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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36> 부안 유천리와 진서리 고려청자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36>  부안 유천리와 진서리 고려청자

파도와 물고기무늬가 있는 청자 찻사발의 느낌이 참 좋다. 이름하여 '고려청자 음각 파어(波魚)무늬 찻사발'이다.
12~13세기에 만들어진 이 찻사발 안에는 물고기 2마리가 유영하고 있다.

굽은 낮고 깎음새가 단정하며, 굽안바닥까지 시유하고 백색 내화토 비짐을 받쳐 번조했다. 이 작품은 연못의 평화로운 풍광을 섬세한 양각 문양으로 처리한 뒤, 물빛같이 고운 청자유를 씌워, 마치 그릇 속에 물고기가 놀고 있는 듯한 신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늘 맑은 날 산등성이에 올라 찻사발에 한 모금 찻물을 고이면 하늘이 찻물인지, 찻물이 하늘인지 찻사발에 담긴 하늘이 호수인 양 찰랑거린다. 시나브로 하늘 속 물고기가 공기를 가르며 유유히 날아오른다.
이 찻사발은 밝고 넓어 이 여름의 더위를 몰아내는 듯 정갈하고 멋스럽다.

'고려청자 연리(連理) 무늬 꽃모양 찻사발'은 기이하다 못해 신기하다.

흑, 백, 청 3가지의 다른 흙이 만나 연리무늬
 이른 바 대리석 무늬 찻사발이 됐다.
춤추는 사람, 파도치는 해안의 기암괴석 산 같기도 하고 물 같기도 한 다채로운 무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재미진다.

이 찻사발에 차를 담아 마시면 흙과 흙의 만남을 통해 그려진 아름다운 조화로 세상사 모든 걱정 사라지고 무심해질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도 그러하면 얼마나 좋을까.

'분청사기 귀얄 무늬(文鉢) 발'도 멋스러움을 더한다.

시원스럽게 벌어진 구연에 비해 굽이 매우 작아 전체적으로 앙증맞은 느낌을 주는 곡선형 분청사기 발이다.

그릇 내면에 여러 줄의 음각 선을 두른 후, 귀얄로 무심하게 백토 분장을 했다.귀얄의 힘있고 빠른 운동감을 그 자체만으로도 경쾌하고 선명한 무늬 효과를 나타낸다. 
바탕흙의 암회청색과 백토의 흰색이 선명한 흑백 대비를 이루면서 멋스럼을 자아내고 있다.

부안군 청자박물관은 5월 17일부터 11월 30일까지 1층 기획전시실에서  ‘한국 전통 도자 찻사발, 마음을 나누는 그릇’을 갖는다.

고려시대 청자부터 근현대 도자기까지 천 년을 이어온 한국 전통의 도자 찻사발을 전시한다.

부안군 유천리와 진서리는 고려청자의 메카로 발길 닿는 곳마다 비색으로 반짝이는 고려청자 파편이 무수히 존재하는 곳이다.

부안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상감청자 조각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선보여 눈길을 끈다. 

현재 조각으로는 남아있으나 완형의 예가 전하지 않는 유일한 것들로,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풍경 등 자연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고려(918~1392)가 10세기 무렵 당시 최첨단 제품인 자기 제작에 성공한 것은 생활 문화 전반의 질적 향상을 가져온 혁신적인 계기가 됐다. 

고려인은 불과 150여 년 만에 자기 제작기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고려청자의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 이번 개편에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재인 고려청자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비색(翡色)청자란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을 띤 절정기의 고려청자를 말한다.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1091~1153)이 1123년 고려를 방문한 후 남긴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당시 고려인이 청자 종주국인 송나라 청자의 비색(祕色)과 구별하여 고려청자의 색을 비색(翡色)이라 불렀다고 기록됐으며, 서긍 역시 고려 비색청자를 극찬했다. 고려청자의 아름다운 색은 오늘날에도 감탄의 대상이다. 

월탄 박종화(1901~1981)는 그의 시 '청자부'에서 고려청자를 “가을소나기 마악 지나간 구멍 뚫린 가을하늘 한 조각”과 같다고 노래했으며, 최순우(1916~1984)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하늘빛 청자'에서 고려청자의 비색을 “비가 개고 안개가 걷히면 먼 산마루 위에 담담하고 갓맑은 하늘빛”에 비유했다. 이처럼 고려 비색청자는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널리 인식됐다.

부안군 진서리요지 5구역 발굴 조사에서 삼국시대 측구식 탄요(숯을 만드는 가마)와 고려청자가마, 유물 퇴적 구덩이가 발견됐다.

부안군과 전주대 박물관은 진서리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요지 5구역 발굴 조사에서 삼국시대 측구식 탄요, 고려청자 가마 및 유물퇴적 구덩이를 확인했다. 

진서리 요지는 일제강점기 1929년 노모리켄(野守健)에 의해 발견된 후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으며 1990년과 1993년 도로 개설 부지에 대한 일부 발굴 조사로 진서리 고려청자 가마터와 관련된 시설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가마터의 발견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마터가 있다는 것은 대량 생산을 의미하며, 또 이는 기술이 월등히 뛰어나 공납 등이 가능했음을 입증하는 자료에 틀림없다. 

조사에서 확인된 삼국시대 측구식 탄요 2기는 전체적으로 연도부, 전면작업장, 점화부, 측구, 측면작업장 등이 원형 상태로 확인됐다. 발견된 삼국시대 측구식 탄요 2기는 연도부, 전면작업장, 점화부, 측구, 측면작업장 등이 원형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현재까지 발굴된 측구식 탄요 중 가장 보존 상태가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탄요들의 조성과 운영 시기는 6~7세기로 확인됐다. 가마의 동.서쪽으로 유물퇴적구가 확인됐다.

