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4년 6월 10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자천대와 최학수 옥구군수
군산 선유도해수욕장이 오는 10일 개장돼 8월 18일까지 운영된다.
'선유도(仙遊島)'는 드넓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이름을 그대로 풀어내면 '신선이 노니는 섬'이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과거엔 선유도를 ‘군산도(群山島)’라 불렀다. 고려시대에는 여송무역로의 기항지로 서해안 연안항로의 거점이기도 했다.
그 후 조선시대 현재의 '선유도'인 군산도에 수군진영이 창설됐다. 세종 초기에 오늘날 군산시로 수군진영을 옮기면서 군산이란 명칭까지 옮겨가 '선유도'는 고군산도라 이름하게 됐다.
고군산에서도 '선유도'의 자연환경이 가장 아름답다.
고군산8경의 대부분이 '선유도'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풍광이 빼어난 것이 특징이다.
'선유8경'은 명사십리(明沙十里), 평사낙안(平沙落雁),
망주폭포(望主瀑布), 무산십이봉(舞山十二峰), 삼도귀범(三島歸帆), 선유낙조(仙遊落照), 장자어화 (壯子漁火), 월영단풍(月影丹楓) 등이다.
'명사십리'는 선유도 해수욕장의 투명하고 유리알처럼 고운 백사장을 일컫는 말이다.
충남 태안의 만리포 해수욕장을 능가할 정도로 넓은 백사장은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만리포보다 인적이 드물어 해수욕하기에 좋다. 또 선유도 해수욕장은 해변의 경사가 얕아서 아이들과 함께 해수욕하기에 안성맞춤. 100여 m를 들어가도 어른 키를 넘지 않기 때문. 일몰과 일출 포인트로도 그만이다.
'평사낙안'은 선유도 마을 뒷산에서 망주봉을 바라보게 되면 시야에 들어오는 은빛의 모래톱 가운데 수령 500년 된 팽나무의 형상을 가리킨다. 낮은 팽나무이지만 4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있고 모래 위에 앉은 모습이 기러기가 비상하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평사낙안'이라 한다. 썰물이면 물이 빠져 모래톱이 지척으로 드러나지만 갯벌이 약해 걸어 들어 갈 수는 없다.
제3경 '망주폭포'는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바위산 망주봉에 큰비가 내릴 때 7∼8개의 물줄기가 폭포가 되어 흘러내리는데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애절하고 한편으로는 화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산십이봉'은 고군산의 방벽 역할을 하는 방축도와 말도 등 12개 섬의 산봉우리가 마치 투구를 쓴 병사들이 도열하여 있는 모습이라 해서 무산십이봉이라 한다.
'삼도귀범'은 선유도 북쪽의 무인도 3곳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을 가리키는데 돛배 3척이 만선이 되어 깃발을 휘날리고 돌아 온다하여 삼도귀범이라 한다.
'선유낙조'는 선유8경 중에서도 최고로 꼽는다.
점점이 떠 있는 조그만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으로 해가 질 때면 선유도의 하늘과 바다가 온통 불바다를 이뤄 황홀감을 연출한다.
'장자어화'는 고군산도민의 자랑이었다. 바로 황금어장을 뜻하는 것으로 조기잡이 어선이 밤바다를 수놓았던 과거를 말한다.
'월영단풍'은 신시도의 해발 199m 월영봉 단풍을 가리킨다. 신라시대 최치원이 이곳의 월영단풍에 반해 바다를 건너와 잠시 머물었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선유도는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들 섬과는 모두 연륙교로 이어져 있어 걷거나 자전거 등을 빌려 오갈 수 있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고운 ‘명사십리 길’이 펼쳐져 안전한 가족단위 피서지로 제격이다.
하늘을 붉게 달군 서해낙조, 선유도∼장자도를 연결하는 9.28㎞의 하이킹과 구불8길(고군산길)의 도보 트레킹 코스, 바다낚시, 갯벌체험 등 다양한 볼·체험·먹거리가 어우러져 명실상부한 국내 최고의 휴양지로 평가된다.
국내 섬 가운데 최초로 설치된 타워높이 45m, 하강체험 길이 700m의 ‘공중 하강체험시설’은 젊은층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군산시는 안전 대책을 수립하고 백사장과 편의시설 정비, 방사능과 토양, 수질 조사 등 피서객 맞이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개장 기간 중 더위를 피할 비치파라솔과 구명조끼 및 실내 샤워장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가족 피서객들을 위해 백사장에 어린이 해변놀이터, 비치 액티비티 체험공간 등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해변 플레이 존이 설치된다.
