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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50> '537살'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50> '537살'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가 국가지정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 됐다.

군산시는 하제마을 팽나무는 역사적 가치와 고유의 생활과 깊은 연관성, 우수한 규모와 아름다운 모양, 마을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자연유산이라는 점이 종합적으로 고려돼 지정 예고됐다.

군산 하제마을은 옥서면 남쪽 끝에 있는 마을로 한때 2,000여 명이 거주할 정도로 큰 마을을 이뤘지만 군사시설이 들어서면서 마을주민이 떠나 현재는 팽나무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2020년 한국임업진흥원의 수령조사 결과 537(±50)살로 측정돼 생장추로 수령을 확인한 팽나무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7.5m로 장대한 외형을 자랑하고 있으며 지난 2021년 6월 전북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국가유산청은 앞으로 30일간의 예고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이후 자연유산위원회 심의를 거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게 된다.

군산시 하제마을은 약 100년 전엔 무의인도(無衣人島)라는 이름의 섬이었다. 

일제시대 간척사업으로 육지와 연결됐고, 2006년 새만금 방조제 공사 완료로 바다와 멀어졌다. 

‘하제 팽나무’ 앞에서 군산 지역 역사·생태를 연구하는 양광희씨는 1년가량 고지도와 역사기록을 연구해 2021년 3월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이야기'를 냈다. 

이 책은 그해 6월 ‘하제 팽나무’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는 중요 근거가 됐다.

'600년 팽나무를 통해 본 하제마을 이야기'에는 평소에 찾아보기 어려운 일제강점기의 해도(海圖)나 팽나무에 얽힌 주민들의 구술담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의 피사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해 그 지역의 지형과 문화, 생활상을 조사한다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600년 팽나무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속에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군산의 아픔, 그리고 그 후 곧바로 닥쳐온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다시 한번 아픔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 마을의 비극적인 역사도 담겨 있다. 

그런데 이런 거목과 함께 살았던 마을은 황량했다. 

‘하제 팽나무’ 앞 공회당(마을회관, 이후 옥봉초등학교 선연분교)을 비롯해 가옥은 대부분 철거됐다. 포장된 빈 골목길만 덩그러니 남았다. 잡목과 잡초가 우거졌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의인도’라는 섬이던 하제가 육지에 편입된 건 1919년. 불이흥업(주)이 옥구군(나중에 군산시로 통합) 해안 지역에서 간척·개간 사업을 벌이면서다. 

이 회사는 일본 자본으로 세워졌다. 이 사업은 1923년까지 이뤄졌다. 

이렇게 조성된 2,500정보(약 2479만㎡) 규모의 ‘불이옥구농장’은 죽도록 일만 하고 약속받은 임금은 제대로 못 받은 조선인 노동자 수천 명의 한이 서린 땅이다.

하제의 전성시대는 1970년대였다. 개량조개, 명주조개로도 불리는 노랑조개 생산이 크게 늘었다. 전국 유일의 어패류 위판장이 하제에 설치되기도 했다. 조개가 얼마나 많았는지 당시 언론 기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매일 320여 척이 조업, 연간 9200여 톤의 노랑조개를 받아들이고 있다. (…) 조개껍데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포구가 메워지고 있어 조개잡이 어선들의 입출항이 점점 어렵게 됐다.”(조선일보 1977년 8월3일자)

노랑조개를 해방조개라고 불렀다. 해방되면서 갑자기 나타났다고요. 전남·충남 등지에서 일꾼이 몰려와 집집이 방 두세 칸을 세낼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마을 인구가 3,000 명이 넘어서 면 단위 인구와 비슷했다. 

팽나무와 그 뒤에 할아버지 당산, 할머니 당산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도 지내고 차례도 지냈다. 매년 정월 대보름 전후로 풍물을 치면서 집집을 방문해 곡물과 돈을 걷는 걸궁굿을 지냈어요. 이 돈으로 마을 대소사를 치렀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2000년 하제 북쪽 군산 미군기지(공군)의 탄약고가 확장됐다. 안전거리 확보 문제로 2002년 하제마을에 대한 정부(국방부)의 수용이 결정됐다.

