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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스토리

활터, 국가 문화재 된다


■전북의 활터 몇곳이 남아 있나



고구려 벽화에도 등장하는 ‘활쏘기’가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전 세계가 즐기는 활동이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특성을 오늘날까지 유지한 민족 문화 자산인 활쏘기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다고  2020년 04월

20일 밝혔다.

‘활쏘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문헌에서 확인된 순수한 우리말이다. ‘활쏘기’는 무용총 ‘수렵도’ 등 고구려 벽화는 물론 중국 문헌 ‘삼국지’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도 나올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국립민속박물관의‘전국의 활터보고서’에 따르면 1909년 이전 전북엔 모두 9곳의 홭터가 만들어졌다. 이는 전남 9곳에 이어 전국 두 번째 수치다. 전북의 경우, 일제강점기엔 3곳, 해방 이후 1979년 이전엔 3곳, 1980년 이후엔 3곳이 있었다. 전북의 활터 현황에 따르면 모두 16곳이 있다.

민간에서 활쏘기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와 별도로 사정(射亭)이 건립된 연도를 조사해 보면, 현재 전국의 사정들 중에 황학정(서울), 석호정(서울), 무덕정(인천), 덕유정(충청남도 강경), 람덕정)(경상남도 진주), 천양정(전라북도 전주) 등의 일부 정을 제외하고는 일제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았다. 이를 통해 활쏘기가 현재 보여주고 있는 사정이라는 사원(射員)들의 조직적 형태를 대다수 사정이 갖춘 시기가 일제시기 이후임을 추정할 수 있다.

군산 진남정(鎭南亭)은 강경 덕유정, 황등 건덕정, 익산 송백정, 김제 홍심정, 부안 심고정, 정읍 필야정과 더불어 호남칠정 가운데 하나다. 진남정기(鎭南亭記)에 따르면 진남정은 1921년 이 고장의 유림유지와 한량들의 발기로, 현 경암동 근처의 옥구군 경포천 근방에 진남정(鎭南亭)을 건립하면서(초대 사두 채춘묵) 궁도보급에 힘써왔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경포천변이 자주 범람하면서 1928년에 명월산(현 월명산) 북쪽으로 이축(移築)되었고, 1년 뒤인 1929년에 명월산 남쪽(군산시 월명동 35-2번지)으로 재이전했다.

조선은 성립 이후 양난(玴猢)을 거치며 성리학적 사상의 배경 위에 국방력의 강화를 목적으로 많은 수의 사정(射亭)을 건립했다. 이 무렵 전주에도 꽤 여럿의 사정이 생겨나고 운영되어졌는데,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내사정(內射亭), 진북정(鎭玏亭), 군자정(君子亭), 천양정(穿楊亭), 다가정(多佳亭), 읍양정(揖讓亭), 육일정(瑹一亭), 육오정(瑹五亭), 풍남정(豊南亭) 등 9개의 사정이 있다. 이들 사정 중 현재까지 근 300년이 조금 못 미치는 긴 시간동안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사정이 바로 천양정이다. 천양(穿楊)이란 ‘바람에 하늘거리는 얇은 버들잎을 뚫는다’라는 말로, 천양정은 이처럼 활을 잘 쏘는 명궁을 배출할 만한 훌륭한 사정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현재 천양정은 지방문화재자료 제6호(1975년 2월5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재단법인 전주천양정(2002년 7월 29일)으로 등록되어 있다. 지금의 천양정은 1912년에 군자정, 다가정(천양정), 읍양정의 세 사정이 통합.이루어졌다.

남원은 기원 초 백제의 고룡군이었다. 통일신라(685년)때 남원소경이 설치된 이후 남원이라 부르기 시작한 지 1,300여 년이 된 유서 깊은 고장이다. 고려 우왕 6년(1380년) 삼남을 휩쓸고 남원까지 침범한 왜구를 운봉황산 협곡에서 섬멸하는‘황산대첩’을 이룩하였으며, 정유재란(1597년)때 남원성 싸움에서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군·관·민 일만여 명이 ‘만인의총’에 모셔져 있다. 정유재란이 끝나고 남원에는 무술연마와 향사례의 도장으로 사장이 여러 곳에 설립되었는데, 부(府)의 남쪽에 분위정, 한남정이 세워지고 부(府)의 동쪽에 관덕정이 세워졌으나 퇴락되었다. 읍승정은 300여 년전에 남원 노계소(기로회)에서 개설하였는데, 이후 읍승정은 관설사정인 관덕정(觀德亭)으로 개정되어 운영됐다. 또, 조선 선조(宣祖) 이후에는 관설 사정을 개방하는 과정에 소계소에서 분위정을 개정했고, 그리고 중민계층이 주축이 되어 한남정이 연이어 개정됐다. /이종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