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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전라감영 음식 연구해야

굴곡진 세월을 거치며 터만 남았던 전라감영의 동편 부지가 3년여의 공사를 마치고 2020년 10월 7일 문을 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소실되었던 44채 중 7채의 건물을 복원한 것으로, 1951년 화재로 인해 선화당이 유실된 이후 67년 만의 부활이었다. 전라감영은 조선시대 지금의 전북, 전남, 광주는 물론이고 바다 건너 제주까지 다스린 전라감사가 지내던 곳이다. 부지는 옛 전북도청사 자리다. 그저 옛 모습을 박제한 문화재가 아니라, 시민이 공감하며 동참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조성했다.
전라감영을 드나드는 세 번째 관문인 내삼문을 열고 들어가 찬찬히 둘러보자. 내삼문에서 뻗은 길을 쭉 걸어가면 선화당에 다다른다. 이곳은 전라감사가 도정을 수행하던 집무실로, 전라감영의 중심 건물이다. 웅장한 외관과 우아한 곡선의 팔작지붕이 돋보이며, 내부에는 미국 공사 대리 ‘조지 클레이튼 포크’ 중위가 찍은 사진을 참고하여 제작한 병풍형 가리개와 기물 등으로 장식했다. 또, 디지털 병풍과 와이드 프로젝트 비전을 설치해 감사의 지방 통치와 감영의 조직 및 문화에 관한 내용을 상영한다. 선화당 동쪽에는 감사가 민정과 풍속을 살피던 누각인 관풍각이 들어섰다. 수령 200년의 회화나무는 선화당 북쪽에 우뚝 솟아 새 모습을 갖춘 감영을 바라보고 있다. 현재 전라감영 활용은 잘 하고 있는가?
전라감사 교대식은 전라감사를 지낸 이석표의 '호남일기(湖南日記)'에 기록된 내용을 토대로 재현되고 있다. 이 일기엔 몸이 아파 나박김치를 먹은 이석표 전라감사의 기사가 보인다. 전주 추천대에서 미음을 먹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전라감사가 음식을 먹었다는 첫 기록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본보가 26일자로 발굴 처음으로 공개한 내용이다.
“잡수시오 이 술 한잔 한무제 이슬받은 이 술 한잔 천만년 잡수시오 잡수시오 술이 아니라 승로반(承露盤:이슬 받는 그릇)의 것이오니 잡수시면 장수하오니라” 그리고 식사가 끝난 후, 술상을 치우자 기생 한 명이 문간으로 나서더니 다른 소녀들과 함께 길고 새된 목소리로 외쳤다. “다 잡쉈소(Ta-chap-susso)!” 외침소리는 관아의 남자들이 합창으로 받아 전해졌다. 포크는 이 모든 것에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즉, 1884년 11월 10일~12일 2박 3일간의 전라감영 도시 전주를 방문해 다양한 경험을 한 포크의 한마디 인상은 ‘경외심’이었다.이 때 전라감사는 김성근이었다. 조선 후기 문인화가인 이하곤(1677∼1724)은 전라관찰사가 먹었던 밥상을 ‘음식에 극진히 정성을 다해 바르고 훌륭하다’는 뜻의 ‘찬품극정결(饌品極精潔)’이라 기록했다.음식에 극진히 정성을 다해 바르고 훌륭하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는 1722년 10월 29일 전주에서 전라감사 황이장(1653~1728, 1722년 9월~1724년 1월 재임)으로부터 저녁에 술과 안주를 대접받았을 때 나온 찬품을 대하곤 이처럼 말했다.
이상황의 '호남일기' , 이위의 '비목재일기(卑牧齋日記)' 등 번역이 안된 책이 많다. 이들 책을 한글로 번역하기 바란다. 기존에 번역된 포크의 일기, 서유구의 '완영일록(完營日錄)', 유희춘(眉巖日記)등은 잘 활용하고 있는가. 전주시는 서유구 전라감사가 기록한 완영일록과 유희춘의 미암일기 등 고문헌, 1884년 주한미국공사관 대리공사였던 조지 클레이튼 포크의 일기장 등을 토대로 조선시대 전라도 식재료와 조리법을 연구해 관찰사 밥상을 복원했다.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130년 전 전라감영에서 제공했던 관찰사 밥상을 재현한 시는 이 밥상을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관광 상품으로 만들고자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선보인다는 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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