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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옛 사진으로 본 한옥마을

전주 어진박물관이 2019년부터 2020년 까지 전시한  ‘옛 사진으로 본 한옥마을 ’ 자료를 보고 있다.

사진은 조선말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옥마을의 풍경을 담은 흑백사진으로 모두 50여 점이다.

전시 구성은 1부 한옥마을의 문화유산, 2부 한옥마을의 삶으로 짜여 있다.

1부는 경기전, 오목대와 이목대, 전주향교, 풍남문, 전동성당 등이다. 2부는 한옥마을 전경과 골목길 풍경, 전주천에서의 어린이 생활상, 한벽굴과 철로, 남문시장 등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전주한옥마을에 포토존이 따로 설치돼 있지만, 이전에는 사람들이 사진 촬영을 위해 즐겨찾는 장소들이 있었다.

조선 태조 어진이 모셔진 경기전, 태조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뒤 잔치를 벌였다는 오목대, 전주향교, 전라선 선로가 옮겨지기 전에 운행했던 한벽굴과 철로 등이 즐겨찾던 포토존이었다. 이들 장소에서 저마다 다양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다.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오목대 아래 철로를 달리는 증기기관차.  1950년대에 오목교에서 시내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으로 보기 드문 사진이다.

1930년대 오목대에서 전동성당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에는 성심여고 일대가 지금과 달리 텅 비어있어 한옥마을이 형성되기 이전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 발행한 '전주고 100년사' 속의 사진 왼편과 오른편의 모습도 그랬다.

오목대 사진 중에는 미끄럼틀과 시소가 설치돼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전주천에 있는 정자인 한벽당과 전라선이 지나는 한벽굴의 모습도 보인다.

1970년대 전주 교동 한옥마을 골목길 모습엔 교동방앗간과 교동고기집이 보인다.

한옥마을 거리와 골목길 모습은 한옥마을 생활상을 보여주는 귀한 사진들이다.

골목길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모습, 담벼락 밑에 모여 앉아 뭔가를 하고 있는 사진 등은 지나간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한벽당 아래 전주천에 한지통을 놓고 종이를 뜨는 장면은 전주한지의 역사를 말해준다.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 전주천 오모가리탕집과 헤엄치며 노는 아이들 모습은 전주사람들의 여름날을 담았다. 한옥마을 주변에 위치한 풍남문과 남문시장 풍경을 담은 사진도 보인다.

전주천 주변 유명한 민물매운탕인 오모가리탕 집의 모습이 정겹다. 현재 전주전통문화관이 자리한 부근은 전북 지역 최초의 공동주택 아파트가 자리했으며, 최학자(금재 최병심)선생의 집터가 있었다.

1970년대 한옥마을 골목길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과 1972년 한옥마을 거리의 모습엔 멀리 전동성당이 보인다.

1968년 한벽당 아래 전주천에서 통을 놓고 한지를 뜨는 장면은 아주 이색적이다.

한벽당에서 내려오면 한벽굴이 나온다.
1931년부터 1981년까지 전라선 열차가 달렸던 터널이다.
일제 강점기 역사의 아픔이 담긴 철길이 사라지고 이제는 유명 관광지로 변한 터널의 겨울 풍경은 또 다른 멋을 선사한다.
신리에서 나무를 해다가 서학동에서 파는 나무꾼도 더러 있었다. 한벽굴은 그들이 다니던 통로이기도 했다.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옥류마을 전망대를 거쳐 하산하면 한벽굴(한벽터널)이 나온다.

일제강점기 일본이 전주팔경의 하나였던 한벽당 아래를 뚫어 낸 전라선 터널이다.

‘잊기는커녕 틈만 나면 나는 철길 동네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곤 했다. 멀리는 기린봉이 보이고, 오목대까지 두 줄로 뻗어 있던 레일 위로는 햇살이 눈부시게 반짝이며 미끄러지곤 했었다'

1931년 개통 후 이리역과 남원을 오가며 한벽굴을 지나던 1970~80년대 철도 풍경은 전주 출신 소설가 양귀자의 단편소설 ‘한계령’에 등장하기도 한다.

세월이 흘러 철도는 사라지고 전주 시민의 산책로가 된 지 오래이다.

한벽굴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남주혁·김태리 주연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엔딩 장면의 배경으로 나오면서 인근 서학동 예술마을, 전주수목원 등과 함께 젊은층의 핫플이 됐다. 한벽굴을 빠져나와 오른쪽 전주천 산책로로 진입하면 한벽당과 만난다.

한벽당 아래의 빨래터에 온 적이 있었다.
광목천 홑청 같은 것을 빨면 삶아주는 직업도 있었다. 빨래를 자갈밭에 널어 말리던 풍경도 떠오른다.
그렇듯 전주 사람들도 전주천의 빨래터를 이용했다. 전주 십경의 하나였던 남천표모(南川漂母)는 온데간데 없지만, 여전히 전주천은 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남천표모(南川漂母)은 한벽당을 치도 돈 남천과 다가산을 끼도 북으로 달리는 서천 강변가에 앉아 빨래하는 아낙네를 말한다.

옛날 빨래터의 흔적은 없어졌지만, 천변에 천막을 친 평상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때 오모가리가 물고기 이름이 아닌, 오목한 뚝배기 이름인 것을 알았다. 전주팔미 중의 하나라는 것도.

여름철에 내 생일이 있기에 시원한 나들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모가리탕 집이 많이 사라지고 한두 집이 명맥만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물고기를 잡을 수도 없다.