 내부에선 갑발, 받침 등 요도구 및 요벽체편, 각종 청자 등이 출토된 가운데 조사에서 12세기 중반에서 13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접, 접시, 잔 등의 일반 기종부터 장구, 주자 등의 특수한 기종까지 다양하게 출토됐으며 철화기법의 장구 등이 출토된 것이 주목된다.

부안 유천리 요지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됐다. 1966년 국립중앙박물관이 부안 유천리 요지 12호 가마 주변에 대해 실시한 조사를 시작으로, 1997년 이후 2~7구역에 대한 시ㆍ발굴조사가 꾸준히 진행,  12세기 후반 ~ 13세기 대규모 고려청자 가마터와 관련된 건물터 등이 확인됐다.

최근 조사는 12세기 중반 ~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접, 접시, 잔 등 일반 그릇에서부터 향로, 주전자, 참외모양 병, 등 특수한 그릇 다양하게 출토됐다. 

고려 임금 명종의 무덤인 지릉(1202년)과 희종의 무덤인 석릉(1270년)에서의 출토품과 비슷한 접시 조각이 확인되었으며, 용무늬 향로 초벌 조각 등 왕실 혹은 귀족계층이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 청자도 출토됐다.

유천리 요지는 무려 150년 동안 흑백의 안료로 무늬를 새겨 넣은 상감청자가 나오는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고려 도공들이 처음 창안한 아름다운 비색 상감청자는 유일하게 부안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다. 구름이나 학, 꽃과 같은 무늬를 그려 조각칼로 파내고, 그 파낸 곳에 백토(白土)와 자토(紫土) 안료를 넣어 긁어낸 뒤 유약을 발라 구워낸다. 그러면 백토는 하얗게, 자토는 검은색으로 무늬가 나타난다. 중국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도자기 장식기법의 ‘상감(象嵌)’. 그러기에 더욱 희소가치가 높을 수밖에 없는, 독창적이며 고귀한 자산이 되어 왔다.

800년 전통의 부안 고려청자 가마터는 1963년 국가 사적 제69․70호로 지정 보호되고 있으며, 약12만평 면적에 13개 구역 모두 77개소에 달한다.

이 중에서 보안면 유천리(柳川里) 12호 청자가마터 일대는 고려황실용 청자를 제작했던 특별한 곳으로, 유적의 체계적인 보존과 종합적인 복원․정비를 위해 2015~2018년까지 문화재조사를 실시했다.

출토된 청자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왕과 왕비를 상징하는 용과 봉황무늬가 장식된 매병․벽 장식판․향로․수반․찻잔․대합 등으로 부안 유천리가 고려황실용의 그릇을 만들어 납품했던 당대 최고의 청자 생산지였음을 반증하는 자료이다.

이와 함께 세계 최초로 산화구리 안료로 선홍색을 표현한 동화(銅畵)청자, 은은한 미색 바탕에 봉황이나 모란․ 국화․구름 학 무늬를 섬세하게 흑상감한 백자 등은 부안만의 독특한 고려자기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청자양각 용무늬 벼루’는 부안 유천리에서 제작된 것으로 용의 입을 통해 물이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벼루와 연적을 겸용한 특별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높다.

화조무늬를 투각으로 장식한 은판을 찻잔 외면 전체에 둘러씌운 ‘고려백자 은투각장식 햇무리굽 찻잔’은 고려 초 백자의 전통이 부안 유천리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려시대 뛰어난 금속공예와 도자공예의 콜라보레이션을 볼 수 있는 진귀한 작품으로 주목된다.

부안 고려청자 요지(가마터)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조사와 연구 사업이 시작됐다. 

부안군과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6월 부안 고려청자 가마터에 대한 학술조사·연구 대행 사업에 대한 협약을 체결하고, 준비 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발굴조사에 나섰다.

1963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 부안 유천리·진서리의 고려청자 가마터는 고려 시대 12세기 후반부터 13세기까지 일반인이 사용하던 청자부터 왕실용 최고급 상감청자까지 만들어낸 고려청자 생산의 중심지이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도공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이곳은 현재 39만 5021㎡에 면적에 모두 13개 구역 77개소의 가마가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은 고려청자 가마터가 사적으로 지정된 지 60주년을 맞아 국립 문화재 연구기관과 업무협약을 통해 한국 중세문화의 절정인 부안 고려청자의 가치에 관해 체계적인 연구에 나섰다. 

5년간의 장기 학술조사와 연구를 진행하 고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 부안 고려청자 유적과 유물의 문화재적 가치와 중요성을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규명함으로써 고려 중기 상감청자의 메카인 부안의 역사적 위상을 높이기 바란다.

정밀 조사를 통해 가마터가 남아있지 않은 곳에 대해서는 불합리한 규제를 개혁하는 차원에서 문화재 지정구역 해제 및 축소 등의 방안을 모색해 60년간 지속했던 지역민의 불편을 해소할 것도 주문한다.

 조사를 통해 부안 진서리 요지에서 삼국시대 측구식 탄요 및 고려청자가마 등이 확인돼 진서리 일대 생산체계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부안 진서리 5구역 요지를 체계적으로 보존하는 동시에 이 일대에 대한 발굴과 정비 복원을 통해 고려청자 생산 체계를 지속적으로 밝혀나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