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근의 역사문화 이야기 104> 정읍은 한국 제
1의 '천자문' 고장, 그리고 강암 송성용선생의 천자문
‘정읍은 한국 제1의 천자문의 고장인가’
정읍선비 김균의 ‘대동천자문(大東千字文) ’에 이어 박종택의 ‘도문천자(圖文千字)’이 발간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다.
이는 중국의 것이 아닌, 한국의 독특한 천자문이라는 사실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정읍시 흑암동 출신의 서예가 현당(玄堂) 박종택(朴鍾擇. 박종익)씨가 2008년 발간한 ‘천개의 글씨 이야기가 있는 도문천자(서예문인화)’는 우리나라 한반도 중심을 동서로 흐르는 한강유역의 지도와 그에 관련된 그림 위에 한자 천자를 쓴 책이다.
1,000자는 배우기 쉽고, 많이 쓰이는 글자와 먼저 배웠으면 하는 글자들을 골라 천지인, 의식주, 동식물로 분류하고 하늘의 낮과 밤, 기후, 산, 평야, 계곡, 바다 등으로 구분, 한강 발원지에서부터 시작, 평야지대, 강, 바다 한강 유역 지도와 그와 관련된 그림 1,000자의 글자를 쓰고, 4자마다 풀이를 해 놓았다.
글씨의 원형은 설문해자 주(註), 허신(55-121) 저 단옥재(1735-1815) 주를 참고로 했으며, 설명은 국내외 사전을 참고로 했다.
이 천자문은 ‘천지인생(天地人生)’으로 시작한다.
‘위에는 하늘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다. 그 사이에 사람이 나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맨끝은 ‘재공작업(再工作業)’으로, ‘문화재를 시공하는 작업장에서는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해가 아침 일찍 동해의 삼척항 바다 위에 떠오르니 대한민국의 아침은 참으로 경치가 창성하다.(日旦早東 韓朝景昌, 일단조동 한조경창)’ 로 소개, 참으로 독창적인 글임을 보여주고 있다.
‘연량호한(沿凉湖漢)’은 강가 연안에는 여름에 서늘한 유원지가 많다는 뜻풀이다. 양수리를 지나 팔당호수를 건너 한강이 되어 바다로 흐를지니.
또 궁에서 나무를 심으면 아무나 못 들어가게 금표(통행금지)를 하고 검사원이 지키고 있는 곳이 서울(禁標檢困, 금표건곤)임을 강조하기도 한다.
서울의 가장 핵심은 종묘, 파고다 공원이며, 시민들은 남향이 좋은 곳에 살며 광혜원과 여관이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宗廟高堂 寺塔樓閣, 官舍南向 廣院館會, 종묘고당 사탑루각, 관사남향 광원관회)
이 천자문은 따라서 한 글자마다 그 글자의 구성 부분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한 글씨의 이야기, 그리고 그 글자의 쓰임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처음 글씨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이 흥미있게 공부하고 가르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저자는 “주로 교육용 기초한자 1,800자중에서 우선 배우기 쉽고 많이 쓰는 글자 그리고 먼저 배웠으면 하는 글자들을 골랐다”면서 “생활 속에서 한자가 필요함에도 불구, 너무 난해함은 물론 옥편을 찾아 공부하는 사람들이 드물어 '도문천자(圖文千字)'를 펴냈다”고 했다.
박종택씨는 금재 최병심의 문인 성당(誠堂) 박인규(朴仁圭, 1909~1976)선생의 아들로, 선친이 운영하던 전주 교동 구강재(龜岡齋)에서 한문을 배운 후, 한국미술협회 서울지부 공모전 특선, 한국서도협회 공모전 삼체상과 특선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서도협회 회원으로, 전주 구강재 주말서당 한문, 서예 강사로 활동할 예정이다.
혹시 김균의 ‘대동천자문(大東千字文)’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중국 주흥사의 ‘천자문’이 하늘의 섭리, 땅의 도리 등을 나타내고 있다면 ‘대동천자문’은 우리나라 5,000년의 얼을 고스란히 새긴 명문장이다.