군산 내초도 금돈시굴(金豚始屈), 선유도 금돈치굴이 최치원의 군산(옥구) 탄생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경주 최씨의 시조는 최치원 선생으로 그에 대한 기이한 전설이 내려온다. 원래 경주 최씨의 시조는 금빛이 나는 돼지(金豚)에서 낳았다 하여 일명 '돼지최씨'라고 불리어 온다. 이것은 단군이 곰에서 낳았다는 전설이나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박속에서 낳았다는 설화 등과 함께 경주 최씨도 중요한 민족 설화의 하나이다. 이에 따라 최치원 선생 자체가 전설상의 인물이 아니며, 또 군산의 금돈시굴이 아직도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고향이 군산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신시도 월영대는 고군산열도가 바라다보이는 조망권을 가지고 있으며 최치원이 단을 쌓고 글을 읽으며 깨달음을 얻은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옥구향교 내에 있는 자천대는 최치원이 올라 글을 읽었는데 중국까지 들렸다고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최치원을 배향한 문창서원, 현충단, 옥산서원도 함께 남아 있어 중국과 관련된 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천대(紫泉臺)'는 옥구현 서쪽에 있는 하제 포구 인근 바닷가의 바위산 이름으로 바위산 옆 연못빛깔이 항상 붉어 붙인 '붉은 연못가의 바위산'이라는 뜻이다.
1934년 일제 강점기 비행장 확장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자천대의 2층 누정을 당시 유림들과 옥구군수가 나서서 옥구향교로 이전했고 이때부터 경현제 혹은 자천대로 불렀으며 1967년 현재의 장소로 이전했다.
염재 송태회(念齋 宋泰會, 1872-1941)의 '염재유고(念齋遺稿)‘엔 '자천대 중건록’ 서문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옥주(沃州)의 자천대는 세상에 전해지기를 최지원선생이 글을 읽던 곳으로 바닷가의 풍경이 밝고 고우며 암석과 골짜기가 빼어나고 기절하다고 한다. 계유년에 선생의 후손 학수(學洙)씨가 마침 이 고을을 맡아 고을의 여러 선비들과 그 곳에 나아가 한 건물을 세우고 그 다음해인 갑술년 5월 5일에 문예 모임을 베풀며 낙성을 했다. 시문 몇 편과 기념 시부(詩賦) 및 고풍(古風) 여러 편을 아우르니 아속(雅俗)이 함께 이르고 지금과 옛것이 볼만하다. 그 책머리에 쓰기를 자천대중건록(紫泉臺重建錄)이라 하고 대의 사진도 찍어 장차 인쇄하려 나에게 서문을 부탁했다’
이 글은 병자년 12월 상순에 썼으며, 이때는 1936년에 해당한다.
자천대는 최치원이 소년 시절에 무관으로 내초도의 수군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와 살던 곳인데, 이곳 정자에서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까지 들려 사신이 건너와 그를 데리고 갔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2020년 연말 고군산군도 일원에 고려청자 등의 수중문화재가 나왔다는 민간 잠수사의 신고를 받고, 2021년 초부터 지금까지 군도의 일부인 선유도 해역을 특정해 꾸준히 조사를 벌여왔다.
앞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는 2002년 비안도, 2003~2004년 십이동파도, 2008~2009년 야미도에서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십이동파도에서 고려청자를 실은 옛 배의 잔해들이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고군산군도 해역은 대형 선단들이 닻을 내리고 머물기에 좋은 여건을 갖췄다. 고대부터 중국을 오가는 교역선들이 이 해역을 중간경유지로 기착했고 조선시대에는 세금쌀을 실은 조운선의 항해로이기도 했다. 12세기 고려국을 다녀간 송나라 사신 서긍은 견문록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 고군산군도에 고려행 사신이 묵는 군산정이 있다고 기록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쓰인 고려도경에는 중국 사신이 고군산군도에 도착하니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이 사신을 영접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송산행궁이라는 외국사신 영접 건물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무역과 외교의 중요한 길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3년간 다양한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선유도 앞바다의 조사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국립해양유산연구소는 2020년 연말 고군산군도 일원에 고려청자 등의 수중문화재가 나왔다는 민간 잠수사의 신고를 받고, 2021년 초부터 지금까지 군도의 일부인 선유도 해역을 특정해 꾸준히 조사를 벌여왔다.
앞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는 2002년 비안도, 2003~2004년 십이동파도, 2008~2009년 야미도에서 수중 발굴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십이동파도에서 고려청자를 실은 옛 배의 잔해들이 발견돼 관심을 모았다.
2년 전부터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연구원들이 군산 선유도 앞바다 속을 이 잡듯 뒤지는 이유는 바로 옛 교역선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 2022년 이래 청동기시대 갈돌과 고려청자, 조선백자, 닻돌 등의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을 쏟아내면서도 여전히 배의 자취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기대를 접을 순 없다.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서해판 무릉도원으로 꼽혔던 고군산군도 선경의 일부였던 선유도 해역은 바닷속의 고대 도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반도 연안을 오가는 배들의 핵심 항로였기에 무수한 해양 교역사의 비사가 숨어있다.
“이젠 배를, 배의 흔적을 찾아야 해요”
명사십리로 유명한 선유도해수욕장에서 선유 8경 중 제1경인 낙조를 감상하면서, 이 일대가 육지로 변신했을 모습을 상상해본다.
어쩌면 천년왕국 전설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다가 땅으로 개벽되는 새 세상을 최치원은 미리 보았던 걸까.
■1934년 자천대 옮기게 된 사연 알고 보니
http://www.sjb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47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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