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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08> 작고한 '장조림(張造林)'을 기억하는 전북대와 조림 사연-조병희선생이 장명수총장에게 나무를 심으라고 조언

<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08> 작고한 '장조림(張造林)'을 기억하는 전북대와 조림 사연
-조병희선생이 장명수총장에게 나무를 심으라고 조언 학교에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다.

작촌(鵲村) 조병희(趙炳喜,1910 ~ 2002)선생이 생전에 이종근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말했다.

"종근씨! 장명수가 젊은 나이게 총장이 되어 나를 찾아왔길래 전북대학교에 나무를 심으라고 했제. 학교에 나무를 심으면 좋은 미래가 기약되고,  더욱이 학생들은 미래의 재목(材木, 동량지재(棟梁之材)’이지 않은가벼"

‘동량지재(棟梁之材)’는 ‘용마루 동(棟)’자에 ‘들보 량(梁)’자를 써서 원래는 ‘기둥과 들보로 쓸 만한 재목’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뜻이 확장돼, 결국 ‘한 집안이나 한 나라를 떠받치는 중대한 일을 맡을 만한 인재’를 의미하게 됐다. 

'오월춘추' 의 '구천입신외전'엔 "부인 예용(曳庸)이 말하기를 '대부 문종은 나라의 동량(棟梁)이요, 임금의 조아(爪牙)이다'(大夫文種者 國之梁棟 君之爪牙/ 대부문종자 국지량동 군지조아)"
라고 했다.
손톱과 어금니를 말하는 爪牙(조아)는 적의 습격을 막고 임금을 호위하는 신하를 비유하는 말이다
여기서  '동량'은 집의 마룻대와 들보처럼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신하를 뜻한다.
 '마룻대'는 서까래를 지탱하며 집의 중앙을 횡으로 버텨주는 가로 막대이다. 산마루에서 알 수 있듯이 마루는 정상을 뜻하는데, 마룻대란 집의 정상에 해당하는 중요한 대이다. 
이 마룻대가 옆으로 뻗어 올라 집의 풍채를 한껏 웅장하게 해 주는 것이 '용마루'이다. '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얹히는 굵은 막대로서 집의 상단부를 받쳐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의 들보 중에서도 가장 굵고 힘을 쓰는 것을 '대들보'라고 한다.
'조아'란 범의 날카로운 발톱과 어금니 처럼 임금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신하란 뜻이다.

장총장은 타 대학들보다 비교적 부족했던 조경에 눈이 갔다. 그는 조경을 위해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이는 학교의 외관만을 위한 일은 아니었다. 나무가 많은 공간에서 지낸 학생들이 삭막한 환경에서 지낸 학생들 보다 더욱 긍정적인 정서를 함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은 학계의 여러 연구들이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줬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게 이뤄지지 않았다. 우선 나무의 공급처 확보가 문제였다. 수 많은 나무를 모두 구매하기에는 재정 상황이 넉넉지 않았다. 

장총장은 전주와 완주 근교 도시 계획으로 유실될 나무와 저수지로 수몰 위기에 처한 나무, 아파트 공사 등으로 뽑힐 나무들을 선별했다. 

그는 당시 변산 댐에서 수몰될 나무들을 옮겨 심을 때의 일화를 전했다.
 “댐에서 나온 나무들을 학교에 옮겨 심으면 60% 이상 죽을 것이라며 주변에서 만류했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옮겨 심은 나무에 번호를 새겨 매일 출근길에 ‘나무야 꼭 살아라’라고 말하며 토닥였다”고 했다. 그 결과 다섯 그루를 제외한 모든 나무가 생존하는 기적과 같은 결과를 냈다.

또 다른 어려움은 구성원의 반대였다. 당시 많은 교수들이 나무 심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 재정을 차라리 연구비로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총장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설득했다”고 밝혔다. 반대했던 교수들의 연구실 앞에도 나무가 우거지기 시작하자 불만 섞인 목소리가 점차 줄었다.

그는 나무 심기 외에도 또 다른 조경 사업을 진행했다. 바로 학교 정문 교체가 그것이다. 구정문은 서쪽에 있어 건물들이 왜소하게 보이는 느낌을 강하게 줬다. 
그래서 장 총장은 남쪽으로 뚫린 뽕나무 밭에 새로운 정문 신축을 계획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많은 구성원이 신정문이라 부르는 정문이다. 진입로가 넓어지자 캠퍼스가 훨씬 넓어지는 효과를 낳았다.
장총장은 좋은 공연장 하나가 구성원과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전북대 삼성문화회관 신축이었다. 당시는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이 시공되기 전으로 전주에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장총장은 수도권에 비해 문화생활의 폭이 좁은 구성원과 지역민을 생각하면 늘 안타까웠다. 삼성문화회관은 지금까지도 구성원과 지역민들의 다양한 문화생활 향유의 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도시계획 전문가 1세대’ 장명수 전 전북대 총장은 지난해 7월에 90세로 별세했다. 90세. 도쿄대에서 도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63년부터 32년간 전북대 교수로 재직했고, 전북대·우석대 총장, 전북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일부 내용 전북대 신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