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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48> 선운사 사천왕상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48> 선운사 사천왕상

삼라만상에 내 몸을 의지하고 물 속의 하늘에 내 맘을 온전히 던지웁니다. 특히 선운사 사천왕문이 잊혀지지 않는군요.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악한 마군을 방어하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사바 세계와 정토를 구분짓고 있네요. 

동방의 지국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북방의 다문천왕 등 저마다의 권속을 거느리며 거짓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한 자아를 깨닫게 만듭니다. 

증장천왕은 용과 여의주를 들고 만물을 소생시킨다고 하며 음녀상의 형상이 있으며, 광목천왕은 악인에게 고통을 줘 구도심을 일으킨다고 하며 탐관오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탐관오리의 형벌받는 모습이 백미입니다. 죄짓지 말고 선하게 살라는 메시지에 다름 아닙니다. 

기둥을 손으로 들고 죄를 받는 비련의 여인과 대비가 되는군요. 

미망 속에 헤매는 나로부터 벗어나 온전히 참 나를 깨달아 진리와 하나가 되라는 탐관오리의 모습에 많은 생각이 오갑니다. 한편 천왕문은 이광사의 글씨입니다.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93891

고창 선운사 사천왕상을 조각한 인물을 아시나요.

 금용(金蓉) 일섭(日燮, 1900∼1975)은 전남 화순출신으로 불상·불화·단청 등을 일제 강점기부터 활동한 근대 불교미술의 선구자입니다. 

그는 1935년 김제 금산사 미륵불 조성에 참여하고 1938년 조선불교 총본산 태고사 대웅전(현 서울 조계사) 불화를 조성하는 등 30대 중반에 대규모 불사를 주도하는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의 제자 송복동은 고창 선운사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성예원의 역사를 반추하고, 또 그가 남긴 업적을 소개하고, 더 나아가 그가 남긴 유산을 모아 전시관 또는 박물관을 만들 수는 없나요. 김제는 서예로 유명하지만 불화, 불상도 못지 않다는 사실을 부디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9247#_enliple
고창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서 영광 불갑사로 옮겨진 사천왕상 보물 지정

문화재청은 사찰 입구 천왕문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국토를 수호하는 17세기 '사천왕상(四天王像)' 8건을 보물로 지정했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 예천 용문사 소조사천왕상 등 8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사천왕은 수미산(須彌山) 중턱에 살며 동서남북 네 방위에서 불국토를 지키는 수호신이다. 사찰 정문인 일주문(一柱門)과 주불전(主佛殿)인 대웅전을 연결하는 중심축에서, 사천왕상은 주불전으로 진입하기 직전인 천왕문에 배치된다. 일반적으로 갑옷을 입고 보검(寶劍) 등 지물을 들고 있으며,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려 악귀 등의 생령(生靈)으로부터 사찰을 지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동쪽은 지국천왕, 서쪽은 광목천왕, 남쪽은 증장천왕, 북쪽은 다문천왕이 지키고 있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원래 고창군 무장 소요산 연기사에서 17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연기사가 폐사되면서 설두선사(雪竇禪師)가 1876년 이곳의 사천왕상을 영광 불갑사로 옮겼다. 여러 편의 나무 조각을 접목,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고 동시에 머리카락이나 세부장식, 양감이 필요한 부분은 흙으로 정교하게 제작,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또, 17세기 전반 중량감 있는 당당한 체격을 갖춘 사천왕에 비해 균형 잡힌 장신형으로 조형감각이 변모되고, 좁고 높은 화형 보관을 쓰고 있는 등 17세기 후반의 우수한 조각적·예술적 양식을 갖고 있으며, 원형의 손상과 큰 변형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편 8건의 사천왕상은 17세기 전반 중량감 있는 당당한 체격을 갖춘 사천왕에 비해 균형 잡힌 장신형으로 조형감각이 변모되고, 좁고 높은 화형 보관을 쓰고 있는 등 17세기 후반의 우수한 조각적·예술적 양식을 갖고 있으며, 원형의 손상과 큰 변형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http://www.sjbnews.com/news/news.php?code=&number=796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