이는 정읍 출신으로, 한말 우국지사 김영상(1836~1910)의 손자인 한학자 김균(1888~1978)이 ‘천자문’의 체제를 본떠 만든 순수 토종 천자문으로, 일제 침략하에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우면서 30여 년의 집필 끝에 1948년에 완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海牙殉身 滅賊哈賓(헤이그에서 몸을 바치고, 하얼빈에서 적을 무찔렀네)'
해아(海牙)는 헤이그를, 합빈(哈賓)은 하얼빈을 말한다.
이는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쏘아 죽인 안중근의사의 의거를 담은 글줄이다.
‘대동천자문’은 ‘천지복재 일월조현’(天地覆載 日月照懸:하늘은 만물을 덮고, 땅은 만물을 싣고 있으며, 해와 달은 하늘에서 비친다)로 시작, ‘독립불구 영예극종’(獨立不懼 榮譽克終:홀로 서서 두려워하지 않으니 오래도록 명예롭고 끝이 좋으리라)으로 끝을 맺는다.
백담 백종희선생이 쓴 '대동천자문'은 정갈한 찰윤한 먹색, 날렵하고 활달한 필치의 기법적 혼용 등을 통해 한국인의 사상이 잘 드러난 가운데 깔끔하면서도 힘이 넘쳐나고 있다.
강암 송성용의 '천자문(1990, 종이에 먹, 150×360cm, 개인 소장)
한국 현대서예의 한 획을 그은 강암 송성용(1913~1999)이 78세 때 쓴 해서(楷書) '천자문(千字文)'이 전한다.
한 번의 호흡으로 8시간에 걸쳐 완성한 역작이다.
"천자문은 4자2구로 된 125편의 시에 우주자연과 인간 삶의 이치를 담고 있지요. 간혹 사서삼경을 읽었다는 분들 중에도 천자문의 내용을 제대로 모를 만큼 만만찮은 글이랍니다”
6세기 중국 양나라 무제의 명을 받아 주흥사(周興嗣)가 만든 천자문(千字文)은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시작하여 '언제호야(焉哉乎也)'로 끝나는 250구의 1000자로 된 방대한 서사시이다.
단 한글자도 반복되지 않으면서 우주 삼라만상을 엮어낸 천자문은 옛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한자학습의 가장 기본으로 각광을 받아 왔다.
서예인들이 천자문구(句)를 가지고 간단한 작품들은 많이 하는 편이나 전체를 가지고 작품을 하는 서예인들은 많지가 않다.
송성용은 평생 구양순의 엄정한 해서를 비롯해 북위서의 험절(險絶)한 조형과 남조(南朝)의 부드러운 필세, 안진경과 유공권의 굳건한 근골(筋骨) 등 을 두루 학습했다.
해서를 해서체에만 국한하지 않고 예서와 해서와 행서를 혼용, 평정하면서도 졸박하고, 졸박하면서도 부드러운 기운을 점획과 자형에 응축시켰다.
즉, 가로획은 수평을 유지하되 때로는 우하향으로 처진 듯한 느낌마저 주며, 가로획과 파임 부분은 해서의 기본을 유지하되 방필의 험경(險勁)한 기운을 덜어냈다.
그리하여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필세가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여 편안한 가운데 역동감이 내재된 외유내강의 해서체를 완성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된 것이 바로 '천자문'이다.
이 작품은 제가(諸家)들의 해서 필법을 모두 취한 다음 자기만의 독창적인 서체로 완성한 송성용 해서의 결정체이다. 일련의 법식에 얽매이거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일체의 속기를 덜어낸 뒤 '심수합일(心手合一)'의 경지에서 오직 자신의 필체로 일필휘지했다.
천자문을 어떻게 보존하고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세계적인 기록문화유산으로 남겨야 할지를 이 시대의 국가와 지방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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