예전에는 실내수영장이 없어 냇가나 저수지 등지에서 멱 감았다.멱 감다란 말은 충청도 사투리로 목욕탕이 아닌 냇물에서 물장구치며 목욕하는 것을 말한다.
물안경이나 수영팬티 그리고 귀마개 등 장비도 없이 마냥 물속으로 뛰어 들었던 것.

여름 방학 때는 시골 아이들은 쑥으로 귀 막고 옷을 홀딱 벗어 던진채 그냥 퐁당 물속으로 들어가 멱 감았다.자연히 얼굴과 온 몸은 새까맣게 탔다.
전주에는 40년 전쯤 덕진 연못 인근에 야외 풀장이 개설됐다.시내버스 타고 전주 인근 봉동 마그네다리, 신리 각시바위, 한벽당 등을 가지 않아도 됐다.

풀장에서 노는 것은 흐르는 냇가에서 수영하는 것과 맛이 달랐다.햇볕에서 수영하다 지치면 비치 파라솔 밑에서 쉬기도 했지만 소독약이 너무 진해 오래할 수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시설이라서 아이들한테는 최고 인기였다.

전주천은 구불구불 돌아 내리는 물굽이마다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한벽루에서 상류로 올라가면 병풍바위가 있고, 더 올라가면 애기바위, 그 위로는 서방바위와 각시바위가 있어 여름철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원 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과거엔 한벽당 아래서 목욕을 다 했다. 그때는 여름철 되면 한벽당이 목욕탕, 해수욕장이었다. 당시에는 목욕을 추석하고 설날밖에 안했다. 한집에 여러 집이 세들어 살던 시절이니까, 마당에 수도시설이 있긴 하지만, 목욕을 거기서 할 수가 없었다. 등목이나 허지. 짓궂은 놈들은 여자들 목욕하는데 꾸역꾸역 가다가 쫓겨나오기도 하고 그랬다.

전주천에 해가 지면 수백 명의 욕객들로 남녀혼합 목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전주경찰서는 전주천에서 주간 나체 목욕을 하면 적발하여 법적 조치를 할 것이니 각시바위 부근에서 하여줄 것을 당부하고 있다.(전북일보 1957년 7월 21일, 8월 21일 사회면 기사 등)

물만 깨끗한 게 아니었다. 다 알다시피 전주는 북쪽으로 터진 들판을 빼 놓고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분지다. 노송동 뒤쪽으로는 기린봉이 뾰족하게 솟아있고, 그 산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중바위, 거기서 전주천을 건너 남고산성과 고덕산, 또 맞은 편에는 완산칠봉과 다가공원이 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30분이면 구이저수지를 품에 안고 있는 모악산이 자태를 뽐낸다.

남천교 왼편에 전주한벽문화관과 오모가리탕집 몇곳이
보인다. 오모가리탕집은 손으로 꼽을 정도로 적지만 크게 낯설지 않다. 오모가리란 본래 뚝배기를 일컫는 전주지역의 토속어로, 남천의 모래무지조림을 완산8진미로 꼽았다.

‘염라대왕께서 “남천 모자(모래무지) 먹어봤냐?” 한다는디’ ‘호남무가(湖南巫歌)’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이 죽어 염라대왕 앞에 서면 천당으로 보낼지, 지옥으로 보낼지를 심판할 때 팔도별식 33가지를 먹어 보았느냐고 물어본다. 이를 먹어 보았다는 사람은 천당으로 보내고 못 먹어 보았다는 사람은 지옥으로 떠밀어 버리는데, 그 팔도별식 33가지 중에 “남천 모자 먹어 봤냐?’ 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남천이란 전주천이고, 모자는 모래무지를 가리키는 말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염라대왕의 심판을 거쳐 천당 가기는 애시당초 글렀다 싶었는데, 요즈음 전주천엔 모래무지가 엄청 많아졌으니 참으로 다행스럽고 반갑다.

최인수 수채화가와 이성재  서양화가는 “남천의 맑은 물에서 잡아 올린 피래미며 모래무지 참게와 함께 시래기 듬뿍 넣고 팔팔 끓인 함별땅(햄별땅) 오모가리는 수양버들 늘어진 이곳 남천 제방 평상위에서 먹어야 제 맛이 났죠. 우리는 어려서 한벽당을 함별땅이라 불렀다”고 말한다.

전주 최부잣집 유견희 모니카 할머니는 문을 열면 오목대가 궁궐처럼 보이고, 과거엔 큰 빨래를 하러 남천 앞에 나갔다고 했다.

한옥마을을 찾은 날이면 청연루가 보이는 전주천에서 일몰을 맞이하는 때가 종종 있다. 전주천의 햇살은 물 위에 물감처럼 번져가고, 낙조는 이에질세라 시시각각 색깔과 파장을 달리하며 주변을 온통 붉게 물들인다. 전주의 어제와 오늘, 내일을 보고 싶은 날이면 남천교로 홀홀단신 떠나야 한다.

지금, 한벽교 아래 터널은 시민들의 아늑한 휴식공간으로 탈바꿈 됐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초록으로 물든 거리를 걷노라면 전주천의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이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대도시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시냇물 중 가운데 전주천 만큼 맑은 물빛을 간직한 곳이 또 어디 있을라구.

계절이 바뀌는 창변(窓邊)에서 문득, 전주 천변의 오모가리탕집 평상 위로 당신을 기꺼이 초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