에서 넉넉함, 오죽에서 선비의 지조를 느낄 수 있다는 이춘구 전 언론인의 설명이다.

만성동 김해김씨 종가 마을에서 옮겨 심은 백년이 넘은 외줄기의 개나리도 인상적이다. 양택명당으로서 지녀야 할 것을 다 갖추었다.

 ‘지족헌’ 당주 김해김씨의 내력 또한 놓칠 수 없다.

 조선시대 사초문제로 화를 입은 김일손 선생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김이사장의 조상인 삼족당 김대유 선생은 그때 경상도 청도로 이거, 학문에 정진했으며, 그 뒤 후손이 남원 보절로 또다시 전주 만성동으로 옮겨 300년 동안 살게 됐다고 한다.

김 전 이사장의 아버지는 1927년 전주고보에 다니면서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우리 민족을 무시하는 등 교육자답지 않은 언행을 일삼은 일본인 교장을 교문 밖으로 쫓아 낸 뒤 불온학생으로 지목돼 제적을 당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내력은 뿌리 깊은 선비정신의 발현이 아닐까,

 ‘대학(大學)’의 첫머리에는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바로 지선(至善)이 있는 곳(止者 所當止之地 卽至善之所在也)’이라 하면서 지지(知止)의 효과를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그칠 데를 안 뒤에(知止) 마음이 안정(定)하게 되고, 마음이 안정되면 고요(靜)해지고, 고요해지면 편안(安)하고, 편안하면 사려(慮)깊게 되고, 사려 깊으면 목표를 달성(得)하게 된다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고 했다.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할 때, 제동장치 없는 자동차처럼 멈출 줄 모르고 자기만족에 도취되어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려고 한다. 

때론 하던 일을 멈추고 자기를 돌아보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그것이 하고자하는 일의 성취를 앞당긴다.

 그리고 항상 더불어 살면서, 남을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分數)를 지킬 것을 공자는 말하고 있다(子曰 不在其位 不謀其政).

'중아함경' 사주품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묘한 보배가 비처럼 내려도 욕심 많은 자는 만족하지 않구나(天雨妙珍寶 欲者無厭足).” 그러면서 “비록 황금을 쌓아 산과 같게 한들 어느 한사람도 만족하게 할 수 없다(若有得金積 猶如大雪山 一一無有足)”

끝없는 욕심으로 독차지 하려는 중생심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혼자서 다 가지려고 애쓰기보다 나누어서 서로 이롭고자 할 것이다. 물질이란 상황에 맞게끔 썼을 때 그 가치가 제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작용(作用)하였을 때 귀천(貴賤)이 정해지는 것은 아닐런지.

만약 그것을 모르면 독점하려고만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여 타인에게 베풀지 않으면서 탐욕으로 만족을 모르는 간탐(慳貪)도 같은 맥락이다. 이 부분은 소유와 분배의 문제로 비칠 수도 있으나, 여기서는 욕심의 양상을 말한다.

재물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다. 다만 얻는 방법과 사용에 따라 고통과 안온으로 나눠질 뿐이다.

최근들어 이택구화가가 '지족헌'의 돌담에 지화자를 힘차게 외치면서 작업을 했다.

돌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돌은 작은 돌을 품고 있고 작은 돌은 큰 돌에 의지하며, 둥근 돌은 모난 돌을 감싸고 모난 돌은 둥근 돌의 틈새를 메워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다. 

개울이나 밭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막돌로 쌓은 돌담이 꼭 살아있는 인격체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서로 돕고 의지하며 오랜 세월을 지탱해온 돌담이 아옹다옹 사는 우리네 사람들에게 오히려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 준다.

작가는 내달리던 신명, 덧쌓은 세월 숱한 첨삭을 거듭하며,  한 편의 시라도 옳게 읊고픈 시어들을 간추려 보았다. 바람이 불 때면 서로 팔을 걷고 덩실덩실 어깨춤이라도 추는 듯하다. 

사람마다 왜 틈이 없고 빈자리가 없겠는가마는 그 틈새와 빈구석이 오랜 관계를 유지시키듯이 맞붙은 듯 어긋난 돌들의 틈새가 오히려 바람과 세월의 힘을 견디는 유연한 장력이 된다.

돌담을 쌓을 만한 능력도 없고 기회도 없지만 가끔은 무너진 돌담을 고쳐 쌓아야 할 일이 생긴다. 그럴 때면 제법 익숙한 돌챙이처럼 돌 모양을 가늠하며 이리저리 꿰맞춰 본다. 

시나브로, 담 위에 작은 체험의 몸부림을 엮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움이 돋아나고  꽃이 피는 고목의 향기를 흩날리며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거듭 살아난다.

담장에 등장하는 소녀들의 구김살 없는 신명이 압권이다. 긍정의 생각으로 즐거워서  갖는 강강술래 같은 춤사위가 '생놀이'로 비쳐진다.

버선코마냥 끝이 살짝 올라간 한옥집 지붕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섰고 아궁이에 불 지핀 굴뚝에선 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자전거를 타고 쌩쌩 겨울을 가르는 아이들의 낭창한 웃음소리와 전주천과 나무 사이를 오가는 새들의 유쾌한 지저귐에 한옥마을은 생동감이 넘쳐흐른다.

볕이 어찌나 포근한지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 있는 온기에 얼었던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담을 타고 시원한 바람이 넘나든다.

한옥마을을 찾은 이방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바람이 말한다. '괜찮아, 조금 느려도 괜찮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