 2006년엔 새만금방조제 물막이 공사가 완료됐다. 바다와 멀어져버린 하제항의 ‘어항 지정’이 해제됐다. 

생업을 잃은 주민들은 2009년부터 마을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664가구가 터전을 떠났다. 김중권·최이분 부부도 2017년 떠났다. 현재 하제마을에는 2가구가 철거되지 않고 남았지만, 항시 사람이 살고 있진 않다.

이에 군산시는 2022년 2월  문화재청에 ‘하제 팽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추천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을 지낸 목재조직학 권위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는 ‘하제 팽나무’에 대해 “나이로 보나 서 있는 위치로 보나 천연기념물로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지금은 쇠말뚝을 주로 쓰지만, 남부 지역 해안가에선 팽나무를 계선주(배를 묶는 기둥)로 많이 활용했어요. 나무 밑동이 꼬이고 비틀리고 울룩불룩한 건 팽나무가 고목이 되면서 곁뿌리가 굵게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나무는 더 심하게 깊은 주름이 잡혔어요. 일제강점기 간척지로 매립되기 전 바닷물이 나무 아래까지 들어올 때 (줄기가) 밧줄에 시달리다 상처가 생기고 딱지가 앉은 아픔을 수백 년 반복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죠” 

전국에 천연기념물 팽나무는 모두 세 그루다. 이 가운데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팽나무도 간척지 매립 전 배를 묶어두던 계선주 구실을 했다.

다른 지역에서 문화재로 지정된 팽나무에 비해 나무의 크기와 모양새가 더 좋고, 기상목(氣象木)과 계선주(繫船柱)의 기능을 한 나무로 알려졌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어 시는 지난 2004년 이미 보호수로 지정한 바 있다.

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하제마을 주민들이 일터를 잃고 미군기지 탄약고에 밀린 64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서 팽나무도 잘릴 위기에 처했다.

이러한 상황들이 전해져 시민단체 등이 나서서 팽나무를 지켜야 한다는 움직임을 보이면서 지난해 SNS를 통해 서명운동까지 벌였다.

이들은 지난 2010년 땅 주인이 산림청에서 국방부로 바뀌면서 미군에 공여하면 언제 잘려나갈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가 조사한 결과 팽나무가 위치해 있는 곳은 기획재정부 소유의 땅으로 나타났다.

이에 시는 기재부에 문화재 지정을 요청, 승인을 받아 이번에 전라북도 기념물 지정을 신청한 것이다.

군산시 관계자는 “지난 2019년 12월 시민의 전화로 나무의 존재를 확인한 후 1년여간의 조사를 통해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신청 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시민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지역문화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팽나무를 조사해본 결과 국방부가 아닌 기재부 소유의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 잘려나갈 염려는 없다”며 “문화재로 지정되면 기재부, 국방부 등과 협의해 군산시 소유 이전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제마을 팽나무는 명승 제113호 선유도 망주봉 일원, 천연기념물 제501호 말도 습곡구조 등과 함께 군산의 자연유산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주 변 환경정비 및 보호를 통해 사람과 자연의 어울림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만들어나가길 바란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온 경남 창원의 500년 된 팽나무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팽나무가 꿋꿋이 마을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군산시 보호수이자 전라북도 지정문화재로 지정된 덕분이었다. 

이 팽나무는 시민 수천명의 서명에 힘입어 문화재가 됐고, 현재는 이 나무를 천연기념물로 등재하기 위한 심사도 진행중이다.

군산 시민이라면 꼭 알아야 하는 우리 지역의 문화유산 이야기. 오래전에 팽나무가 우리를 지켜주었듯이, 이제는 우리가 팽나무를 지켜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