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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89> 창덕궁 기오헌과 임실 양요정



창덕궁 기오헌(寄傲軒)은 ‘궁궐지’에 의두합(倚斗閤)이라고 나오는 건물이다. 의두합은 수많은 책을 비치하고 독서하던 곳이다.

‘궁궐지에 따르면 ’영화당 북쪽에 있으며 예전에 독서처가 있던 자리인데 1827(순조 27)년에 익종이 춘저(春邸)에 있을 때 고쳐 지었다’고 했다.

‘기오(寄傲)’는 ‘거침없이 호방한 마음을 기탁한다’는 뜻이다.

원래 동진의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중 ‘남쪽 창에 기대어 호방함을 부려 보니(寄傲), 좁아터진 집이지만 편안함을 알겠노라’는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원래 이름이었던 의두합과 기상(氣像)이 서로 통하는 명칭이다.

도연명은 태어나고 살아온 부패와 모순투성이의 세상을 피해 숨기보다는, 한 걸음 빗겨나 맑은 아침, 홀로 산책을 하거나 밭가에 지팡이를 꽂아 두고 잡초를 뽑으며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팽택현령으로 재직하던 중, 감독관에게 굽실거려야 할 상황이 되자 “내 어찌 쌀 5말을 위해 어린 아이에게 허리를 굽히겠는가”라는 말을 남기고 부임 80일 만에 관직을 벗어던졌다.

이태백은 스스로 술의 신이라 자처하며 천자가 불러도 곁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적당한 때 그만두고 낙향하는 귀거래는 벼슬한 사람의 관행이었다.

고 노무현 대통령과 워싱턴이 귀거래했고, 제퍼슨이 고향의 오크나무 밑에 하얀 집을 짓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누구에게나 삶은 힘겹기만 하지만 도시에서의 삶은 더 고달프기만 하다.

입시전쟁을 넘으면 취업전쟁이고, 한숨 돌리는 듯싶으면 생활전쟁이다. 산골마을로 돌아간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늦추어 새로움을 채우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현장에서 은퇴한 선배와의 자리에서 일어서기는 참 힘들기만 하다.

하시는 말씀 다 듣고, 따라주시는 술잔을 다 받는 것 말고는 해드릴 게 마땅히 없으니,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읊조리다 보면 밤은 왜 그토록 시리도록 차갑기만 하며, 어찌 짧기만 한가.

임실 양요정(兩樂亭,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전북 문화재자료 제137호)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여러 점 있다.

도연명이 지금까지의 관리 생활이 마음의 형역(形役, 육체의 노예)으로 있었던 것을 반성하고 자연과 일체가 되는 생활 속에서만이 진정한 인생의 기쁨이 있다고 주장한 것 같은 메시지를 담은 셈이다.

양요정은 임진왜란 때 낙향한 충현공 양요당 최응숙(崔應淑)이 섬진강변에 세웠다.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의 '樂(요)' 2자를 따서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논어(論語) 옹야편(翁也篇) 21장에 나온다.

'공자(孔子)가 말했다[子曰].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智者動], 어진 자는 고요하다[仁者靜].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智者樂], 어진 자는 오래산다[仁者壽]'

물이 항상 변화하고 움직이면서도 두루 흘러 막힘이 없는 모습이, 마치 지혜로운 자가 사물의 변화와 사리의 막힌 곳 속에서, 그 궁극의 도리를 찾아내고, 사리를 풀어내어, 그것을 즐기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요, 산이 온갖 것을 그 속에 안고서 묵묵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어진 자가 인(仁)을 마음 속에 안고서, 그것에 안주하고, 자기 밖의 사물과 갈등함이 없이 장수하는 것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여기에서 나온 성어를 간략히 줄여 '요산요수(樂山樂水)', '인산지수(仁山智水)'라고도 한다.

공자의 말은, 지혜로운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과 어진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행동 경향을 설명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식별력이 높다.

자신과 맺어지는 인간 관계에 관심이 많아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두루 흘러 맺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즐기기를 좋아한다.

반면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하고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그래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늘 자신과 하늘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위에다 두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이 적어 한 곳에 가만 있기를 좋아하여 고요한 성격이 많다.

또,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산다. 즉, 지혜있는 사람의 마음은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고 넓다. 그래서 흐르는 물처럼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

반면에 어진 사람이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고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지혜있는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하였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智者樂水),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仁者樂山).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과 등산을 즐기는 사람이 서로 지혜롭다, 어질다며 자랑하는 문구다. 최고 권위의 공자(孔子)의 말씀이니 더욱 양보 않는다.

즐길 '락(樂)' 자는 독음이 세 가지 모두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좋아하다는 뜻엔 요, 노래나 음악, 연주한다는 뜻으로는 악이다.

산과 물은 좋은 이웃이란 말이 있듯 산에서 발원하는 물이 서로 다툼을 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다. 십리나 뻗친 계곡과 산 십리계산(十里溪山)이나 많은 내와 겹겹이 솟은 산 만수천산(萬水千山)과 같이 따르는 말이 많고 고산유수(高山流水)는 뜻이 높고 청아한 지기(知己)를 가리킨다.

‘양요정’ 편액 맨 앞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가마에서 내려 고향에 오는 내용의 그림을 비롯, 세 명의 노인이 바둑을 두는 장면, 산보를 하는 그림, 자연에 푹빠진 장면 등 4-5점의 그림이 있다. 

화조도는 활짝 핀 백색의 모란에 나비와 새가 날아드는 그림으로, 창녕 관룡사의 약사전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상욕속빈'(喪欲速貧)이란 말은 유자가 공자의 제자 증자에게 벼슬을 그만뒀을 때의 처신에 대해 묻자 증자가 '공직을 떠나면 빨리 가난해지 것을 바라는 것이 옳다'고 답했다는 고사에서 나왔다.

예기단궁(禮器檀弓)엔 ‘有子問於曾子曰(유자문어증자왈) : 유자가 증자에게 물었다.

問喪於夫子乎(문상어부자호) : “벼슬하다가 지위를 잃어버린 일에 대하여 선생님에게 들은 것이 있는가?”

曰聞之矣(왈문지의) : 대답하여 말하기를 “들었다. 喪欲速貧(상욕속빈) : 벼슬하다가 지위를 잃으면 속히 가난해지는 것이 좋고, 死欲速朽(사욕속후) : 사람이 죽으면 속히 썩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有子曰(유자왈) : 유자가 말했다. 是非君子之言也(시비군자지언야) : “그것은 군자의 말씀이 아니다"

녹을 잃고서도 가난하지 않는 것은 관직에 있을 때 축재를 한 까닭이며 그 재물은 부정한 재물인 일이 적지 않기 때문에 남에게 이런 저런 의심을 받는 것 보다는 가난한 것이 훨씬 좋다.

또 매장한 시체는 속히 썪어 서 땅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다

   예컨대 ‘상욕속빈’(喪欲速貧·잃으면 빨리 가난해지길 바란다)을 설명하며 고위 법관이 로펌으로 가는, 혹은 로펌에 있다가 다시 공직에 나서는 세태를 비판하기도 한다.

벼슬하다가 지위를 잃으면 속히 가난해지는 것이 좋고, 사람이 죽으면 속히 썩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이 말에 공감을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